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1위’ 질주…호황은 계속될까

‘반쪽짜리 찜찜한 호황’ 지적…‘신기술’ 연구는 뒤처졌다

한국 산업 주력 업종 점검① -반도체



‘한국 경제의 효자 업종.’ 반도체 산업에 쏟아지는 기대감이다. 최근 업계에선 20년 만에 호황이 왔다고 입을 모은다. ‘치킨게임’에서 살아남은 승자들은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 있다. 전 산업군에서 빠르게 추격하는 중국이 쉽게 넘볼 수 없는 산업이 메모리 반도체다. 올해 실적 전망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호황 이면에는 웃을 수만은 없는 반도체 편중 현상과 불투명한 미래가 존재하고 있다. 새해를 맞아 한국 경제를 이끌고 있는 주력 산업의 오늘과 내일을 진단해 본다. 첫째 순서, 반도체 산업이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수출 견인차 역할을 했다. 단일 품목으로 연간 수출 규모 600억 달러를 돌파한 유일한 주인공이다. 최근 2년 연속 수출 1위로, 전체 수출의 10.2%를 차지한다. ‘중국의 추격’과 ‘엔저 영향’ 폭풍 가운데 반도체의 약진은 더욱 주목 받는다. 석유화학·조선해양·철강·정유·스마트폰·자동차 등 세계시장 점유율이 중국에 역전당한 사이 반도체는 비교적 여유를 누리고 있다.

한국 메모리 반도체의 양대 산맥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최대 실적을 내고 있다. 삼성전자가 1월 8일 발표한 4분기 실적에서 영업이익 5조 원대 회복의 일등 공신은 반도체였다. 전체 영업이익의 절반 정도를 반도체 담당 부품(DS) 부문에서 올렸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최대 실적에 이어 증시에서도 매우 우수한 성적을 거둔 우등생이었다. 지난해 11월에는 현대차를 제치고 시가총액 2위로 올라서기도 했다. 증권가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사상 최대의 실적을 무난히 달성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올해 메모리 반도체 전망 ‘맑음’
올해 시장 전망 또한 밝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국내 반도체 수출액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지난해보다 4.4% 늘어난 642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디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는 D램이 지난해 대비 16% 상승한 60조3000억 원, 낸드플래시는 12% 상승한 30조7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사상 최대다. 전승우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스마트폰과 태블릿 시장의 확대, 개인용 컴퓨터의 윈도 OS 교체, 사물인터넷 확대에 따른 데이터센터 증설에 따라 D램 수요가 증가한 게 반도체 호황의 요인”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공급 시장 측면에서 호황 요인을 살펴볼 수 있다. 반도체는 큰 틀에서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LSI 반도체로 구분된다. 다시 메모리 반도체는 크게 D램과 낸드플래시 두 개 부문으로 나뉜다. 세계 D램 반도체 시장은 1990년대 공급과잉과 가격 폭락을 거치며 하나 둘 사라졌다. 히타치·후지쯔 등 일본 회사들이 철수했고 급기야 2013년 엘피다가 마이크론에 넘어갔다. ‘치킨게임’을 거친 D램 시장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3개 업체로 재편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D램 시장의 약 70%(지난해 3분기 기준 삼성전자 42%, SK하이닉스 27%)를 점유하고 있다. 세계 1, 2위가 한국 기업으로 사실상 독주 체제다. 낸드플래시 시장은 세계적으로 삼성전자·도시바·샌디스크·마이크론·SK하이닉스·인텔 등 5개 업체가 차지하고 있다. 이곳에서도 한국 기업이 50% 가까이 점유한다.

한국 반도체의 높은 시장점유율 배경에는 기술 격차가 자리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특징은 경기에 민감한 사이클 산업이라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국내 업체 전략이 ‘초격차’였다. 시장이 줄어드는 만큼 앞선 공정 기술 투자 등으로 시장점유율을 늘리면서 대비하는 전략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잇따라 세계 최초 D램 기술을 선보이며 기술 격차를 벌렸다. 삼성전자는 신기술인 20나노(1나노는 10억 분의 1m) 공정을 기반으로 모바일 D램 시장에서 가장 앞서 있다. 해외 경쟁자들은 25~29나노로 뒤처져 있다.

메모리 반도체의 경쟁력은 곧 ‘미세 공정’으로 설명된다.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서는 반도체 칩을 작게 만드는 게 관건이다. 시링크(shrink) 기술을 통해 칩을 작게 만들면 용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같은 가격이면 시장에서는 용량이 더 큰 쪽을 선호하기 때문에 시장점유율을 키울 수 있다. 이 때문에 메모리 반도체 기술로서는 누가 더 먼저 작게 만드느냐가 주도권을 잡는 ‘키’로 통하며 곧 ‘수익성’으로 이어진다. 만약 기술 경쟁에서 밀리면 가격을 낮춰 팔면서 이익이 떨어지고 심하면 적자를 면치 못해 도태된다. 업체들이 이익이 나면 끊임없이 재투자를 통해 미세 공정 전환을 하는 게 이 사업의 특징이다. SK하이닉스는 현재 호황에 힘입어 이천시에 새로운 D램 공장인 M14 라인 건설에 한창이다. 삼성전자는 화성 17라인에 메모리 라인을 증설하고 있다.



