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형 임원과 경영형 임원의 차이

작은 성과보다 큰 그림 고민해야 경영 임원…CEO와 자주 소통해야

중견기업의 인사 책임자입니다. 임원 인사안을 짜고 있는데 판단이 잘 안 섭니다. 지난해 임원 인사안을 만들어 사장에게 보고했는데 결과가 제가 짠 안과 상당히 달랐습니다. 왜 그런 결과가 나타났는지 사장이 설명해 주지 않아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단지 바뀐 명단을 가지고 추측해 보니 사장이 자신과 자주 소통하는 임원들을 중용한 것 같습니다. 저는 업무 능력과 성과, 리더십을 중심으로 평가했습니다. 특히 갈수록 중요해지는 직원들과의 소통을 눈여겨봤습니다. 그런데 사장은 조금 다른 평가 기준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경영진과의 소통을 직원과의 소통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최고경영자에게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요.



귀하의 임원 평가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업무 능력과 성과, 리더십은 임원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또한 직원들과 소통하는 능력까지 봤다면 기본적으로 중요한 요소는 살펴본 셈입니다. 귀하 회사의 사장이 어떤 생각으로 인사안을 바꿨는지 저 역시 잘 알 수 없습니다. 단지 귀하가 추정하고 있는 ‘경영진과의 소통’은 일반인의 생각과 달리 경영진에게 상당히 중요한 것이어서 이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 보려고 합니다.

경영진과의 소통이 중요한 첫째 이유는 회사 내 소통을 잘하기 위해서입니다. 흔히 소통을 이야기하면 아랫사람이나 부하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아래와의 소통’을 연상합니다. 소통이 안 된다고 할 때는 권위적인 보스가 부하 직원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래서 소통은 언제나 상사의 문제이고 소통이 안 되는 원인이 권위적인 상사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소통 문제 해결의 주체도 보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소통이 안 되는 원인이 모두 상사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부하 직원에게도 상당한 책임이 있습니다. 상황을 공유하고 의견을 묻는 것을 항상 상사가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부하 직원이 먼저 상황을 보고하고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고 상사의 의견을 물을 필요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직원들이 먼저 말문을 트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언제나 상사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하 직원도 소통의 주체 돼야
만약 어떤 상사에게 불러야만 다가오고 물어야만 대답하고 지시해야만 행동하는 부하 직원이 곁에 일하고 있다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렇게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직원과 상황을 공유하고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면 성과를 만들어 내기가 어렵지 않을까요. 소통은 기본적으로 성과를 위한 것이지 소통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소통을 위해 그렇게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할 정도라면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물론 상사에게 먼저 다가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의견을 이야기하고 공감대를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좀처럼 곁을 주는 것 같지 않는 상사라면 웬만한 배짱과 의지를 갖고 있는 직원이 아니고선 먼저 소통의 손을 내밀기가 어려울 겁니다. 그런 점에서 소통은 기본적으로 상사의 문제입니다. 소통을 강화하고 확대하려면 상사가 먼저 자신을 속마음을 터놓고 진정성을 보여 줘야 합니다.

그러나 상사도 많은 약점을 갖고 있는 인간이고 스트레스에 노출돼 있는 조직 구성원의 하나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모든 소통의 출발과 끝을 상사가 맡아야 한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습니다. 특히 최고경영자(CEO)의 상당수가 내성적 성격의 소유자들이고 CEO라는 자리가 외로움을 심하게 느끼는 곳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임원들이 먼저 CEO를 비롯한 경영진과 소통하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도 있습니다.

일반의 생각과 달리 CEO를 비롯한 경영진은 먼저 찾아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거나 의견을 구하는 임직원들을 좋아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귀하 회사의 사장도 그런 점에서 자신과 소통하려는 임원, 자신에게 먼저 다가오고 찾아오는 임원에게 좋은 점수를 줬을 것입니다.

둘째로 경영진과의 소통이 중요한 것은 임원들이 CEO의 짐을 나눠지고 함께 책임지겠다는 적극적 의지를 표현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소통은 그냥 말로 하는 게 아닙니다. 말을 많이 하고 자주 하는 게 소통을 잘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소통을 잘하려면 단순히 상황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나아가 상대방의 어려움을 함께 나눠야 합니다. 진정한 소통은 그래서 말에 그치지 않고 언제나 행동으로 이어지게 돼 있습니다.


문제 함께 해결하는 게 소통
경청이 어려운 것도 이 때문입니다. 경청하려면 상대방의 이야기에 집중해야 하고 몰입해야 합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자세로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경청을 잘하는 사람들은 감정이입이 잘됩니다. 경청하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야기하는 상대방의 문제가 듣고 있는 자신의 문제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임원들이 CEO와 소통한다는 것 역시 CEO의 상황 인식을 공유하고 그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기 위해 노력한다는 뜻입니다. CEO로서는 먼저 소통하고 자주 소통하는 임원들을 평가하게 됩니다. 회사의 문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함께 고민하고 행동하려는 임원보다 CEO에게 더 중요한 임원이 있을까요.

그런 점에서 귀하 회사의 사장이 자신과 소통하는 임원들을 중용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고 당연한 일입니다. CEO에게 자기 일만 열심히 하는 임원은 실무 임원에 불과합니다. 열심히 일해 자기 분야에서 성과를 만들어 내는 임원은 실무 임원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경영 임원의 자격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경영 임원은 거기에서 한 발 더 나가야 합니다. 자기 부서의 업무 성과를 잘 내는 것만으로 경영 임원이 되기 어렵습니다. 경영 임원은 회사 전체 상황을 공유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CEO와의 소통이 늘고 소통 빈도도 잦아져야 합니다.

대기업에서 상무가 실무 임원의 성격을 띠고 있다면 전무부터는 경영 임원의 비중이 실리기 시작합니다. 국내 대기업집단에서 상무 대표이사는 드물지만 전무 대표이사는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전무급부터 경영 임원의 역할 비중이 커지는 것이죠. 따라서 전무급이 되면 경영진과 소통, 특히 CEO와 소통을 자주 해야 하고 소통 강도도 높아져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일부 임원들은 경영진과 소통하고 CEO와 접촉하려는 것을 얼굴 알리기나 아부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무나 부사장 등 그럴만한 위치에 오른 뒤에나 경영진과 소통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꼭 그렇지 않습니다. CEO에게 임원 인사는 그럴 자격이나 자질을 갖춘 사람을 발탁하는 게 아닙니다. 이미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을 자리에 맞게 배치하는 성격이 강합니다. 즉 꽃봉오리가 올라오지 않은 꽃을 가능성만 보고 화단에 옮겨 심는 게 아니라 일정하게 꽃대가 올라와 있는 꽃들로 화단을 꾸미려고 합니다.

이에 따라 ‘중요한 직책을 맡으면 그때 경영진과 소통해도 된다’는 소극적 관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적합한 직급과 직책을 주면 그에 맞게 일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소극적입니다. 마치 ‘회사가 연봉을 많이 주면 열심히 일하겠다’는 속 좁은 직장인과 같은 느낌을 줍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소통할 때 경영진은 그와 함께 회사의 미래를 논의할 수 있다고 보고 그를 주요 임원으로 발탁하고 배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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