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유로존 탈퇴 시나리오 현실화되나

총선서 급진좌파 승리 예상…탈퇴 외에 뾰족한 수도 없어


1월 25일 그리스 총선을 앞두고 급진좌파연합인 시리자당이 집권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한동안 잠복해 있던 ‘그렉시트(Grexit=Greece+exit)’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이미 10년 만기 그리스 국채 수익률이 유로존 내 경제 취약국인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의 디폴트, 즉 국가 부도 판단 수준인 7%를 넘어선 수준이다.

총선을 앞두고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의 정당 지지율 결과를 보면 알렉시스 치프라스 대표가 이끄는 시리자가 1위를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테네 여론조사 기관인 알코가 발표한 결과를 보면 시리자가 31.6%로 안토니오 사마리스 현 총리가 이끄는 신민당의 27.6%를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3년 전 재정 적자와 국가 채무에서 비롯된 유럽 재정 위기 때와 달리 이번에는 그렉시트 같은 회원국 탈퇴 문제가 곧바로 제기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요인 때문이다. 하나는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투표를 계기로 유로존 회원국 내에서도 분리 독립운동이 확산돼 왔다. 다른 하나는 위기 극복 정책이 거의 소진돼 회원국 탈퇴 이외에 별다른 방안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그리스 총선 이후 그렉시트 방안이 확정된다면 유럽 통합 앞날과 유럽 경제 및 유로화 가치, 국제 금융시장에 커다란 파장이 예상된다. 가장 직접적인 타격이 예상되는 유럽 통합은 PIGS의 유로존,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회원국 내 분리 독립운동 등에 심각한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영국 경제 전문지인 이코노미스트가 올해 안에 ‘1유로=1달러’ 등가 수준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을 정도로 유로화 가치는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디플레이션(성장과 물가가 동시 추락) 국면에 빠진 유로존 경기는 더 악화돼 1990년대 이후 일본 경제처럼 ‘잃어버린 10년’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세계경제·국제금융시장 파문 예상
잊을 만하면 그렉시트와 같은 회원국 탈퇴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는 유럽 통합에 유럽 국민들이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럽 국민들을 대상으로 ‘유럽 통합에 따라 얼마나 혜택을 받는가’를 조사한 결과 회원국 국민 평균 수준으로 50%대에 그치고 있다. 외형상으로 가장 혜택을 많이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독일 국민들도 60%를 넘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유로존을 유지하기 위한 독일 국민들의 희생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스를 비롯한 경제 취약국 국민들은 유럽 통합에 대한 만족도가 더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유럽 경기나 유럽 통합 앞날이 어두워 보일수록 유로존 탈퇴가 유럽 국민들로부터 쉽게 공감을 얻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결과는 유로존처럼 정치적 주권과 사회문화 문제가 결부된 국가 간의 통합은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돼야 성공할 확률이 높고 국민들의 만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만약 특정 단계에서 균열을 보이기 시작하면 성공했다고 평가되던 이전 단계도 잠복해 있던 내부적인 한계가 드러나면서 위기가 발생하거나 국민들의 만족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3년 전의 유럽 재정 위기도 이러한 한계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유럽 헌법으로 상징되는 유럽정치연맹(EPU)이 주춤거리자 유로화 도입으로 성공했다고 평가받던 EPU의 이전 단계인 유럽경제동맹(EMU)의 내부적인 결함이 드러나면서 위기가 발생했다는 시각이다. EMU는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간 조화가 경제 안정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로 간주된다.


하지만 EMU는 출범 초기부터 유로 본드 발행 등을 통해 역내 회원국 간 재정 동질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역내 단일 통화정책과 개별 사정을 고려한 회원국별 독립적 재정정책’의 이원적 체제(two track)로 운영돼 왔다.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은 주로 경제 핵심국의 경제 사정이나 통화정책 철학을 반영해 수행되고 있어 경제 취약국에는 맞지 않는다.

이때 경제 취약국은 ECB의 통화정책을 주어진 외생 조건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 결과 국내 거시정책의 부담이 모두 재정으로 전가돼 국가 채무가 급증하고 궁극적으로는 재정 위기에 봉착하게 되는 ‘나선형 악순환 위기(vicious spiral crisis)’에 빠지게 된다. 경제 여건을 감안해 독자적인 운영권을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 제기돼 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핵심국·취약국 간 ‘이원 체제’ 가능성도
실제로 국내 경제 여건을 고려할 때 확장적인 거시정책 수행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ECB가 긴축적 통화정책을 고수한다면 불가피하게 팽창적인 재정정책을 수행할 수밖에 없어 재정 적자가 더 확대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통화정책의 주권을 갖고 있다면 적절한 금리 인하와 유동성 확대 정책을 동원해 재정정책과 부담을 공유할 수 있지만 EMU 체제 내에서 이런 정책 조합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특히 유로화 도입으로 성공했다고 평가받아 왔던 유럽통화동맹도 환율 변동이 갖는 조기 경보 기능이 상실돼 회원국 간 불균형이 심화되는 구조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 즉, 경제 취약국은 실질 환율이 고평가돼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지만 독일·프랑스 등 핵심국은 실질 환율이 저평가돼 경상수지 흑자가 누적되는 구조적인 불균형 문제를 안고 있다.

총선 이후 시리자가 집권한다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두 가지다. 유로존에서 탈퇴하는 그렉시트와 그대로 잔존하는 ‘G유로(Greece+Euro)’다. 특히 G유로는 외형상 그리스를 유로존에 잔존시키면서 독자적인 경제 운용권을 주는 방식이다. 이때 그리스는 수렴 조건에 구속되지 않으면서 위기를 풀어갈 수 있고 독일은 구제금융 부담을 덜 수 있는 ‘윈-윈 방식’이어서 더 현실적이다.

작년 5월에 치러졌던 유럽 의회 선거에서 좌파 세력이 약진한 이후 경제 취약국은 G유로 방식을 고집해 유럽 통합을 깨지 않으면서 내부적인 문제를 이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급진좌파연합인 시리자의 치프라스 대표도 이 방안에 대해 기본적으로 동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렉시트 우려가 높아지는 것은 구제금융 수용 조건인 긴축을 이행하지 않을 가능성 때문이다. EU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취약국일수록 재정 긴축 이행이 국내총생산(GDP)에 미치는 타격이 심하게 나타났다. 그리스 국민도 그렉시트에 반대하고 있지만 긴축 이행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과도기에는 핵심국과 취약국 간의 ‘이원적 운영 체계(two way band system)’가 공식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 체계는 유로화 도입 전에 운영됐던 ‘유럽 조정 메커니즘(ERM)’과 같은 원리로 핵심국은 수렴 조건을 보다 엄격(narrow band)하게 관리하고 취약국은 느슨(broad band)하게 운영하는 방식이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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