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를 사랑한 유비와 소동파

군자의 덕성 닮아…보이차 기원 된 제갈량의 지팡이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소동파는 성정이 활달해 재치 있고 유머가 넘쳤다. 식도락가였던 그는 먹고 마시기를 즐겼다. 자신이 직접 창안한 요리인 동파육(東坡肉)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며 시와 문장을 짓기도 했다.

동파는 차를 마시는 것도 굉장히 좋아해 거의 중독 수준이었던 모양이다. 자신이 마실 찻잔과 차를 끓일 주전자(茶壺)를 만들기 위해 직접 도자기 굽는 연습도 했을 정도다.

하루는 사마광이 물었다. ‘자치통감’의 저자인 사마광은 소동파의 정치적 후견인이기도 했다.

“동파! 자네는 차 마시는 것도 좋아하고 먹(墨)을 가는 것도 좋아하는데 무슨 연유인가? 차는 흴수록 좋고 먹은 검은 것이 좋고, 차는 무거울수록 좋은데 먹은 가벼워야 좋고, 차는 새것이 좋은데 먹은 오래 묵은 것을 높이 치지 않는가?”

소동파가 말했다.

“좋은 차나 좋은 먹은 둘 다 향기가 뛰어납니다. 이는 군자의 덕성과 같습니다. 좋은 차나 좋은 먹은 성질이 견고합니다. 이 또한 군자의 지조와 같습니다. 차와 먹은 전혀 달라 보이지만 이렇게 서로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차를 마신 역사는 아주 오래됐다. 물론 원시시대에는 지금과 같은 기호식품이 아니라 단순한 야생 채소의 일종이었을 것이다. 차의 발원지인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 차가 일상의 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차를 마시면 머리가 맑아진다”
진한시대에는 차가 술을 대신하기도 할 정도로 차가 더욱 일상화됐다. 차를 파는 시장도 생겼다. 차를 고급 선물로 치는 풍습도 생겨났다. 오나라 마지막 황제 손호(孫皓)가 총애하는 신하에게 술 대신 차를 하사한 기록도 있다. 명의 화타가 지은 ‘식론(食論)’에는 “차를 오래 마시면 머리가 맑아진다”는 기록이 있다. 위진남북조시대에는 본격적인 다도(茶道)가 시작됐다고 한다.

소설 ‘삼국지’의 배경이 진한시대와 위진남북조시대의 중간에 해당하는 만큼 ‘삼국지’에 차에 대한 스토리가 없을 수 없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유비 현덕이다. 일본 작가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에 나오는 이야기다. 유비는 평소 어머니와 함께 돗자리와 짚신을 만들어 파는 행상으로 끼니를 이어 갔다.

효성이 지극한 유비는 어머니가 평소에 늘 차를 마시고 싶어 하지만 가난한 살림살이에 비춰 턱없이 비싼 차를 사 드리지 못하는 게 마음 아팠다. 유비는 행상으로 몇 년간 가까스로 모은 돈을 들고 부둣가에 나가 낙양에서 차를 싣고 황하를 타고 오는 배를 기다린다.

낙양 상인은 유비의 행색을 보고 핀잔부터 준다. “우리 차는 워낙에 고가라 당신이 살 수 없을 게요!” “제 어머니의 평생소원입니다!” 유비의 효성에 감복한 상인이 차를 대폭 할인해 건네줬다.

이때 갑자기 황건적의 한 무리가 나타나 시장이 아수라장이 된다. “우리 수령 장각님께서 차를 아주 좋아하신다!” 도적떼는 유비의 차도 빼앗아 버린다. 유비는 칼을 들고 저항했지만 중과부적이었다. 마침 장비가 나타나 유비의 목숨을 구해준다. 차도 돌려준다. 훗날 도원결의를 하는 유비와 장비의 첫 만남은 이렇게 차가 인연이 된 것이다.

