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전세금에 허리 휜 60대

자신의 집을 다른 사람에게 전세로 빌려주고 본인은 그보다 보증금이 싼 전세 주택으로 이주해 그 차액만큼 자녀를 지원해 주는 부모도 상당수다. 가뜩이나 불안한 노후 살림에 이제는 그나마 갖고 있는 주택 자산마저 자녀와 공유(?)해야 하는 실정이다.



김현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건설경제연구실장
1969년생. 1992년 경원대 도시계획학과 졸업. 2001년 경원대 공학박사. 경원대 도시계획학과 겸임교수(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건설경제연구실장(현).




최근 국내 소비 부진이 장기화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이렇게 가다가는 한국도 일본처럼 장기 침체가 현실화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소비 대신 저축을 선택했던 일본과 달리 한국은 가계 저축률도 부진하다. 이 때문에 소비 부진의 원인을 단순히 ‘불확실한 미래’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다. 한 연구 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40대와 60대의 소비 부진이 유독 심각하다. 이들의 소비 부진 원인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전셋값에서 찾아봤다.

우선 40대의 소비 부진은 자녀 교육비가 가장 큰 부담인 것으로 조사됐다. 학군이 조금 좋다고 소문난 지역의 전세 아파트의 가격은 ‘억 대’를 훌쩍 넘어섰고 이마저도 2년 후 재계약 시에는 수천만 원을 올려 줘야 하는 실정이다. 40대의 소비 부진이 전셋값 상승 때문이라는 데 쉽게 수긍이 가는 이유다. 다음은 60대의 소비 부진이다. 사실 연령이 높을수록 자가 보유 비율이 높은 국내 현실을 감안할 때 60대가 전셋값 상승 때문에 소비수준을 낮췄다고 속단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50~60대들의 자가 거주 비율(자기가 보유한 집에서 거주하는 비율)이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들도 전셋값 상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러면 60대가 주택을 갖고 있으면서도 남의 집에 전세로 거주하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일선 금융회사의 프라이빗 뱅커(PB)나 공인중개사들에 따르면 60대 이상의 부부들은 자녀의 전세 보증금을 마련하느라 고충이 심하다.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전세 보증금 마련에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소유한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자녀의 전세 보증금을 지원하는 부모는 그나마 양반이다. 자신의 집을 다른 사람에게 전세로 빌려주고 본인은 그보다 보증금이 싼 전세 주택으로 이주해 그 차액만큼 자녀를 지원해 주는 부모도 상당수다. 가뜩이나 불안한 노후 살림에 이제는 그나마 갖고 있는 주택 자산마저 자녀와 공유(?)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부모는 자신의 집을 놓아두고도 불안한 전세 주택을 전전하면서 소비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전세 제도는 고액의 보증금을 조달할 능력만 된다면 자가나 월세보다 훨씬 주거비 부담이 낮다. 그러니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자녀 세대들은 엄청난 ‘선발 이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못한 자녀 세대와의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은퇴를 시작한 베이비부머 세대의 자녀들이 이제 한창 취업과 결혼 전선으로 나가고 있다. 그동안 결혼을 미루는 자녀들 때문에 부모들이 마음고생을 했다면 요즘에는 결혼할까봐 걱정이다. 전세를 포기하고 월세로 돌아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월세 보증금도 결국 ‘목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외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월세가 보편화된 해외에서는 2개월 치 월세만큼의 보증금만 미리 지불하면 쉽게 임대용 주택을 구할 수 있다. 만약 한국도 해외처럼 월세 제도가 보편화된다면 부모는 월세 2개월 치 정도의 보증금만을 결혼 준비금으로 지원하면 된다. 매달 지불하는 월세는 자녀의 소득으로 감당하면 되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미래 임대 시장의 밑그림은 부모들이 자녀 결혼을 앞두고 전세 보증금 마련에 한숨을 쉬지 않는 그런 모습이 아닐까. 새해 들어서도 그칠 줄 모르는 전셋값 상승을 보면서 고령층의 애환과 청년층의 고뇌가 동시에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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