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는’ 슈퍼 사위…숨은 조력자로 맹활약

‘남데렐라’는 잊어라…경영 능력 인정받은 ‘에이스’ 들 많아

‘사위는 백년지객’이 아니라 ‘사위도 반자식’이라는 말이 있다. 장인·장모의 사위에 대한 정이 자식에 대한 정에 못지않다는 뜻도 되고 사위도 때로는 처가의 자식 노릇을 해야 한다는 뜻도 된다. 재계의 사위 역할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오너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경영 무대에서 활약하는 사위 경영자 또는 경영자 수업의 길에 오른 이들이 있다. ‘탁월한 능력’으로 무장한 ‘뜨는’ 재계 사위들은 누굴까. 누구의 사위, 누구의 남편이라는 꼬리표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재벌가 사위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허니버터칩’으로 홈런 친 해태 사위
요즘 이 사람만큼 ‘뜬 사위’도 없을 것이다. ‘허니버터칩’의 대박 행진을 이끈 일등 공신 신정훈(45) 해태제과 대표다. 그는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의 사위로, 윤 회장의 외동딸 윤자원 씨와 결혼하며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는 서울대 경영학과, 미국 미시간주립대 MBA를 거쳐 외국계 경영 컨설팅 기업인 베인앤컴퍼니에서 근무하며 크라운제과의 해태제과 인수 작업을 주도했다. 이후 2005년 해태제과 상무로 영입됐다. 인수 작업을 진행하던 때만 해도 그는 이미 윤자원 씨와 결혼한 상태였다. 이 때문에 2005년 해태그룹 상무 영입에 대해 외부의 곱지 않은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2008년 멜라민 파동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며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런 그가 이번엔 허니버터칩으로 스낵 시장에서 홈런을 쳤다. 더욱이 그가 직접 기획한 제품이어서 다시 한 번 그의 능력에 관심이 쏟아진다. 신 대표는 매년 7~8%씩 성장하는 감자칩 제품군에서 해태제과의 주력 감자칩이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했다. 개발 초기부터 그는 ‘판을 흔들 새로운 제품’을 주문했지만 새로운 맛을 내기 위한 적당한 소스가 나오지 않아 무려 28번이나 소스를 바꿔 가며 실험했다는 후문이다. 그때 신 대표는 “허니(아카시아 꿀)와 고메버터를 한 번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제품의 핵심만 강조한 ‘허니버터칩’이라는 이름 역시 신 대표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신 대표의 저력이 만만치 않아 윤 회장이 아들 윤석빈 크라운제과 대표의 후계 승계를 고심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라면서도 “재계 오너가 사위에게 계열사를 맡겼다가 사위가 계열사를 분리 독립한 사례들이 많다. 해태제과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휠라코리아에도 쟁쟁한 실력을 갖춘 사위가 활약 중이다.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의 사위 이성훈(44) 휠라코리아 부사장이다. 2005년 윤 회장의 딸 윤수연 씨와 결혼한 그는 현재 휠라코리아의 재무담당 최고책임자(CFO)다. 2011년 미국 골프 용품 회사인 아큐시테트를 12억2500만 달러에 인수하며 회사 성장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한 인물이다. 아큐시네트는 골프 용품 세계 1위 브랜드 ‘타이틀리스트’를 보유한 회사다. 이 부사장은 “아큐시네트 인수는 최대 주주로서 갖는 배당 수익과 사업 간의 시너지를 동시에 노린 전략이었다”며 “휠라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도 크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부사장은 아쿠쉬네트 인수 성과를 높이 평가받아 한국CFO협회가 주최하는 ‘2013 한국 CFO 대상’ 시상식에서 인수·합병(M&A)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또 이 사례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케이스 스터디 대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부사장은 휠라코리아 합류하기 전부터 ‘재무통’으로 손꼽히던 인물이다. 연세대 경제학과와 미국 로체스터대 MBA를 졸업한 그는 삼성증권 IB사업본부 M&A팀, 엔씨소프트 재무전략담당을 거쳐 2007년 휠라코리아로 자리를 옮겼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의 하나뿐인 사위 문성욱(42) 신세계인터내셔날 부사장의 행보도 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회장의 딸 정유경(42) 신세계인터내셔날 부사장의 남편인 그는 지난해 11월 말 신세계그룹 정기 인사 때 이마트 신규 사업 부사장에서 신세계인터내셔날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번 인사로 그의 경영 활동 무대는 더욱 넓어졌다. 해외 패션 부문 총괄과 동시에 최근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총력을 기울이는 화장품 사업 부문까지 맡게 됐다. 그룹 내 라이프스타일 사업 관리도 그의 업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런 문 부사장의 행보를 두고 “화장품 사업 투자로 몇 년째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신세계인터내셔날에 ‘해결사’로 온 분위기”라며 “실제 문 부사장 합류 이후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사업 재편이 이뤄지고 있는데 실적 개선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문 부사장을 가리켜 ‘해결사’라는 말을 쓴 데는 그만한 배경이 있다. 문 부사장이 이마트 중국본부 부사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중국 이마트 점포 실적이 급격히 악화되자 점포 매각 작업을 주도했다. 이때부터 문 부사장이 이마트 중국 사업의 ‘해결사’로 자주 언급됐다.

