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지배 구조’와 ‘중국’을 주목하라

대주주와 투자자 간의 이익 방향성 같아져…본격적으로 해외투자 늘릴 때


지난 11월 8일 여의도의 한 식당에 한국의 금융 투자시장을 주름잡는 인물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이들은 모두 소속된 곳이 다르다. 하지만 이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는 키워드는 하나다. 바로 ‘가치 투자’다. 이들은 ‘가치투자포럼’이라는 이름으로 한 달에 한 번 정도씩 뭉친다. 가치투자포럼은 2008년 시작됐다. 당시만 해도 “가치 투자가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가치 투자라는 투자법은 ‘인고의 시간’을 버티는 ‘맷집’이 가장 중요하다. 어떤 사람이든 매를 맞으면 상처가 남는다. 이들은 어떤 때는 격한 토론으로 또 어떤 때는 소주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줬다. 그렇게 7년의 시간이 지났고 이제 가치 투자는 한국 시장에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투자의 대세’가 됐다. 2015년을 한 달 앞두고 모인 이들은 또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까. 한경비즈니스가 현재 수조 원을 주무르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살짝 엿들었다.


이택환 호서대 교수 요 며칠 중국 증시가 정말 볼만하더군요.

박경민 한가람투자자문 대표 요즘 중국이 없으면 심심할 정도이긴 해요.(모두 웃음)

조용준 하나대투증권 리서치센터장 최근 중국 증시 상승은 경제나 기업 이익보다 정부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봅니다. 알리바바의 미국 상장이 계기가 된 듯합니다. 중국 금융 당국의 분위기는 이런 기업을 중국 시장에 상장하지 못하고 미국에 상장한 데 대해 아쉬움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현재 금융 당국은 더 많은 기업들을 자국에 상장해 자본시장을 키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림자 금융’으로 불리는 중국의 신탁 상품을 제도권, 즉 증시로 흡수하려는 방침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 움직이는 기울기를 예측할 수가 없어요. 정말 최근 중국의 주가 움직임을 보면 ‘중국답다’라는 말 밖에 안 나옵니다.(모두 웃음)

조용준 센터장 이 자리에 모인 분들은 모두 한국 가치 투자의 대가들입니다. 투자자들을 위해 올해를 정리하고 내년을 예상해 보는 조언을 좀 부탁드립니다.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 최근 가장 고민하고 있는 것은 한국 기업의 지배 구조입니다. 최근 글로비스와 SKC&C가 주목받고 있죠. 곧 상장할 제일모직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지배 구조와 관련해 투자의 핵심 포인트는 투자자와 대주주 간 ‘이익의 방향성’이 같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실 그간 한국 시장은 이게 좀 어긋나 있었습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대표적 요인이죠.

그런데 이제부터는 경영 승계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은 기업에서 이 방향성이 일치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또 조세제한특례법의 일몰 등 몇 가지 정책적 요인으로 상당수의 대기업들이 3~4년 내에 순환 출자의 고리를 끊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겁니다. 이에 따라 각 그룹사의 최정점에 있는 회사들, 즉 지주회사의 가치가 재부각될 것이라고 봅니다. 한국 경제의 성장성을 감안하면 기업이 자기 힘으로 수익 5%만 내면 매우 좋은 기업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기업은 주가수익률(PER) 20배 정도까지도 ‘싸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앞으로 제가 주목할 주식은 ‘5%의 이익을 안정적으로 내는 기업’ 그리고 ‘투자자를 제대로 대접하는 기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오늘 처음 참석한 용환석 대표의 전망도 궁급합니다.

용환석 페트라투자자문 대표 올해와 내년은 한국 경제의 전환기라고 봅니다. 이런 전환기를 잘 넘기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기업의 이익 성장 속도는 전에 비해 매우 느려졌습니다. 특히 과거에는 중국 성장의 과실을 한국 기업이 누렸지만 이 고리가 이제 끊어졌습니다. 또 대기업들은 지배 구조 개편의 문제에 놓였습니다. 이런 큰 변화가 어떤 식으로 이뤄질지가 궁금합니다.

