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산업, 갈 길이 멀다

선진국에서는 민간에 의한 자율적인 규제 시스템이 작동되는데 비해 한국에서는 구체적인 규제 사항을 사전에 지정하는 포지티브 리스트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에 따라 규정 개선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기술 발전에 뒤처지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김종현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2011년 성균관대학교 경영학 박사. 1997년 한국종합기술금융. 2000년 삼성경제연구소. 2011년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전략연구실 연구위원(현)


을미년 새해 벽두부터 핀테크(FinTech:기술 금융) 열풍이 예사롭지 않다. 창조 경제를 이끌 수 있는 산업 중 하나로 핀테크 산업이 지목되면서 민·관이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핀테크 산업을 육성해 국내 금융 산업의 경쟁력을 한층 높이고 한국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국내 핀테크 산업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핀테크 산업의 빠른 성장세가 예상되면서 이미 관련 기업에 대한 투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한 컨설팅 회사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글로벌 핀테크 기업에 대한 투자 금액은 2008년 9억2000만 달러에서 2013년 29억7000만 달러로 최근 5년 새 3배 이상 성장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최근 핀테크 산업의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송금·지급 결제 시장에 뛰어들고 있지만 실제 국내 핀테크 기업들의 서비스 상용화 실적은 부진한 실정이다.

이처럼 한국 핀테크 산업이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고급 기술 인력들이 핀테크 기업을 자유롭게 창업하고 사업할 수 있는 여건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선 금융업의 특성상 기본적인 보안 요건과 기술을 반드시 갖춰야 하지만 창업 초기 기업이 한국의 전자금융거래법상 전자금융업자의 요건을 갖추기는 쉽지 않다. 선진국에서는 민간에 의한 자율적인 규제 시스템이 작동되는데 비해 한국에서는 구체적인 규제 사항을 사전에 지정하는 포지티브 리스트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에 따라 규정 개선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기술 발전에 뒤처지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향후 한국 핀테크 시장에서 국내외 기업들의 직접적인 경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라는 것이다. 최근 출시된 애플페이는 공식적으로는 국내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 않지만 우회적인 방법으로 일부 미국 신용카드로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다. 비자의 ‘비자페이웨이브(Visa payWave)’ 시스템이 설치된 국내 일부 가맹점에서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발급한 비자 신용카드를 애플페이 방식으로 결제할 수 있다. 또한 구글·페이팔·알리페이 등 글로벌 핀테크 기업들은 직접 국내시장에 진입하기에 앞서 국내 PG(Payment Gateway) 또는 은행들과 제휴, 국내 송금·지급 결제 시장에 진입할 예정이다.

따라서 국내 핀테크 산업을 효과적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 핀테크 산업의 중심지로 부상한 영국처럼 핀테크 산업에 대한 규제를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핀테크 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관련 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국내 금융회사들도 핀테크 산업에 대한 투자를 점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다만 국내 핀테크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규제를 완화할 필요는 있지만 핀테크 기업이 유사 수신 업무나 우회적인 신용 창출에 깊이 관여하는 것은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핀테크 기업의 금융 시스템 안정성 저해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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