신세계인터내셔날로 자리를 옮긴 그는 먼저 사업 영역 재정비에 나섰다. 그룹 내 산발적으로 운영되던 화장품 사업과 이마트가 맡아 운영하던 라이프스타일 사업을 신세계인터내셔날이 맡았다. 반면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운영하던 명품 패션 편집매장 ‘분더샵’ 사업을 비롯한 신규 패션 브랜드를 찾는 역할은 신세계(백화점)가 할 전망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문 부사장의 주도하에 패션·화장품·라이프스타일 사업 영역이 재정비됐다”며 “이들의 그룹 내 시너지가 극대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신세계그룹 측은 “문 부사장은 이마트에서 해외 사업을 해 온 경력을 인정받아 신세계인터내셔날의 글로벌 패션 사업을 맡게 된 것”이라고 인사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문 부사장은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과와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MBA를 졸업했다. SK텔레콤 기획조정실과 소프트뱅크스코리아 차장으로 근무하던 2001년 정 부사장과 결혼했다. 이후 2004년부터 신세계 경영지원실에서 부장으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2005년 12월 신세계I&C 전략사업본부 본부장 상무로 승진했고 3년 만에 부사장직에 올랐다. 이후 2011년 12월 이마트 중국본부 부사장이 됐다.


경영 빈자리 사위가 채우나
차기 경영인이 되기 위한 경영 수업에 나선 사위도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사위 정종환(36) 씨다. 정 씨는 이 회장의 장녀 이경후(31) CJ오쇼핑 과장의 남편이다. 새로운 ‘황태자’로까지 거론되며 주목받는 그의 존재는 이 회장의 부재 속에 그룹을 이끌어 오던 이미경 CJ그룹 부회장마저 건강상의 문제로 최근 경영에서 한 발 물러나면서 더욱 주목 받고 있다. 오너의 공백이 길어지는 가운데 회장의 친자녀인 경후 씨와 최근 CJ올리브네트웍스의 3대 주주에 오른 이선호(26) 씨가 단기간 내 그룹 경영에 뛰어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정 씨는 최근 본격적으로 그룹 현황 파악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CJ의 미주법인인 CJ아메리카 소속이다. 현재 CJ아메리카 업무 외에 타 계열사 현황 파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 씨는 CJ그룹 입사 전 미국 씨티은행과 모건스탠리에 근무한 적이 있다.

CJ의 한 임원은 “내부에 그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진 상황은 없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떤 역량을 쌓아 3세 경영 시대에 전문 경영인으로서의 입지를 굳힐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한편 ‘마이 웨이’를 외치며 그룹 지붕을 떠난 사위도 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맏사위인 선두훈 코렌텍 대표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정 회장의 큰딸 정성이 이노션 고문과 결혼한 그는 1985년 선병원 영훈의료재단을 설립한 고 선호영 박사의 차남이다. 현재 그는 선병원 이사장도 맡고 있다. 정형외과 의사인 선 대표는 인공관절 분야 ‘명의’로 꼽힌 경험을 살려 인공관절 제조 업체인 코렌텍을 2000년 직접 창업했다. 독보적 기술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지난해부터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

지난해 3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고 현재 국내 인공관절 시장에서 약 23%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의료 기기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높게 평가받아 지난해 12월에는 보건복지부 등을 통해 100억 원 정도의 투자금을 받았다.

코렌텍은 2009년 현대차그룹 대기업집단에서 제외되기는 했지만 부인인 정성이 고문과 처제인 정명이 현대커머셜 고문, 정윤이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전무가 총 6.0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차량 부품 사업 등을 영위하고 있는 현대위아가 4.05%의 지분을 갖고 있는 등 현대차그룹과의 관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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