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증세’로 중산층 달래기

10년간 3200억 달러 세수 확보…중산층 지원에 사용

"미국 경제에 위기의 그림자가 지나갔다. 이제는 중산층을 살려 미국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야 할 때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20일 신년 국정 연설에서 ‘중산층 살리기’를 핵심 국정 어젠다로 제시했다. 경제 회복의 과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중산층을 살리자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소수만 성공하는 경제를 받아들일 것이냐, 노력하는 모든 이들의 소득 증대와 기회 확대를 창출하는 경제에 충실할 것이냐”고 물은 뒤 “대답은 자명하다. 중산층 경제”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를 위해 증세 카드를 꺼내 들었다. 부부 합산 연소득 50만 달러 이상 고소득자의 자본이득세율을 현행 23.8%에서 28%로 올리자는 것이다. 소득 상위 1%를 겨냥한 이른바 ‘부자 증세’다. 자본이득세율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부터 15%로 유지돼 오다가 지난해 23.8%로 한 차례 인상됐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주식과 같은 금융자산을 상속할 때 즉시 과세하지 않고 나중에 자녀들이 상속 자산을 처분할 때 세금을 물리는 현행 제도를 변경, 상속 때 부모가 취득한 가격을 기준으로 자녀들에게 자본이득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와 함께 자산 500억 달러 이상 금융회사(약 100개)에 대해 부채의 0.07%에 해당하는 수수료(세금)를 부과하기로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같은 증세를 통해 향후 10년간 3200억 달러의 세수를 확충하고 이 가운데 2350억 달러를 중산층 지원에 사용하겠다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대통령이 아주 도전적으로 담대한 어젠다를 제시했다고 논평했다. 하지만 의회의 상원과 하원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이 ‘부자 증세’를 반대하고 있어 오바마의 어젠다가 실행으로 옮겨질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공화당의 반응은 싸늘했다.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국민은 의회를 통과하지도 못하고 민심만 자극하는 화두를 원하는 게 아니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이 부자 증세로 계급투쟁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도 터져 나왔다.


공화당 “계급투쟁 조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부자 증세를 들고나온 데는 정치적 포석이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작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상·하원을 모두 공화당에 빼앗긴 후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 현상)’을 우려하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이 2016년 대통령 선거 때까지 중산층·저소득층의 지지를 이끌어 내면서 정국의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의도가 있다는 설명이다.

경제지표 호전과 함께 1년 8개월 만에 50%의 지지율을 회복한 덕분인지 오바마 대통령은 1시간여 동안 진행된 국정 연설 내내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민주당 의원들 주도로 80여 차례의 기립 박수가 쏟아졌다.

미 경제가 금융 위기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중산층이 점차 엷어지고 있다는 것은 여야 구분 없이 모든 정치권이 공감하는 가장 큰 현안이다.

댄 파이퍼 백악관 선임고문은 “경제 회복에도 불구하고 임금 정체 등으로 중산층 소득이 감소하고 있다”며우리 경제에서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부유층의 투자·소비 증가가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로 이어지는 것)’가 작동하는지 진지하게 토론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부자 증세 카드를 들고나온 만큼 공화당이 어떤 카드로 ‘반격’할지 주목된다.


워싱턴 = 장진모 한국경제 특파원 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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