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퉁불퉁한 길에서는 속도 줄여야

‘위험 요소’ 여기저기 널려 있어…‘현금 자산’ 늘릴 때


전통적이면서 간단한 자산 배분 전략은 국내 주식과 미국 국채의 조합이다. 포트폴리오에서 수익성은 국내 주식이, 안정성은 미국 국채가 담당한다. 글로벌 경기가 좋을 때는 국내 주식에서 수익을 내고 경기 둔화기나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외부 충격에는 달러와 미국 국채가 전체 포트폴리오의 수익률을 방어해 줄 수 있다. 그러나 2~3년 전부터 수익성과 안정성을 대표하는 자산이 서로 바뀌었다. 선진국 주식과 국내 채권의 조합을 중심으로 한 포트폴리오다. 성장과 기업 이익 측면에서 미국 주식이 가장 매력적이고 신용 위험이 낮고 안정성이 확보된 국가들 중에서는 국내 채권의 금리 수준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점차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는 ‘불균형’
그러나 1분기에는 이러한 포트폴리오에 약간의 변형을 줄 필요가 있어 보인다. 따뜻한 봄이 올 때까지 글로벌 금융시장은 울퉁불퉁한 구간을 지날 준비를 해야 한다. 글로벌 자산 가격들은 실물경제 개선 속도에 비해 고평가 영역에 진입한 반면 유로존과 신흥국의 위험은 환율과 유가를 매개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자산 가격을 지탱해 주던 중앙은행들의 유동성 공급 기대도 일시적인 공백이 예상된다.

달러 강세와 유로·엔 약세는 기본적으로 미국 경제와 여타 지역 간의 경제 및 통화정책 차이를 반영하고 있다. 미국은 금리 인상을 앞둔 반면 유럽과 일본은 여전히 더 강한 유동성 공급을 준비하고 있다. 경제와 주식시장은 미국이 이끌고 유동성 공급은 여타 국가들이 맡아 반사이익을 누리는 구조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에 몇 가지 불균형이 노출되기 시작했다.

첫째, 미국 주식의 밸류에이션이 고민스러운 영역에 진입했다. 지난 4분기 중 신흥국 주식은 0.4% 하락했고 선진국 주식은 2.9% 상승에 그쳤다. 반면 미국 증시는 4.4% 급등하며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미국 증시의 주가수익률(PER)은 16.7배로 2004년 5월 이후 최고치이자 최근 5년 평균 13.6배를 훌쩍 넘어섰다. 국제 유가 급락에 따라 에너지·소재 업종을 중심으로 이익 전망치가 하향세로 전환된 영향이다. 미국 경제와 주식시장의 중·장기 전망은 긍정적이지만 단기적으로 미국 주식을 더 담기는 부담스러운 레벨이다.

둘째, 미국을 제외한 중앙은행들의 유동성 공급 기대에 공백이 예상된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더라도, 글로벌 경제가 다소 불안하더라도, 밸류에이션이 부담스럽더라도 유럽 중앙은행(ECB)과 일본 중앙은행(BOJ)이 그보다 더 많은 양의 유동성을 전 세계 금융시장에 공급할 수 있다면 문제는 없다. 그러나 BOJ는 작년 말 2차 양적 완화(QE2)와 공적연금(GPIF)의 자산 배분안 변경, 중의원 선거까지 마쳤다. 또 다른 양적 완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ECB의 국채 매입을 통한 미국식 양적 완화는 기대가 높지만 흐름상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또 유로 환율이 1.20달러를 밑돌며 9년 내 최저치까지 하락했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Grexit) 우려로 시스템 리스크가 불거졌던 2010년 6월의 저점보다 낮아졌다는 얘기다. 이는 새로운 국면으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시간적으로 1월 25일의 그리스 총선보다 사흘 앞서 열리는 ECB 통화정책 회의에서 금융시장이 기대하는 전면적인 국채 매입이 단행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음 회의는 3월 5일이다. 독일의 반대는 여전히 완강하다. 독일은 전면적인 국채 매입보다 초우량 등급(AAA)의 국채만 매입하거나 각국 중앙은행이 충당금을 쌓고 이를 바탕으로 자국 국채를 매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전면적 국채 매입을 바탕으로 유로존 경기 회복에 대한 신뢰가 강해질 때까지 유로화의 강세 전환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셋째, 달러 강세와 유가 하락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서 부작용들이 관찰되기 시작했다. 세계 주요 6개국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9년여 만에 최고치를 넘어섰다. 엔화와 유로화가 번갈아 달러를 밀어 올리는 모습이다.

