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은 ‘무모한 도전’이 아니다

고객이 원하지 않는 제품과 기술은 시장에서 의미 없어

새해 벽두가 되면 빠짐없이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기사가 있다. 올해도 다음의 둘 중 하나는 어김이 없었다. 하나는 취업 관문을 용케 뚫은 신입 사원들의 포부에 대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눈에 띄는 아이템으로 창업한 사람들의 희망에 대한 얘기다. 바야흐로 창업이 화두다. 한때 거품처럼 일어났던 인터넷과 정보기술(IT) 벤처 붐 이후 새로운 열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수년간 저성장이 계속되면서 취업보다 창업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정부도 경제성장의 돌파구로 연일 창업 관련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창업정책금융, 창업지원센터, 창업 관련 규제 완화, 심지어 창업주들에게 연대보증도 면제해 주겠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폭발적으로 창업이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과 중소기업청의 자료에 따르면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00년 이후 작년의 창업 기업은 사상 최다다. 재작년인 2013년 창업 기업은 7만5000여 개로 역시 사상 최다였다. 그러나 이 기록은 단 1년 만에 경신됐다. 작년 한 해 창업한 기업은 8만 개를 넘는다. 청년 실업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다 보니 대학 내 창업 동아리도 급속도로 늘고 있다. 2010년 600여 개에 불과했지만 2012년 1222개, 2013년 1833개, 작년 5월 말까지가 2949개였다.



창업 기업 수 역대 최다 기록 넘어서
이처럼 창업의 열기가 끓어오르지만 한편으로는 어두운 이면도 존재하고 있다. 작년 11월 말까지 법정 관리를 신청한 기업은 총 1273곳이다. 이는 2009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 위기의 영향 속에서 895개 기업이 법정 관리를 신청한 것과 비교해 보면 1.5배 정도 증가한 기록이다. 2013년 현대경제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새로 창업한 기업의 58.6%가 3년을 넘기지 못한다고 한다. 1년을 넘기지 못하는 기업도 17.3%에 이른다. 창업 기업으로서 10년 이상 사업을 지속하는 곳은 8.2%에 불과하다. 창업 기업의 성공률도 높지 않지만 저성장 기조가 지속되면서 폐업 기업 증가를 부채질하고 있다.

창업 기업이라면 반드시 겪는다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란 개념이 있다. 이는 새로운 기술이나 사업 모델을 개발해 창업에 성공한 기업이 사업화 단계에서 겪는 여러 가지 고통의 과정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을 놓고 세계 각국의 정책 관계자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역동적인 혁신 경제’라는 주제로 미래창조과학부 등 5개 부처의 업무 보고를 받았다. 이 자리에서 “여전히 많은 신생 기업이 창업 이후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죽음의 계곡’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창업 기업들이 시장 진출 과정에서 겪는 자금 조달이나 판로 확보 등의 애로 사항을 해소하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업 기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속칭 ‘죽음의 계곡’을 넘어야 한다. 여러 가지 조건 중 몇 가지만 살펴보자.

창업에 실패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전문가들이 꼽는 것은 창업 기업이 개발한 상품을 제대로 팔지 못하는 것이다. 상품의 기술력이나 수준이 떨어져서일까. 아마 그렇다면 출시 자체가 안 됐을 것이다. 창업을 하기 위해서는 속칭 ‘벤처 정신’이 요구된다. 키워드는 ‘도전’이다. 이러한 정신이 없다면 창업하기도, 성공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이는 자신의 상품에 대한 과신과 기존 경쟁자에 대한 무모한 도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부모는 자기 자식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가끔 TV에서 창업 아이디어 관련 오디션을 보면 한결같이 자신의 아이디어로 개발한 상품을 자기 자식과 같이 생각한다. 그러나 시장은 냉담하다.

마케팅 분야 석학인 존 거빌(John Gourville)은 2006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왜 혁신적인 신제품도 성공하기 어려울까’라는 주제로 재미있는 논문을 실었다. 논문에서는 시장에 출시된 신제품의 실제 가치를 3이라고 가정한다. 이에 대해 이 제품을 개발한 회사의 사람들은 얼마 정도로 생각할까. 조사 결과 실제 가치보다 3배 정도 많은 9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면 실제 시장에서 이를 받아들이는 소비자들은 어느 정도로 인식할까. 실제 가치의 3분의 1 정도인 1로 인식한다고 한다. 동일한 제품에 대해 개발자와 소비자의 인식 차이가 무려 아홉 배에 이르는 것이다.

