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 쇼핑 위해 국경 넘는 스위스인

프랑화 가치 급등 여파…주변국, 특별열차 운행 등 유치 경쟁


스위스 소비자들이 독일과 프랑스 쇼핑센터로 대거 몰려들고 있다. 최근 스위스 중앙은행의 최저 환율제 폐지 발표로 스위스 프랑의 가치가 급등하자 자산이 늘어난 스위스인들이 유로화를 쓰는 접경 도시로 생필품 대량 구매에 나선 것이다.

요즘 주말마다 스위스에서 독일로 들어가는 고속도로는 자동차들이 긴 행렬을 이룬다. 평소에도 스위스인들이 자주 찾는 대형 쇼핑센터 ‘라고’가 있는 독일 콘스탄츠 지역 진입로의 정체는 더욱 심하다. 이뿐만 아니라 인근 슈퍼마켓 주차장에는 스위스 번호판을 단 차량들로 가득하다. 일부 도시에선 스위스 쇼핑객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특별 기차까지 증편했다. 최근 독일 바일 암 라인의 쇼핑몰인 라인센터엔 하루 평균 3만4000여 명의 손님이 찾는데 이 가운데 60%가 스위스인이다.

중앙은행의 정책 변화로 갑작스레 주머니가 두둑해진 스위스인들은 생필품을 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들은 파스타 면이나 밀가루·설탕·음료수·소시지 등 오래 저장할 수 있는 식품을 비롯해 과일·통조림옥수수·우유·휴지·세제·의류 등을 대량으로 구입하고 있다. 스위스 경제 전문가들은 프랑화 강세 효과로 200만 명에 달하는 국경 거주자들의 크로스 보더(Cross border) 쇼핑 열풍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본다.


식료품 값 스위스보다 55% 저렴
평소 스위스인들은 쇼핑을 위해 이웃 나라에 자주 가는 편이다. 세계 1위의 ‘빅맥 지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스위스의 물가는 유럽 내에서도 높기로 유명한데 이 때문에 스위스인들은 상대적으로 물건 값이 저렴한 독일·프랑스·오스트리아·이탈리아 등으로 장을 보러 간다. 프랑스 페르니 볼테르 지역의 대형 슈퍼마켓 까르푸까지는 제네바에서 버스로 고작 20분 거리이며 콘스탄츠도 바젤에서 차로 1시간 30분 거리이기 때문에 많은 스위스인들은 생활비를 아끼겠다는 마음으로 기꺼이 국경을 넘는다. 다른 나라로 통근하는 스위스인 직장인들도 대폭 늘면서 퇴근 후 쇼핑, 월급날 쇼핑 등도 증가하고 있다.

스위스의 한 가격 비교 사이트에 따르면 식료품은 독일이 스위스보다 55% 정도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접경 국가의 마트에선 빵·우유·커피를 비롯해 의류·유아용품·가전제품까지 대부분의 물건들이 스위스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세금 정책도 큰 몫을 차지한다. 우선 하루에 최대 300프랑까지는 면세 범위에 들어가기 때문에 관세를 걱정하지 않고 장을 볼 수 있다. 게다가 물건을 살 때 냈던 19~20% 정도의 부가가치세를 스위스에 오자마자 바로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에 쇼핑도 하고 추가로 할인 받는 기분까지 느끼게 되는 것이다. 늘어나는 크로스 보더 쇼핑객 덕에 스위스 세관은 지난해 국경을 넘어 쇼핑을 한 소비자들로부터 3920만 프랑(461억여 원)을 걷었다. 또한 시장조사 기관 GfK에 따르면 2013년 스위스 소비자들은 온라인 쇼핑을 포함해 해외에서 100억 프랑(11조7000억 원) 정도를 쓴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독일·프랑스·오스트리아 등의 유통 업계는 밀려드는 스위스 소비자들을 잡기 위한 특별 쿠폰이나 셔틀 버스 등 다양한 서비스들을 내놓고 있다. 콘스탄츠는 스위스 쇼핑객들을 위해 지난해 도시 외곽에 약 500군데에 달하는 주차장 시설을 확충하기도 했다. 스위스인들이 더욱 손쉽게 국경을 넘을 수 있도록 트램(노면 전차)·수상택시 등 교통편을 다양하게 늘리고 세관 건물을 신축하는 곳도 있다. 스위스와 가까운 독일·프랑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선 “요즘 스위스 머니 덕을 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헤이그(네덜란드)=김민주 객원기자 vitamj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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