이택환 교수 운용에서 좀 물러나 있다 보니 여러 생각을 하게 됩니다. 2007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왔을 때 일간지에 칼럼 하나를 쓴 적이 있어요. 주제는 ‘케즘(단절)’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금융 위기로 세계경제는 이전 시대와 전혀 다른 국면으로 가게 됐습니다. 이전 시대와 ‘단절’된 것이죠. 지금의 한국 경제도 이전의 성장 모델이 더 통하지 않는 ‘케즘’의 시대입니다.

이 케즘을 벗어날 수 있는 ‘혁신’이 없으면 한국 경제는 당분간 두 자릿수 성장은 불가능할 겁니다. 이 때문에 중국 시장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집니다. 지속 성장하는 중국에 세계에서 더 많은 돈이 몰려들 겁니다. 물론 중국 증시가 꾸준히 올라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조정이 올 수 있습니다. 조정이 오면 그때 투자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당분간 케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한국 증시는 잘 가야 내년 2100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최준철 브이아이피투자자문 대표 미래에 대한 생각은 대부분이 선배님들의 말씀과 비슷합니다. 올해 주식시장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기관들의 롱 쇼트 플레이로 조금 좋지 않은 소식만 들렸다 하면 해당 기업의 주가가 폭락합니다. 반면 가치주의 투자 붐으로 싼 종목 찾기가 매우 힘들어졌습니다. 마음 놓고 장기 투자할 좋은 종목은 너무 비쌉니다. 사실 한국 경제는 이미 저성장이라고 규정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주식시장의 상승도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 중국의 성장은 두렵습니다. 얼마 전 한국의 용산전자상가와 같은 선전에 갔습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더군요. 규모가 용산전자 상가의 서너 배가 훨씬 넘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느껴지는 역동성도 강렬했습니다. 특히 최근 중국이 기존 ‘하드웨어’의 경쟁력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경쟁력도 매우 빠르게 갖춰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으로는 이미 따라 잡을 수 없는데 질까지 성장하면 한국이 어찌해야 할지 불안합니다.

또한 중국 기업들에 주목할 점은 배당 등 주주 가치 보호나 기업가 정신 등의 면에서도 한국 기업들에 비해 오히려 나은 모습이 보입니다. 의외였습니다. 사실 제가 글로벌 투자자라면 ‘이제 굳이 한국 기업의 주식을 살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까지 해봅니다.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자산운용본부장 말씀처럼 요즘 장세를 ‘싱크홀 장세’라고 하더군요. 분기 실적이 조금만 좋지 않으면 바로 쇼트가 이뤄지니 웬만한 대형주도 풀썩 주저 않습니다. 또 ‘회전초밥 장세’라는 말도 있어요. 초밥을 골라 먹듯이 실적이 좋은 주식만 팍팍 오른다는 이야기죠.(모두 웃음)

저는 다른 분들과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이럴 때일수록 ‘장기 투자’하면 빛을 볼 확률이 커진다는 겁니다. 사실 선진 시장에선 공매도라는 게 그 기업이 흔들릴 정도의 문제가 있어야 발생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게 분기별 실적에 따라 공매도가 생깁니다. 분기 실적이라는 게 기업의 영속성에서 보면 별 의미가 없는 것일 수도 있는데 말이죠. 오히려 이는 좋은 주식을 사는 데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 증시의 시가 총액은 거의 7년여간 비슷합니다. 그런데 그 기간 동안 미국·유럽·일본 등은 다 올랐어요. 실물 경기는 별로인데도 말이죠. 이런 현상이 한국에서도 언젠가는 나타날 수 있다고 봅니다. 또 재미있는 것은 애널리스트들의 2015년 전망이 2008년 이후 가장 어둡습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지금이 바닥일 수도 있다는 의미죠. 그래서 화학 등 산업재 투자도 해볼만한 때라고 봅니다.

이와 함께 삼성과 한화의 ‘빅딜’에서 보듯이 대기업들이 최근 ‘선택과 집중’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입니다. 변화에 민감한 대기업들은 이미 체질 개선을 시작한 것입니다. 또 대기업들이 여러 정책과 상황들에 의해 오너와 투자자 간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시작한 것도 긍정적입니다. 그간 지주회사를 평가할 때 계열사 보유 지분의 가치에 대해 디스카운트가 30~50% 정도 됐는데 장기 투자 관점에서 보면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특히 값이 싸고 배당을 더 주는 지주회사 우선주는 정말 매력적 상품입니다.