2001년 특이한 모양의 운송 수단이 세상에 나왔다. 미국의 발명가 딘 카멘이 만든 이 제품은 1인용 전동 스쿠터로, 이름은 ‘세그웨이(Segway)’다. 오뚝이 같은 균형 메커니즘을 이용해 탑승자가 넘어지지 않도록 했다. 몸을 앞뒤로 기울이기만 하면 자동으로 전진하거나 방향 전환, 정지가 가능했다. 전문가들은 도시의 출퇴근 풍경을 바꿀 획기적인 제품이라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스티브 잡스와 제프 베조스는 인터넷보다 더 혁신적으로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칭찬을 하며 거액을 투자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어떠한가. 일부 마니아 계층이나 특수한 상황에서만 사용되는 운송 수단에 불과하다.


개발 상품에 대한 과신은 위험
개발자가 아무리 세계 최초의 혁신적인 상품이라고 얘기해도, 그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라고 하더라도 고객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거기서 끝이다. 따라서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고객들이 무엇에 반응하는지 철저히 분석하고 이에 맞춰야만 한다. 즉 시장의 니즈를 우선하고 여기에 반응해야 하는 것이다. ‘창업에 성공하려면 어떤 아이템이 좋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장에서 원하는 아이템은 무엇인가’로 생각의 전환을 해야 그만큼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세계적인 디지털 셋톱박스 기술을 통해 디지털 홈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휴맥스는 벤처기업의 전설과 같은 존재다. 이미 연매출도 1조 원이 넘어선 지 오래다. 1989년 기술력을 가진 엔지니어들이 의기투합해 회사를 설립했다. 뛰어난 엔지니어들이 모인 만큼 첫 출시 제품으로 매우 우수한 품질을 지닌 프로그램 개발용 장비를 선보였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무척 냉담했다. 이때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컴퓨터는 물론 디스켓도 잘 모르는 시기였다. 이런 시기에 프로그램 개발이라니…. 소비자들의 반응이 차가운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도산의 위기에 빠진다. 그러나 반전의 기회가 왔다. 바로 오늘날의 휴맥스를 만든 일등 공신인 디지털 셋톱박스다. 이 상품은 철저히 고객의 니즈에 대응하면서 개발되고 발전됐다. 시장 역시 철저한 분석을 통해 충분한 니즈가 있는 곳을 찾았고 결과적으로 유럽의 개인용 셋톱박스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고 이를 발판으로 세계시장을 석권하게 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유의할 것이 있다. 휴맥스가 성공을 거둔 유럽 개인용 셋톱박스 시장은 사실 틈새시장이라고 볼 수 있다. 기업용 셋톱박스와 같이 필립스·소니 등 대기업이 들어가 있는 시장에서 이들과 경쟁했다면 아마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상품과 서비스, 고객 또는 유통 채널 등을 세분화하고 기존의 강력한 경쟁자들을 피할 수 있는 틈새를 공략하는 것이 창업 기업의 또 다른 성공 전략이다. 최근 중국의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과 애플을 위협하는 샤오미도 마찬가지다. 샤오미는 기존 시장의 강자들인 삼성·애플과 다른 유통 경로를 가지고 판매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판매 전략 자체가 달랐던 것이다. 수려한 디자인과 저렴한 생산력을 핵심 역량으로 인터넷을 통한 판매 채널을 집중적으로 공략했고 한국과 같은 오프라인 대리점 채널을 중심으로 한 판매는 최소화했다. 결과는 대성공적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창업스쿨인 ‘마틴 트러스트 창업가 정신 센터’를 이끌고 있는 빌 올렛 교수도 틈새시장을 강조한다. 이에 대한 예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든다. 이 지역을 탈환함으로써 유럽 전역을 확보한 것과 같이 창업자가 우선적으로 집중 공략할 시장을 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 시장이 너무 크면 곤란하다. 처음 발을 들여놓는 시장은 학습의 장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는 터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작은 시장에서 충분히 배우고 자기 존재감을 보이고 이를 발판으로 더 큰 시장으로 나갈 것을 주문한다.

