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차, 카레이서와 실력 겨룬다

자율 주행 연구의 산실 스탠퍼드대연구소…자동차 업체들 앞다퉈 제휴 손길


실리콘밸리의 중심 도시 팰로앨토와 멘로파크를 끼고 있는 스탠퍼드대는 8000에이커에 달하는 방대한 캠퍼스를 자랑한다. 차를 타지 않으면 캠퍼스를 제대로 돌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유명 벤처캐피털들이 밀집해 있는 샌드힐로드와 접해 있는 동쪽 끝에는 학내 골프코스와 농장이 들어서 있다. 2007년 문을 연 스탠퍼드자동차연구센터(CARS)는 한적한 이 지역에 뚝 떨어져 자리 잡고 있다. 자동차 정비소를 연상케 하는 단층 건물이다.

CARS는 자율 주행 연구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곳이다. 1월 초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 가전쇼(CES)에서 자율 주행차를 선보여 화제를 모은 아우디와 메르세데스-벤츠가 모두 이 연구소의 후원 기업이다. 2010년에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직접 이곳을 방문해 자율 주행 연구 현황을 살펴보기도 했다.

아우디는 A7 모델을 이용해 실리콘밸리를 출발해 CES가 열린 라스베이거스까지 885km를 자율 주행으로 달리는 획기적인 이벤트를 연출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거실 같은 공간을 구현한 럭셔리 자율 주행차 F015를 공개했다. 크리스 저디스 CARS 소장은 “자율 주행 기술이 얼마나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지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지난해 아우디는 제한된 거리를 운행하는데 그쳤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차가 스스로 주행하게 될 때 어떤 가능성이 열릴 수 있는지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구글에 자극 받은 자동차 업계 잰걸음
CARS는 자동차 관련 업체들과 자율 주행에 대한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소 후원 기업만 봐도 최근 자율 주행에 쏟아지는 뜨거운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연구소는 처음 6개 후원 기업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이듬해 금융 위기 여파로 자동차 업계가 치명타를 입으면서 후원 기업이 5개로 줄었다. 크리스 저디스 CARS소장은 “지난 수년 사이 기업들의 관심과 방문 요청이 극적으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현재 연구소의 후원 기업은 모두 30곳에 달한다. 제너럴모터스(GM)·포드·크라이슬러·메르세데스-벤츠·BMW·폭스바겐·닛산·도요타·볼보·르노·현대차 등 세계 주요 자동차 업체들이 망라돼 있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델파이·보쉬·덴소 등 자동차 부품 업체들은 물론 보험회사(올스테이트·스테이트팜보험)와 렌터카 업체(엔터프라이즈), IT 기업(인텔·엔비디아·텍사스인스트루먼트·파나소닉·LG)까지 자율 주행에 투자하고 있다. 저디스 소장은 “보험회사들은 사고 시 법적 책임과 보험으로 커버해야 할 리스크에 대해 궁금해 한다”고 말했다.

지난 1월 16일 방문한 CARS 차고에는 폭스바겐을 개조한 자율 주행차 시제품이 자리해 있었다. 2005년 미국 국방부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100만 달러를 걸고 개최한 자율 주행차 대회에서 132마일을 달리며 우승을 차지한 ‘스탠리’의 진화된 버전이다. 아우디의 자율 주행차는 기능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옮겨 놓았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이 직접 제작한 자율 주행 레이싱카 X1도 눈길을 끌었다. 저디스 소장은 일급 카레이서와 X1의 운전 ‘실력’을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자율 주행차가 카레이서에 버금가는 운전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디스 소장은 “노련한 카레이서가 선택한 주행 경로는 컴퓨터가 수학적 시뮬레이션을 찾아낸 최적 경로와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의 자율 주행 개발 붐을 촉발한 것은 다름 아닌 실리콘밸리의 구글이다. 2009년 구글은 비밀 연구 프로젝트 ‘구글X’를 통해 자율 주행차 개발에 뛰어들었다. 2005년 DARPA 대회에서 우승한 스탠리 팀을 이끈 세바스티안 스런 스탠퍼드대 교수를 영입해 개발 책임을 맡겼다. 래리 페이지 구글 창업자는 개발팀에 일반 도로 10만 마일 주행이라는 야심찬 목표를 제시했다. 저디스 소장은 “구글의 대담한 행보에 자극받은 자동차 업체들이 지난 2년간 자율 주행 기술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고 말했다.