박경민 대표 저는 좀 더 ‘해외투자’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에서는 주로 중소형주에 투자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한국을 보는 잣대를 가지고 일본·중국·미국 등의 중소·중견기업을 보면 그쪽이 더 나은 곳이 많습니다. 사실 한국의 성장성은 이제 한계에 왔다고 봅니다. 그래서 자산 운용을 하는 우리도 해외투자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 대표의 말처럼 중국의 ‘소프트 파워’는 생각보다 빠르게 강해지고 있다고 봅니다. ‘기술력’만 놓고 보면 가공할 정도입니다. 한국에서 중국에 물건을 발주하는 순간 거기에 투입된 기술은 모두 중국이 흡수한다고 보면 됩니다.

여담으로 중국 기업들은 일본과 한국에서 은퇴한 기술자들을 대거 영입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하는 역할은 ‘관리자’가 아니라 ‘교육관’입니다. 1~2년 정도 계약한 뒤 계속해 ‘교육’만 합니다. 한국과 일본의 기술자들이 평생 쌓은 노하우를 단기간에 ‘빼먹는 것’이죠. 특히 더 이상 교육할 거리가 없다 싶으면 통역관과 운전사를 그만두게 한답니다. 무섭죠.

강방천 회장 어찌 됐든 우리가 하는 일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증시가 ‘어둡다’는 생각만은 안 해요. 가격을 결정하는 요소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기초 자산이 가지고 있는 수익률, 그리고 다른 하나는 기초 자산에 대한 프리미엄이죠. 사실 한국의 어떤 주식도 이제 중국의 주식보다 ‘수익률’ 자체를 높일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한국 주식에 프리미엄을 줄 수 있는 요소는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미국 등 선진국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예측 가능한 기업’을 만드는 것입니다. 사실 삼성전자만 해도 실적이나 주가 예측이 힘듭니다. 그런데 존슨앤드존슨·피엔지 글로벌 소비재 기업 등은 ‘내가 여기에 투자했을 때 얼마 정도를 벌 수 있다’가 거의 예측이 가능합니다. 이와 함께 한 가지 본질적인 향상도 가능하죠. 바로 과거 정주영·이병철 회장처럼 ‘혁신가’들을 배출하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제 세상은 대량생산 시대에서 대량 상상의 시대로 갑니다. 또 소유에서 활용으로 갑니다. 인플레이션의 시대에서 디플레이션의 시대로 갑니다. 혁신가는 이런 변화의 본질을 꿰뚫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한국 증시가 아주 어둡지만은 않은 다른 요인은 퇴직연금의 성장세입니다. 퇴직연금의 성장으로 기관투자가들이 성장하고 기관투자가들의 입김이 더 세질 겁니다. 이는 기업에 투명한 경영과 적극적 주주 환원책을 요구하게 되겠죠. 장기적으로 투자에 긍정적 요소입니다.

좀 과장된 상상일 수도 있긴 합니다만 현재의 글로벌 경제는 ‘순환’이 깨진 상태로 봅니다. 나이가 들다 보니 세상의 이치가 탄생-성장-발전-쇠퇴라는 ‘순환’에 의해 이뤄진다고 믿게 됐습니다. 글로벌 경제의 문제는 금리를 내려도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앙은행들이 금리 인하가 아닌 양적 완화를 선택한 것이고요. 그런데 ‘양적 완화’가 생각보다 잘 작동하지 않습니다. 너무 앞서간 생각이긴 합니다만 지금 중앙은행들의 보이지 않는 연대에 따른 ‘세계적 양적 완화’는 어느 순간 갑자기 ‘금’과 같은 초안전 자산으로 급격한 회귀가 이뤄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물론 꽤 먼 미래에 말이죠. 저 역시 현재 세계를 통틀어 가장 큰 기회는 중국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너무 중국에만 매달릴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중국 소비에 따른 프랑스 명품 업체들의 매출 상승, 유럽 낙농 업체들의 매출 상승 등이 그런 예겠죠.

저는 항상 펀드매니저라는 직업을 갖게 돼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상상이 미래에 현실이 되고 그 미래가 현실이 되면서 돈을 벌 수 있어서요. 단지 저만 버는 게 아니라 여러 투자자들이 함께 돈을 버니 더 기쁜 거죠. 2015년에도 모두 성공적인 투자를 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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