누구도 쫓아오기 어려운 탁월한 기술을 기반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해도 고객이 원하지 않거나 기존 경쟁자의 강력한 진입 장벽에 막혀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장의 니즈에 철저히 대응하고 경쟁을 최소화할 수 있는 틈새시장을 찾아야 한다. 또한 창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창업 네트워크를 구축, 활용해야 한다. 창업을 위해서는 기술, 사업 모델, 투자 자금, 인력, 시스템 등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이 이를 모두 갖추기는 사실상 어렵다. 따라서 자신이 필요한 자원을 원활하게 확보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활용해야 실패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창업을 원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최적의 네트워크는 미국의 실리콘밸리다. 실리콘밸리는 미국 벤처캐피털의 40%가 집중돼 창업 기업에 충분한 자금을 공급할 수 있는 투자 환경이 마련돼 있다. 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기업이 빠르게 등장하고 사라지는 치열한 경쟁 터지만 그 와중에도 기업, 대학 및 연구소, 사업 지원 서비스 기업 간에 인력과 정보가 활발하게 교류되는 매우 촘촘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한국도 이와 같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갈 길이 먼 게 사실이다. 하지만 활용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최대한 조사하고 준비해 사업 수행에 이용해야 한다.


네트워크 구축이 성공의 지름길
일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네트워크는 창업 관련 기관이나 다양한 지원 사업이다. 창업 기업인 더하이브는 전기를 연결할 필요가 없는 USB 충전식 전동공구를 개발했다. 그런데 판로 개척이 어려웠다. 이때 중소기업진흥공단의 도움으로 북미무역사절단에 참여하고 청년창업사관학교에도 입학했다. 이곳에서 컨설팅을 받고 기술 개발과 마케팅 등에 필요한 자금도 수억 원을 지원받았다. 더하이브는 최근 미국 시어스백화점의 공구 브랜드인 크래프트맨에 제조업자 개발 생산 방식(ODM)으로 납품을 성사시켰다. 그리고 프랑스와 일본에도 수출을 시작했다.

국내 1위 모바일 리서치 기업인 아이디인큐도 글로벌 청년 창업 활성화 지원 사업의 덕을 봤다. 여기에서 자본금을 지원 받았고 투자자도 소개를 받았다. 그리고 실리콘밸리에 가서 현장 체험을 하기도 했다. 이를 기반으로 아이디인큐는 전국적인 설문 조사를 3시간 내에 완료할 수 있는 리서치 시스템을 개발했다. 현재는 삼성전자·현대자동차·현대카드 등 550여 개 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했다. 그리고 국내 모바일 리서치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다.



창업 기업끼리 서로 협조할 수 있는 자생적인 네트워크도 구축할 수 있다. 2012년 8월에 아이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창업해 2014년에 이름을 바꾼 옐로모바일이 대표적이다. 작년 11월에는 실리콘밸리 상위 벤처 투자회사인 포메이션8이 이 회사에 1억 달러를 투자하면서 미래 가치를 1조 원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요즘 개그맨 신동엽 씨가 TV 광고하면서 우리의 귀에 익숙한 ‘한방의 핫딜 검색 다함께 쿠차차’가 바로 옐로모바일의 사업 중 하나다. 옐로모바일은 독자적 생존이 어려운 신생 기업들이 서로 적극적으로 협력하면서 개별 기업들이 자신만의 핵심 역량에 집중할 수 있는 새로운 벤처 비즈니스의 생태계를 만들었다.

옐로모바일은 최근 2년 사이에 해당 서비스 분야의 1~2위 벤처기업을 주로 지분 교환 방식으로 50여 곳을 인수했다. 물론 운영 원칙은 ‘따로 또 같이’다. 기업을 인수하더라도 경영권은 기존 대표에게 전적으로 맡긴다. 그러다 보니 개별 기업들은 관리 및 운영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또한 필요한 자금 조달도 훨씬 용이해졌고 시장 개척도 개별 사업 간의 크로스 마케팅을 통해 쉬워졌다. 이상혁 옐로모바일 대표는 “여러 기업의 매출이 합쳐지니 재무적인 측면에서 규모가 커진 것은 물론 전문 인력과 트래픽을 공유하며 상부상조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 2013년 매출은 230억 원, 영업이익은 70억 원을 기록했다. 2014년에는 매출 3500억 원, 영업이익 500억 원을 추정하고 있다.

사업 아이디어를 만들고 기술을 개발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만든 사업이 시장에 안착해 수년간 영위되기는 더 어렵다.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시장의 니즈를 우선하고 작은 시장에서 충분히 공부하며 힘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협조 받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통해 더 큰 시장으로 한 단계 뛰어넘어야 한다. 여기에 또한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창업가 정신이다. 그리고 “벤처는 아이디어가 아무리 훌륭하고 자금이 아무리 풍부하고 제품이 아무리 뛰어나고 수요가 아무리 많아도 사업으로서 관리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피터 드러커의 말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강성호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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