제갈량이 남방의 맹획을 토벌하러 군사를 이끌고 운남(雲南)으로 갔다. 병사들이 물갈이를 심하게 하는데다 눈병까지 생겼다. 상황이 다급해지자 제갈량이 들고 있던 지팡이를 근처 산기슭의 바위에 꽂았다. 그러자 신기하게 지팡이가 한 그루 차나무로 변했다. 찻잎을 따서 물에 우려내 눈 위에 발라주자 병사들의 눈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공명의 지팡이에서 나온 이 차가 바로 보이차라고 한다. 이 전설로 미뤄 보면 당시 사람들이 차를 음식으로뿐만 아니라 약으로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관우가 조조 수하의 우금을 물리치고 그 여세를 몰아 조인을 공격하던 때였다. 방심한 관우가 조인의 병사가 쏜 독화살을 맞았다. 다급해진 장수들이 사방으로 수소문해 화타를 모셔왔다. 명의를 모셔왔는데 대접이 소홀할 수 없다. 관우와 화타 두 사람은 예를 갖춰 인사를 나눴다. 관우의 부하들이 비싼 차를 정성껏 달여 화타를 대접했다. 차를 마신 화타가 진료를 시작했다.

“제가 장군의 팔을 기둥에 매고 수술을 하겠습니다. 각오를 단단히 하시기 바랍니다.” “그 정도 일로 수선을 피울 필요가 없습니다. 수술하시는 동안 술이나 마시면서 바둑이나 두렵니다.” 관우의 담대함으로 수술은 의외로 쉽게 끝났다.


적벽대전 앞두고 차를 대접한 조조
적벽대전을 앞두고 방통이 조조 군대가 주둔한 수군 진영으로 찾아왔다. 명망이 높은 전략가가 친히 찾아오자 기분이 좋아진 조조가 사람들을 하나하나 소개하며 방통을 극진히 우대한다. “여봐라! 천하의 재사(才士)이신 봉추 선생께서 친히 우리를 찾아 주셨다. 속히 향기 좋은 차를 내어 오너라!”

옛말에 차를 따르고 마실 때에는 모름지기 ‘관우가 성안을 순찰하듯이 절도가 있어야 하고 한신이 군사들을 사열하듯이 세심해야 한다(關羽巡城, 韓信點兵)’는 말이 있다. 함께 모여 차를 마실 때 차를 따르는 사람은 차근차근 순서를 지켜 차를 따라야 하고 한 방울의 차도 흘리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소리다.

이런 말을 정면으로 어긴 여인이 있다. 오우삼 감독의 영화 ‘적벽대전2’에 보면 오나라 도독 주유의 아내 소교(小喬)가 나온다. 그녀는 적벽대전을 앞두고 오나라와 위나라 간에 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해 혈혈단신 조조의 군영으로 뛰어든다. 소교는 영화에서 조조의 짝사랑하는 연인으로 등장한다.

소교는 조조에게 비싼 차를 넘치도록 따라준다. 그리고 훌쩍 술잔 들이키듯 차를 마시려는 조조에게 한마디 한다. “승상! 차는 먼저 색깔을 보고 그다음에 향기를 맡으며 천천히 마시는 것입니다. 세상사란 이렇게 찻잔처럼 너무 차면 넘치기 마련이지요. 바로 지금 승상의 마음처럼 말입니다.” 천하의 영웅 조조가 가냘픈 여인에게 일격을 맞는 순간이다.


사족: 중국과 일본에서 차가 성행하고 다도가 발달한 것은 순전히 수질(水質) 때문이다. 옛날 한국은 그 어느 고장, 그 어떤 샘물을 그냥 마셔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수질이 좋았다. 중국과 일본은 물에 석회석이 많아 차로 우려내는 등 정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차가 제사 때나 쓰이고 양반들의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상징하는 사치품이었던 우리와 달리 중국과 일본은 지금도 중요한 일상 음료다. 한국에선 차가 일상 음료가 아니라 예절을 넘어 도(道)의 수준까지 올라갔다는 점에서 중국과 일본의 다도는 한국의 다도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하지만 필자처럼 차의 진미(眞味)를 잘 몰라도 일상적으로 차를 무척 즐기는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하여간 번쇄한 다도의 격식은 내 취향은 아니다. 그래서 필자는 차의 덕성과 지조를 논하는 소동파의 뜬구름 잡는 소리보다는 이어령 선생의 소박한 이 말이 더 좋다. “차 맛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와 함께 마시느냐로 그 맛이 결정된다.”


김진국 칼럼니스트, ‘재벌총수는 왜 폐암에 잘 걸릴까?’ 저자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