‘확실한 경기 부양’ 전쟁의 유혹

전후 복구 수요 폭발…코카콜라·버버리, 군수품으로 브랜드 알려


동아시아 지중해를 둘러싸고 공세를 취하는 중국과 수세에 놓인 일본·미국 간에 긴장이 고조되면서 이 지역에서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기존 패권국과 신흥 패권국 간의 팽팽한 긴장은 결국 전쟁으로 귀결된다는 ‘투키디데스 함정’이 다시 거론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이들 강대국들이 함정에 빠진다면 한국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역사적으로 발생했던 전쟁의 원인을 살펴보자. 영토 확장과 정복 욕구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알렉산더 대왕, 칭기즈칸, 나폴레옹이 모두 정복 전쟁을 벌이며 영토를 넓혔다. 종교전쟁도 상당히 많았다. 십자군 전쟁이 대표적이다. 이슬람교와 기독교 간의 종교전쟁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밖에 물적 자원과 인적자원 착취, 무역로 확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경제 전쟁, 왕위 계승 전쟁, 다른 나라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독립 전쟁 등 여러 이유가 있다.


미국, 2차 세계대전 전시 특수로 대공황 극복
경제적 이유도 전쟁 발발의 주요 원인이 되는데 대표적인 예가 아편전쟁이다. 영국은 19세기 초반 중국으로부터 차를 비롯한 다양한 상품을 수입했던 반면 중국으로 모직물과 인도 면화를 수출하기는 했지만 대규모의 무역 적자가 나서 은 유출이 심했다. 그러자 영국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으로 대규모의 아편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아편 중독자가 급증하자 1839년 청 황제는 영국 상인들로부터 아편을 몰수하고 아편 거래를 금지했다. 이에 따라 영국은 함대를 파견했고 1840년부터 2년간 벌인 전쟁에서 승리를 거뒀다. 아편전쟁의 패배로 중국은 영국에 광둥·상하이 등 5개 항구를 개방하고 홍콩을 할양했으며 막대한 전쟁 배상금까지 지불해야 했다.

또 다른 전쟁의 이유는 오래 지속되는 경제 불황이다.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면 불황이 닥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런데 만약 그렇게 닥친 불황이 쉽게 해결되지 않으면 해당 국가 지도자는 불황을 타개하는 방법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된다. 1920년 후반의 계층 간 심각한 소득분배 불균형이 전체 소비를 줄여 1930년대에 대공황이 유발됐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패배로 연합국에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야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팽배한데다 불황 타개 과정에서 필요한 자원과 영토를 인접 국가로부터 확보하기 위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독일이 유대인을 대대적으로 탄압한 이유는 인종 청소, 재산 탈취 목적도 있었지만 전쟁 물자 생산에 필요한 인력 확보 목적도 있었다.

전쟁이 발발하면 인명 살상은 물론이고 사람들이 힘들여 이룩해 놓은 많은 물질문명이 파괴된다. 건물과 교량이 무너지고 사람들은 거주지를 잃으며 기간 시설이 파괴돼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모든 물자와 서비스의 공급을 끊어 버린다. 역사적으로 보면 전쟁의 폐허를 딛고 다시 일어선 민족과 나라가 있는가 하면 그 상처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 나라도 있다. 현대 들어 전쟁의 폐허를 딛고 경제 발전을 이룬 대표적인 나라는 단연 독일과 일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폭격으로 거의 모든 시설이 파괴됐지만 숙련된 인적자원이 있었기 때문에 두 나라는 폐허를 딛고 경제 부국으로 재도약했다. 한국도 6·25전쟁이 끝난 후 빈털터리 상태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고난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전쟁을 치른 나라가 더 강건해지는 경우도 있다. 전쟁과 비즈니스는 어떻게 서로 연결돼 있을까.

우선 전쟁을 하면 물적 파괴가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파괴된 것을 복구하기 위해서는 여러 물품에 대한 수요가 발생하고 이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공장이 돌아가야 하고 인력을 채용해야 한다. 한마디로 수요가 증가하는 것이다. 더구나 전쟁이 일어나는 곳이 타국이라면 물적 피해가 없어 자체 복구에 돈을 들일 필요가 없고 수요만 증가하니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초반에 미국은 유럽의 전장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대량으로 전쟁에 필요한 물품이나 생활용품만 공급했다. 인명 살상 없이 경제적으로 큰 수입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일본 역시 전후 심각한 경제 불황에 허덕였지만 1950년에 발발한 6·25전쟁 때문에 급속히 회복된다. 1930년대 미국은 정부 지출을 늘린 케인스식 경제정책에 힘입어 불황에서 벗어났다고 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 따른 전시 물자 수요에 힘입어 불황이 극복된 부분도 크다. 한국도 1970년대 월남전의 전시 물자 공급에 참여함으로써 전후 경제 회복에 도움을 받은 사실이 있다.


레이더·인터넷 등 신기술 탄생도
둘째, 전쟁을 하면 인적 손실이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노동력이 전체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직업을 구하기가 쉬워지고 임금도 오른다. 즉, 사람의 노동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하면서 이전까지는 집에서 가사 생활을 했던 여성들이 직업 전선에 뛰어들게 됐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직장에 계속 다니면서 여성의 사회 진출과 여성 인권이 크게 신장됐다. 영국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여성들이 포탄을 생산하는 방산 업체에 취업해 여권 신장의 계기가 됐다.

