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이 올라야 경제가 산다

기존 경제 이론 뛰어넘는 ‘뉴 노멀’ 시대…국가 간 차별화 심해질 것


연초부터 글로벌 증시가 ‘유가 급락’과 ‘그렉시트(Grexit=Greece+Exit)’ 우려로 휘청거리고 있다.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지난해보다 0.4~0.5% 포인트 정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던 일부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기존 전망치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하향 조정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미 올해 세계경제는 세 가지 부문에서 차별화, 즉 ‘트리플 디커플링’ 현상이 더 뚜렷해질 것으로 예상돼 질적으로 크게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금융 위기 이후 신흥국의 위상이 이제는 선진국의 위상에 버금갈 정도로 높아짐에 따라 올해부터는 종전의 선진권과 신흥권 간의 경제 권역별 차별화보다 같은 경제권 내에 속한 개별 국가 간의 차별화 현상이 더 심화될 것이라는 게 예측 기관들의 지배적인 견해였다.



이 때문에 통화정책을 중심으로 선진국 간의 차별화 현상이 심화되고 신흥국 통화정책도 자체적인 여건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통화정책의 대응 방향에 따라 차별화가 일찍부터 예상돼 왔다. 개별 국가 내에서도 빈부 격차 확대로 소득 계층별로 느끼는 체감 경기가 크게 차이가 날 것으로 보였다.


돌발 변수 대응력이 기업 생존의 요건
커다란 돌발 변수가 없는 한 미국은 올 2분기 이후 금리 인상이, 일본은 엔저 유도를 위한 유동성 공급 정책이 점차 ‘중립’ 기조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유럽에서도 미국식 국채 매입을 통한 양적 완화가 대대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올 한 해 세계경제와 국제 금융시장을 볼 때 시기적으로 지난해 하반기 이후 더 심해진 ‘뉴 노멀(new normal)’ 현상의 정착 여부도 관심 있게 볼 필요가 있다. 요즘 들어 종전에 배웠던 이론과 관행으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 현상이 유독 많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 노멀’이나 ‘뉴 앱노멀’이란 표현을 쓰기도 하는 미스터리 현상은 경영과 투자에서는 위험 요인으로 직결돼 대처 여부에 따라 기업 생존과 투자 성과를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다.

세계경제의 핵심 이슈는 역시 미국의 금리 인상이다. 시장에선 지난해 마지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주재한 재닛 옐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금리 인상에 한 발 다가서면서도 왜 달러화의 강세를 우려하는지에 쏠려 있다. 옐런 의장은 지난해 2월 취임 초부터 달러 강세 발언을 간헐적으로 언급해 오다가 같은 해 10월 말 양적 완화 종료 이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올해 금리를 올리더라도 ‘인내심을 갖고(be patient)’ 추진하겠다는 것도 지나친 달러화 강세를 경계한 의도도 작용하고 있다.

의문에 대한 해답은 지난해 11월 치러졌던 중간선거 결과에 있다. 제로 금리와 양적 완화로 상징되는 버냉키-옐런식 정책 처방은 금융 위기 극복에는 효과적이었지만 주가와 부동산 값 상승으로 빈부 격차가 확대됐다. 이에 따라 집권당인 민주당보다 자산가들이 전통적지지 기반인 공화당에 유리한 정책이 됐다. 미국의 금리 인상 이후 달러화 가치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포트폴리오 자금이 유입되면서 빈부 격차는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경기가 연일 좋지 않다고 하면서도 상하이 종합지수가 3000을 훌쩍 넘어서는 것도 ‘주가가 경기를 반영하는 얼굴’이라는 이론적 토대에서 보면 이해되지 않는 현상이다.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현재 중국의 경제성장률 7%대에 대한 인식이 전환돼야 한다. 종전의 두 자릿수대 성장률과 비교하면 ‘침체’라고 할 수 있지만 1인당 소득이 7000달러에 도달한 경제 발전 단계로 본다면 ‘적정한 수준’인 것이다.

오히려 시진핑 정부 이후 경제정책의 우선순위가 ‘고성장’에서 ‘위안화 국제화’로 이동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성장률이 얼마나 높은가’보다 위안화 국제화 과제가 잘 추진돼 국제 금융시장에서 신뢰를 얻으면 외국 자금이 얼마든지 유입돼 주가가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위안화 국제화 과제는 당초 계획보다 빨리 추진돼 기대했던 성과를 크게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 지배적인 평가다.


신흥국 위기가 곧 글로벌 위기
국제 유가가 폭락하는데도 불구하고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이 오히려 증산에 나선 움직임도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다. 1970년대 이후 유가가 급락할 때마다 OPEC가 감산을 통해 유가를 떠받쳐 온 점을 감안하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지난해 유가 하락 폭은 50%에 달해 그 어느 하락기보다 큰 점을 감안하면 그 배경이 더욱 궁금하다.

최근의 유가 급락은 경기 요인보다 구조 변화에 주로 기인한다. 먼저 글로벌화가 이뤄지면서 국가 간 카르텔인 OPEC의 결속력도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 원유 주도권 확보를 놓고 OPEC와 미국 셰일가스 개발 업체 간 ‘치킨게임’에서는 단기적으로 증산하는 게 유리하다. 성급한 마음에 감산해 유가를 끌어올리면 그 혜택이 고스란히 셰일가스 업체에 넘어가 원유 주도권을 영원히 확보할 수 없는 최악의 결과가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 유가 급락 등에 따라 일부 신흥국들의 통화가치가 위험수위를 넘었는데 디폴트가 발생하지 않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 궁금해 할 만한 사안이다. 러시아 루블화 가치는 국제 금융시장을 크게 흔들어 놓았던 1998년 모라토리엄(국가 채무 불이행) 사태 당시보다 더 떨어진 수준이다. 같은 신흥국에 속했다고 하더라도 중국·한국 등의 통화가치는 안정적이거나 오히려 소폭 올랐다.

외화 보유 등 위기 판단 지표가 개선되고 금융 시스템이 건전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요인은 다른 데 있다. 세계가 ‘하나의 시장(one market)’인 시대에서는 신흥국 위기 발생 시 나타나는 ‘역점염 효과(reverse spill-over effect)’에서 그 어느 나라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중국·미국 등 외화 사정이 풍부한 국가나 국제통화기금(IMF)이 나설 수밖에 없다.

이 밖에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미국·영국·일본·독일 등 주요 선진국들이 근로자의 임금이 올라가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속사정도 잘 들여다봐야 한다. 경기를 부양하려면 임금을 내려야 한다는 게 종전의 상식이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이끄는 2기 경제팀의 경기 부양책, 즉 최노믹스에서도 이런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제는 선진국과 신흥국을 가릴 것 없이 총수요 항목별로 국민소득(GDP)에 대한 기여도를 따진다면 민간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아졌다. 특정국 경제권에서는 이미 소비의 주체인 국민이 ‘최후의 보루(last resort)’가 된 시대가 됐다는 의미다. 집권 3기를 맞아 아베 정부가 엔저에 따라 특별 이익이 발생한 수출 기업들에 임금이나 배당을 올려주도록 ‘역바세나르 협정’ 체결을 가장 먼저 추진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schan@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