승자는 점유율뿐만 아니라 높은 영업이익률을 자랑한다. 메모리 반도체 사업 비중이 절대적인 SK하이닉스의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률은 30%였다. 삼성전자도 메모리 사업만 떼어 놓고 보면 역시 30% 수준을 유지한다.

그러면 지금과 같은 ‘초호황’이 계속 유지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린다. 김영찬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세 개 업체가 공격적인 투자를 하지 않고 있어 내년까지 안정적인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라며 “미세 공정은 장비 성능이 뒷받침될 때 가능한 일인데, 기술적 한계에 봉착해 미세화가 더 힘들어진 상황이기 때문에 향후 2~3년간은 이 추세를 유지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미 공급 시장에서 치킨게임이 사라진 상태로, 향후 미세 공정 경쟁이 가열되지 않더라도 남은 업체가 충분히 이익을 내면서 영위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 중에서도 모바일 D램과 낸드플래시의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시장이 각광받는 분야다. 디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모바일 D램은 작년 대비 30% 성장한 24조1000억 원 규모가 예상된다. 모바일 램은 D램의 한 분야로 휴대전화에 사용되는 반도체다. 저가폰을 비롯해 전 세계 스마트폰 판매가 증가하면서 수요가 늘고 있는데, 특히 전력 소모가 적은 저전력 D램 수요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다. 에너지 소모가 적기 때문에 한 번 충전으로 스마트폰 배터리 사용 시간을 늘릴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업계에서는 차세대 모바일 D램으로 불리는 저전력(LP) DDR(Double Date Rate) 4 시장이 올해 본격적으로 개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점유율이 잡히기 시작한 LP DDR 4는 올해 시장점유율을 14%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모바일 D램의 최강자로,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분야 중 하나다. 현재 20나노 초반대 개발이 한창이다.

낸드플래시에도 유망 분야가 있다. 낸드플래시는 크게 일반 낸드플래시와 SSD로 구분되는데, SSD가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로 꼽힌다. SSD는 쉽게 얘기하면 기존 노트북의 하드디스크를 대체하는 카드다. 16GB, 32GB, 64GB 등 칩으로 만들어지며 그 안에 여러 개의 낸드플래시가 들어있다. 노트북, 모바일 기기, 기업용 서버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는 “SSD를 사용하면 속도도 빠르고 열 발생을 줄일 수 있어 기업에서도 중요한 데이터는 SSD에 저장하려고 한다”며 “낸드플래시 시장, 특히 SSD 시장이 매우 밝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시장을 주도해 장악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SSD는 고가로 판매되는 ‘고부가가치’ 사업이다. D램과 같이 원가를 절감하는 게 관건인데 SSD 원가절감 기술은 ‘적층’에 있다. 기존 두 개 데이터를 하나의 셀에 넣었다면, 세 개 데이터를 하나의 셀에 넣는 3차원 방식 상용화로 수익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SSD 분야에 가장 먼저 진입해 기술에 앞서 있는 상태다. 지난해 말 3비트 3차원 공법으로 만든 V랜드 SSD 제품을 개발해 출시했다. 메모리 내 집적 공간을 아파트 구조처럼 여러 층으로 쌓아 전기신호를 더 많이 저장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중국 시안 공장에서 3차원 V랜드를 월 4만 장(웨이퍼 기준) 정도 생산하고 있는데, 조만간 10만 장으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SK하이닉스도 3차원 구조를 적용해 적층 단수를 높인 트리플레벨셀(TLC) 낸드플래시 기술을 개발했다. 새로운 TLC 낸드플래시를 장착한 SSD를 본격 양산하고 수요처를 확산하는 게 올해 중점 과제다. 낸드플래시에서 삼성전자는 1위, SK하이닉스는 4위를 점유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반도체 도약 키워드를 낸드플래시로 정하고 사업 약진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낸드플래시 세계 2위 도시바는 SSD 개발 및 양산을 발표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윤곽이 나오지는 않고 있다.