달러의 초강세를 트리거로 국제 유가(WTI 기준)가 배럴당 50달러 아래로 폭락했다. 유가는 달러로 호가돼 거래되기 때문에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 하락 압력을 받는다. 산유국들은 달러가 강해지는 만큼 치킨게임을 통해 유가 하락을 감내할 수 있게 되며 일본 등 수입국들은 유가가 하락하는 만큼 엔화 등 자국 통화가치의 하락을 감내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다시 달러 강세로 순환된다.

저유가는 장기적으로 경제에 긍정적이지만 하락 폭이 깊어질수록 셰일 생산 업체들의 투자 축소와 생산 중단, 고용 축소로 전이될 위험이 있다. 이는 에너지 혁명의 기반을 훼손, 미국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 에너지 기업 비중이 약 20%에 달하는 하이일드채권 가격은 지난해 6월 말 이후 유가와 함께 하락 중이다.



결론적으로 달러 인덱스와 유로화 환율은 9년여 만에 금융 위기 이후 고점과 저점을 넘어섰다. ECB의 국채 매입 결정 내용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유로 약세와 달러 강세 추세는 더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달러 강세는 지지선으로 여겼던 50달러를 밑돌 유가 하락을 더욱 부추겨 미국 경제의 근본적인 성장 동력(셰일)을 위협할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결국 독일의 재정을 기반으로 한 ECB의 전면적인 QE만이 이 퍼즐의 해결 방법이다.


저유가로 미국 하이일드채 빨간불
이처럼 복잡한 상황에서는 다음과 같은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자산 배분 포트폴리오에서 전체 주식의 비중을 축소하되 선진국 주식 비중을 확대, 압축할 필요가 있다. 채권 대비 주식의 상대 수익률의 기울기가 완만해지거나(선진국) 하락하고 있다(신흥국). 수익성 측면에서 주식의 영향력이 감소하고 있다는 의미다. 동일한 기대 수익률 하에서도 변동성이 확대되면 위험 조정 수익률은 낮아진다. 최근 주식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

둘째, 취약한 펀더멘털에 신흥국 통화 약세와 국제 유가 급락이 겹치며 신흥국의 위험이 높아졌다. 선진국 자산에 대한 비중을 확대하고 신흥국을 축소했다. 선진국 주식의 투자 선호도는 미국>일본>유럽순이다. 신흥국 주식에서는 중국 등 신흥 아시아의 상대적 매력이 높다.

셋째,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 인상을 앞두고 있고 지나친 달러 강세 컨센서스가 부담스럽지만 미국 국채와 달러 포지션은 확대해야 한다. 미국 국채 비중이 34%인 선진국 국채를 늘려 달러의 비중을 높였다. 국채 금리 하락이나 달러 강세 예상보다 유럽과 신흥국의 꼬리 위험(tail risk) 발생 시 포트폴리오 수익률을 방어하기 위해서다. 만약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자산시장의 조정이 나타난다면 달러와 미국의 장기 국채 가격은 재차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인 미국 금리 상승과 주가 상승이 동반될 수 있다면 미국 경제에 대한 신뢰가 높아진다는 의미이므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 주식이 수익률을 확보해 줄 것으로 판단된다.

넷째,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유동성 자산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 2분기 중반 이후 유가 하락의 긍정적 효과가 나타날 선진국과 신흥 아시아의 주식 비중을 확대하기 위한 포석이다. 역시 승부는 봄에 갈린다.


신동준 하나대투증권 자산분석실장 djshin@hanaf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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