구글은 지난해 5월 자체 개발한 2인승 자율 주행차 시제품을 선보이며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 갔다. 프리우스와 렉서스를 개조해 활용하던 데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이다. 바퀴 달린 케이블카를 닮은 새 자율 주행차는 운전대와 가속페달 대신 센서와 소프트웨어만으로 작동한다. 최고 속도는 시속 25마일로 제한했다. 구글의 자율 주행차 개발팀에 자문을 해준 브래드 템플턴 싱귤래리티대 교수는 “첫 시제품으로 저속 2인승차를 선택한 것은 복잡한 안전 규제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며 “여러 가지 실험과 테스트를 충분히 거치고 나서 크고 빠른 차로 확대하면 된다”고 말했다. 구글은 2인승 자율 주행차 100대를 제작해 본격적인 운행 실험에 돌입할 계획이다.


‘운전자 없는 우버 서비스’ 현실화되나
구글을 지켜보는 자동차 업계의 시선엔 기대와 두려움이 뒤섞여 있다. 저디스 소장은 “스마트폰에서 일어난 일이 자동차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며 “구글이 자율 주행차의 운영체제(OS)를 만들고 자동차 업체들은 ‘핸드셋’만 조립하는 처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를 사로잡는 디자인이 강점인 애플이 자신들만의 자율 주행차를 선보일 수도 있다. 전기차 분야의 새로운 강자인 테슬라도 이미 자율 주행 구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저디스 소장은 “자동차 회사들이 CES에 적극 참여하고 IT 기업들과 협력에 나서는 것은 향후 자율 주행 시대에 좀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업체와 구글의 접근법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구글은 100% 자율 주행차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목적지만 입력하면 차가 알아서 데려다 주는 형태다. 핸들을 없앤 2인승 시제품이 구글의 야심을 잘 보여준다. 반면 자동차 업계는 좀 더 신중한 입장이다. 자동차가 차로 중앙에 위치하도록 유지하는 기능과 앞차와 안전거리를 자동으로 유지하게 만드는 기능, 자동 주차 기능 등은 이미 상용화됐거나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2016년에는 다수 업체들이 고속도로를 달릴 때나 교통 체증으로 가다 서다를 반복할 때 자동 운전이 가능한 핸즈프리 운전 시스템 선보일 예정이다. 자동차 업계는 자율 주행 기능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전략을 선호한다.

이는 결코 사소한 차이가 아니다. 자율 주행차는 자동차 산업 자체를 전복할 파괴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저디스 소장은 “자율 주행차와 함께 ‘서비스로서의 이동성’이 부각될 것”이라며 “운전자 없는 우버 택시 서비스를 상상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산으로 주말 가족 여행을 갈 때 자율 주행차 서비스를 불러 목적지를 이야기하고 집에 돌아와 다시 돌려보내는 시나리오다. 이렇게 되면 굳이 자동차를 소유할 필요가 없다. 저디스 소장은 “자동차 회사들이 말하는 ‘운전 쾌감’은 조작된 신화라는 주장도 있다”며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이동하는 수단이라는 본질만 남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소비자들이 궁극적으로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저디스 소장은 철학자들과 자율 주행을 둘러싼 윤리적 문제도 연구 중이다. 미국에서 도로 중간에 그어진 노란색 줄 두 개는 차가 그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걸 뜻한다. 하지만 만약 앞에서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어떤가. 인간은 노란 선을 침범하더라도 융통성 있게 사고를 피해 간다. 자율 주행차에도 이런 융통성을 허용해야 할까. 저디스 소장은 “법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과 이동성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추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코너를 돌 때 보행자에게 어느 정도 공간을 줘야 하는지, 자전거를 지나갈 때 안전거리를 얼마나 유지해야 하는지를 판단할 때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많은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면 위험성 때문에 사람들이 외면할 것이다. 반대로 리스크를 전혀 감수하지 않으면 보행자나 자전거를 볼 때마다 서야 하기 때문에 아무도 그걸 원하지 않을 것이다. 자율 주행차의 법적 책임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저디스 소장은 “사고에 대해 누가 책임을 지고 보상해야 하는지는 아직 정해진 답이 없다”며 “지역마다 나라마다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유럽에서는 자율 주행차를 생산하는 기업들이 돈을 내 기금을 만드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사고가 나면 피해자는 이 기금에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반면 미국은 이런 모델이 적합하지 않다. 법체계의 특성상 실제 법정에 가기 전까지는 법적 책임의 대상과 범위를 명확하게 정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저디스 소장은 “우리는 스마트폰 등 다양한 기계와 이미 상호작용하는 데 익숙하지만 자율 주행차는 인간이 하는 것과 똑같은 일을 하는 기계이기 때문에 완전히 차원이 다른 문제”라며 “자율 주행차와 관련해 답해야 할 곤혹스럽고 매혹적인 의문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 브래드 템플턴 싱귤래리티대 교수
“노인층이 자율 주행차 얼리어답터 될 것”