낸드플래시, ‘적층 기술’로 원가절감
이와 같이 한국이 최고 강자로 있는 메모리 반도체는 아직 후발 주자가 따라잡기 어려운 분야로 꼽힌다. 대표적인 장치산업으로, 공장 한 라인에 5조~10조 원 정도의 자금이 소요되는데다 적자생존 방식으로 이후에도 끊임없는 투자 및 공정 전환이 필요해 진입 장벽이 높은 산업이다. 기술 격차를 따라잡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도 중국은 위협적인 존재라는 시각이 존재한다. 중국이 세계 반도체 수요 절반 이상을 소비하는 시장인 데다가 공급의 불균형 해소와 자급을 위해 뛰고 있다. 아직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 한해 투자를 하고 있지만 중국 정부의 결단이 내려지면 메모리 분야 진출도 머지않았다는 전망이다. 중국은 특히 소프트웨어 인력이 한국보다 강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 시안과 충칭에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철저하게 기술을 보호하겠지만 반도체의 핵심인 자본과 인력이 중국에 충분하기 때문에 메모리도 10년 후에는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메모리 업계의 진짜 고민은 향후 먹을거리에 있다. 이미 시장점유율은 과점 형태를 띠고 있다. 치킨게임 종료와 함께 시장점유율 싸움도 어느 정도 막을 내렸다. 지금부터는 ‘고부가가치’와 ‘비용 절감’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기업들이 메모리 반도체 중에서도 저전력 모바일 D램, SSD를 차세대 분야로 선정하고 드라이브를 거는 이유다. 이와 함께 스마트폰 이후의 차세대 시장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 급부상하는 사물인터넷(IoT), 웨어러블, 자동차 전자장치, 전력 반도체(PMIC) 등이 유력한 후보군이다. 반도체는 ‘등뼈’로 불릴 만큼 모든 정보기술(IT) 산업의 핵심 부품으로 쓰인다. 이미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사물인터넷 시대에 대비하고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 인텔은 본사 차원에서 전담 조직을 가동 중이다. 한국은 미래 경쟁력 확보에서 뒤처져 있는 상황이다. 현재 호황에 취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현재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내 반도체 산업 생태계에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다. 메모리 반도체, 특히 D램 편중 현상이 심하기 때문이다. 국내 반도체 산업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95%가 넘는다. 둘 중 어느 곳 하나만 삐걱대면 전체 반도체 산업이 흔들릴 수 있다. 이 때문에 ‘반쪽자리 호황’, ‘찜찜한 호황’이란 지적이 나온다. 주대영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호황은 시장이 크게 좋아서라기보다는 공급 조절에 따른 것으로 전체 시장을 놓고 보면 웃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시장이 더 크고 안정적인 시스템 반도체는 성장이 매우 더딘 수준이다. 퀄컴·인텔 등 외국 기업에 의존도가 심화되고 있다.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 반도체는 약 20%, 시스템 반도체는 80% 규모를 가지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 없이는 미래 경쟁력을 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삼성전자가 시스템 LSI에 14나노 핀펫(FinFET) 공정 양산을 시작해 애플의 새로운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A9 양산을 시작한 것은 긍정적인 변화다. AP는 휴대전화의 ‘두뇌’에 해당하는 칩으로 컴퓨터의 CPU와 같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산업 생태계에서 반도체 설계 분야인 팹리스 기업이 거의 전무한 점이 가장 취약점으로 꼽힌다. 이미 감가상각된 공장을 파운드리 서비스(위탁 생산)에 활용하는 게 중요한데, 유휴 공장이 있어도 설계를 할 만한 팹리스 기업이 없어 활용 분야가 매우 적다. 현재의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로 변화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인력이다. 메모리 반도체의 차세대 분야, 시스템 반도체의 팹리스 분야 등은 ‘소프트웨어’ 인력이 절실하다. 박재근 한양대 석학교수는 “메모리도 1등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인력을 양성해야 하고 시스템 반도체 쪽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인데, 5년 전부터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이 없다 보니 반도체 전공 교수들이 타 전공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연구 인력이 배출이 안 되고 있고 업계에서는 인력 부족 현상이 벌써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자료에 따르면 2013~2017년 동안 국내 시스템 반도체 부문에서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 석·박사급 인력은 6400명이다. 공급률이 30%가 채 안 된다. 주대영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삼성전자는 우수 R&D 인력으로 중국 칭화대와 베이징대 졸업생들을 채용하고 SK하이닉스는 아예 미국에 R&D 공장을 지었다”며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아차 하는 순간에 외국에 시장을 빼앗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산업통상자원부 사업이 번번이 기획재정부 예비타탕성 조사에서 가로막힌 데 대해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가 관점이 다르고 지원 정책에 엇박자를 내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첨단 공장이 중국을 중심으로 가동된다는 것에도 우려의 시선이 제기된다. 반도체가 한국 주력 산업의 버팀목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정작 수출과 일자리 창출에서 한국 경제에 도움이 안 되는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이 밖에 시스템 반도체의 지식재산권도 미래 경쟁력 차원에서 꼭 갖춰야 할 요인으로 꼽힌다.


글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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