셋째, 전쟁을 수행하거나 준비를 하다 보면 기술 개발의 필요성이 커진다. 전쟁은 생존을 두고 벌어지는 싸움이기 때문에 좀 더 많은 사람을 살상할 수 있는 무기와 상대편 무기를 무력화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려고 한다. 이렇게 전쟁 기간 동안에 개발된 기술은 평화 시기에 다른 곳에 적용돼 새로운 제품, 서비스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기술의 파급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전자레인지·레이더·제트비행기·인터넷·우주통신·원자력발전이 바로 그런 사례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인터넷도 1969년 미 국방부가 내부의 컴퓨터를 연결해 정보를 교환하는 목적으로 만든 아파넷(ARPAnet)이 그 시초였다. 1812년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 때 병사용 음식물을 안전하게 이송하려고 병 통조림을 개발했는데 그 후 캔 통조림으로 진화됐다.

넷째, 일부 기업들은 전쟁을 통해 자신들의 상품을 크게 보급하는 기회를 갖기도 한다. 코카콜라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군에 납품돼 유럽에 파병된 미군을 통해 유럽에 널리 알려졌다. 영국의 버버리 브랜드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참호전이 치열했을 때 영국군에 지급돼 기능을 인정받은 게 세계적인 브랜드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 6·25전쟁을 통해 한국에 들어온 미군들이 한국에 계속 주둔하면서 PX를 통해 미국의 커피 브랜드인 맥스웰하우스·맥심·커피메이트가 한국에 널리 퍼지게 된 것도 이 같은 사례다.

다섯째, 전쟁의 위협은 방위 산업을 키운다. 국가 내에 성능이 뛰어난 무기를 만들 수 없으면 외국에서 모두 수입해야 하지만 자체적으로 총·탱크·전투기 같은 무기를 만들 수 있다면 중공업을 강화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스웨덴은 1815년 나폴레옹 전쟁 이후 현재까지 200년 동안 전쟁을 한 번도 치르지 않았지만 사브(Saab)는 그리펜(Gripen) 전투기를 비롯한 군수산업을 발달시켜 수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1960년대 사브는 드라켄(Draken) 전투기에 처음으로 조종사용 사출 좌석을 설치해 위기에 처했을 때에 조종사가 긴급 탈출할 수 있도록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제 거의 모든 전투기에 사출 좌석이 장착돼 있다. 전쟁을 할 때에는 군 장비, 군수품 수송이나 인력 수송이 빨리 이뤄지는 게 매우 중요한데 과거에는 철도 부설로 이런 수송 문제를 해결한 바 있다. 1850년대 우크라이나 남부의 크림반도에서 러시아와 영국·프랑스·오스만튀르크 연합군 간에 전투를 벌일 때 영국은 수송 애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흑해 항구에서 전투 장소까지 철도를 재빨리 부설해 전쟁에서 이기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한국, ‘유럽의 전쟁터’ 벨기에와 닮은 꼴
19세기 독일의 철강왕이었던 알프레드 크루프는 철강으로 대포를 만들어 1870~1871년 독일·프랑스 전쟁에서 큰 위력을 발휘했다. 과거에 대포의 포신은 백금이나 동으로 만들어 가격이 비쌌는데 철강으로 대포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1851년에 개최된 런던 제1회 만국박람회에서 그가 만든 4300파운드의 막강한 대포는 참석자 모두를 놀라게 하며 금메달을 수상한 바 있다. 알프레드 크루프는 ‘죽음의 상인’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지만 대포 판매로 큰돈을 벌고 크게 유명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직도 전투가 수시로 벌어지는 이스라엘은 첨단 무기를 제조해 자국에서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로도 수출하고 있다. 시가전이 많았던 이스라엘은 벽에 자신의 몸을 숨기고서도 총을 조준 발사할 수 있도록 총구와 몸체를 구부릴 수 있고 카메라가 달린 총을 개발하기도 했다. 미국이 2011년 오사마 빈 라덴의 은둔지를 찾아내는데 피터 티엘이 최고경영자(CEO)로 있는 미국의 빅 데이터 분석 회사인 팰런티어 테크놀로지에 프로젝트를 의뢰한 바 있다. 컴퓨터공학과 출신이었던 오사마 빈 라덴이 빅 데이터 회사에 당한 것은 아이러니다.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우리 영토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주위 국가의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자국 영토만 아니라면 타국에서 일어나는 전쟁은 여러 모로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외국인들이 얼마든지 많을 수 있다. 특히 방산 업체는 더욱 그렇게 생각한다. 타국에서 전쟁이 터지면 타국의 생산 시설이 크게 파괴돼 생산이 불가능해질 테니 이는 곧 자국의 생산 증가, 고용 증가, 수출 증가, 외화보유액 증가로 이어진다. 대단한 경기 부양 효과다.

독일·프랑스·영국 사이에 자리 잡은 벨기에는 과거에 유럽의 주요 전쟁터였다. 워털루 전투나 벌지 전투도 벨기에 지역에서 일어났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다분히 벨기에와 비슷하다. 한국을 둘러싼 강대국들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을 놓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정치경제학적 대응 방안·대차대조표·손익계산서를 잘 짜야 할 것이다. 물론 전쟁 후 탄성 있는 회복(resilience) 계획도 세워야 한다.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 mjkim896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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