브래드 템플턴 교수는 2011~2012년 구글 자율 주행차 개발팀에 자문을 제공한 전문가다. 현재 실리콘밸리 나사(NASA) 리서치 파크에 있는 싱귤래리티대에 재직 중이다. 그는 자율 주행차가 신기술에 열광하는 젊은층이 아니라 50대 이상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더 환영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율 주행에 가장 앞서 있는 자동차 업체는.
“독일 업체들이 가장 앞서 있다. 메르세데스-벤츠와 BMW가 톱 2다. 아우디와 폭스바겐이 그 뒤를 따른다. 미국 기업과 닛산·도요타 같은 일본 업체도 열심이다. 중국 기업들도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한국 업체를 뺀 거의 모든 기업이 경쟁에 나서고 있다.”


구글의 의도는 뭔가.
“많은 자동차 회사가 구글이 자율 주행차를 생산하는 자동차 회사가 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최근 구글은 그럴 생각이 없다는 걸 분명히 했다. 자율 주행차를 만들기 위해 컨티넨털 등 6개 기업과 파트너십을 구축할 계획이다. 구글은 많은 것을 만들고 있다. 그 모든 걸 자동차를 매개로 통합하고 싶어 한다. 지도도 중요한 포인트다. 자율 주행차는 현재 구글맵이나 애플맵을 기반으로 움직일 수 없다. 좀 더 실제에 가까운 3D 맵이 필요하다. 세계에 대한 완전히 다른 지도가 필요한 것이다. 지도는 자율 주행차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자율 주행차에 대한 수요가 굉장히 많다. 일단 만들면 판매는 걱정할 필요 없다. 정부도 적극적으로 돕고 싶어 한다. 자동차 산업의 재편을 예상하기 때문이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코닥이 무너진 것처럼 뒤처진 곳은 사라질 수 있다. 한국도 자율 주행차를 만들지 않으면 자동차 산업 자체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앞으로 관건은 충분한 테스트를 통해 안전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100% 안정성이 아니다. 그건 불가능하다.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믿어야만 그걸 팔 수 있다. 자율 주행차는 일반적인 운전자보다 훨씬 뛰어나다. 운전 중 한눈을 팔지 않고 졸음운전도 하지 않으며 쉽게 흥분하지도 않는다.”


노년층이 주요 소비자가 되는 이유는.
“운전이 쉽지 않은 노인층에게 이동성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인층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인구에서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베이비붐 세대들은 대부분이 교외에 나가 살고 있다. 교외 지역엔 대중교통이 별로 없다. 자율 주행차의 얼리어답터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몸이 불편해 운전에 제약을 받는 수백만 명의 장애인도 혜택을 볼 수 있다.”


자동차 산업에 미칠 영향은.
“세계적으로 교통수단과 관련된 생태계의 총가치는 대략 7조 달러다. 이 엄청난 시장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열릴 것이다. 자율 주행차는 ‘소유’가 아니라 ‘서비스’다. 운전자 없는 우버와 같다. 택시는 운영비 60% 운전자 경비다. 자율 주행차는 저렴한 우버 서비스인 셈이다. 매일 필요에 따라 다양한 차가 나를 태우러 오는 것이다. 오늘은 소형차가 오고 내일은 가족을 위한 미니밴, 모래는 스키 여행을 위한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이 온다. 자율 주행차는 도시의 모습도 바꿔 놓을 것이다. 현재 도시는 20세기에 자동차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교통수단의 의미와 규칙이 바뀌면 도시의 형태가 달라질 것이다.”


스탠퍼드·모펫필드(미국)=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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