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 차트와 바둑판, 다르지 않아요”

차진혁 삼성증권 도곡지점 주임

바둑과 직장 생활을 절묘하게 접목한 드라마 ‘미생’ 속 장그래가 현실에도 존재했다. 차진혁 삼성증권 주임은 10세 때 바둑을 시작한 한국기원 연구생 출신이다. 윤태호 작가가 웹툰 미생을 준비할 때 e메일을 주고받기도 했다. 최근 ‘증권가의 장그래’라고 불리며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새삼 주목받고 있다. 차 주임과 장그래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낙하산이 아니라 정식 채용으로 입사했다는 것이다.

하루 16시간을 꼬박 바둑에 투자했던 차 주임은 17세 때 과감히 결단을 내렸다. 이후 차 주임은 중·고등학교를 모두 검정고시로 통과하고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합격했다. 이때 배운 시나리오는 입사한 뒤 상품에 대해 고객이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 설명하거나 특정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세상이 흘러가는지에 대한 스토리텔링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됐다.

차 주임은 검정고시 출신이라는 사실 때문에 리더십·사회성이 부족할 것 같다는 편견이 생길까봐 이를 보완하기 위해 학군사관후보생(ROTC)으로 복무했다. 근무지는 연평도 지역의 6사단 최전방이었다. 이때 증권사에 입사하려고 목표를 정했다.

복무 기간 중에 금융 자격증을 따려고 했지만 2010년 11월에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났다. 차 주임은 “그 뒤 4개월 동안 완전군장한 채 하루 6시간만 잘 수 있었는데 그걸 쪼개 매일 2시간씩 공부했다”며 “첫 면접 때 훈련이 끝나자마자 정복을 입고 면접장에 간 의지와 대학 내내 7번의 장학금을 받은 성실함을 인정받았다”고 합격의 비결을 밝혔다.

입사 후에도 고군분투는 끝나지 않았다. “회사에 들어왔을 때 마치 미생의 장그래처럼 증권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고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차 주임은 주말마다 회사에서 진행하는 교육을 받고 매일 밤 9~10시까지 회사에 남아 공부했다. “항상 무거울 정도로 두툼한 자료를 들고 다니며 집에서도 공부했다. 그렇게 2년을 하니 조금씩 증권업이 몸에 익는 느낌이 들었다.”


‘증권가의 장그래’로 불리며 주목
증권업을 왜 선택했느냐고 묻자 차 주임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답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바둑은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다. 본인의 노력과 실력으로 바둑을 두면 그걸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한다. 연극·영화 분야도 두 시간의 쇼를 만들어 1만 명을 즐겁게 하면 2만 시간, 즉 본인이 준비한 시간보다 많은 시간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차 주임은 “증권업도 이와 다르지 않다”며 “내가 노력하면 실력으로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종목 분석 능력으로 유명한 차 주임은 “복기(한 번 두고 난 바둑을 다시 처음부터 놓아 보는 것)를 통해 바둑의 몇 백 수를 외우는 데 증권업계의 차트가 바둑판과 유사하게 느껴진다”며 “그 덕분에 감각적으로 지금 갈 자리인지, 갈 자리가 아닌지 파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변화무쌍한 길을 걸어온 차 주임은 어떤 미래를 보고 있을까. “‘기본으로 돌아가라(Back to the basic)’는 김석 삼성증권 전 사장의 말처럼 내가 이 증권사에 왜 왔는지 늘 생각한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 내 고객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금융인이 되고 싶다.”


이시경 인턴기자 ck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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