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트렌드] 성공적인 해외 진출은 ‘현지화’로부터

스스로 현지화하는 인재…타 문화 공감하는 ‘문화 지능’ 갖춰야


1970년대 초 미국 국무부는 헤이그룹의 전신인 맥버앤드컴퍼니(McBer and Company)에 초급 해외 공보 요원(FISO:Foreign Service Information Officers) 선발을 의뢰했다. 이들의 업무는 해외에 파견돼 미국을 홍보하는 문화 행사를 개최하고 현지 단체에 미국을 소개하는 것으로, 말하자면 현지인들에게 미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었다. 이들은 냉전 시대라는 시대 배경과 맞물려 매우 다른 사회 문화적 환경, 정치적 배경 속에서 성과를 내야 했다. 미국 국무부는 이런 중요한 역할을 고려해 미국사를 포함한 다양한 지식과 어학 능력을 테스트해 까다롭게 해외 공보 요원을 선발했다.

그러나 이렇게 뽑힌 요원들의 성과 수준은 제각각이었다. 국무부는 기존의 지식, 적성검사 외에 무엇을 통해 성과를 예측할 수 있는지 찾으려고 했다. 이에 따라 발견된 것이 ‘업무 상황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는 사람들의 행동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역량이다. 맥버앤드컴퍼니는 광범위한 연구 결과 보통의 성과를 낸 요원에 비해 탁월한 성과를 보인 요원들의 특성을 3가지로 요약해 냈다. 바로 이문화 간 대인 감수성(Cross-Cultural Interpersonal Sensitivity), 타인에 대한 긍정적 기대(Positive Expectation of Others), 정치적 네트워크 파악 능력(Speed in Learning Political Networks) 등이었다.


현지화는 기업 성장의 필수 조건
오늘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워 가고 있는 기업들의 최근 관심은 해외 거점에서 보다 현지화된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진출 초기, 본국에서 파견한 주재원 중심의 경영을 벗어나 현지 파트너, 현지 인재들과의 협력을 통한 사업 기반 구축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그동안 쌓아 온 글로벌 경영의 노하우와 함께 현지화의 확대가 보다 장기적으로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과를 달성하는 데 필수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해외 현지 거점에 파견하는 글로벌 인재, 즉 주재원의 운영과 관련된 전략에서도 보다 장기적인 관점이 반영되기 시작했다. 국내 굴지 대기업은 글로벌 업무 경험을 조직 내 핵심 인재 관리 방안과 연계해 장기적인 경력 관리를 목표로 활용하고 있고 배치 전 사전 교육 과정에서도 비즈니스, 어학, 현지 문화 등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있다. 또 다른 기업은 파견 주재원뿐만 아니라 교육과 같은 가족들의 생활 지원을 병행해 원활한 현지 적응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글로벌 업무에 대해 충분히 준비된 인력을 파견함으로써 그렇지 못한 인력 파견 시 예상 가능한 좌충우돌식의 위험을 줄이고 현지 인력들과의 효과적인 상호작용을 도울 수 있다.

이 같은 변화와 노력들은 주재원들이 현지, 즉 ‘그곳’의 사업 환경과 문화에 보다 빨리 적응하도록 돕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누구를 파견할 것인가’의 문제, 즉 주재원의 선발 기준은 여전히 ‘우리’의 관점에 제한돼 있다. 실제 현지 업무에서 성공 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사전 교육뿐만 아니라 ‘해외 공보 요원’의 예와 같이 선발 단계부터 현지 수행 역할에 적합한, 그곳에서의 성과 창출에 맞는 인재를 정의·선별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국내 기업의 주재원 선발 기준은 최근 몇 년간의 성과 및 역량 평가, 어학 점수(영어 혹은 주요 현지어) 및 관련 업무 경험, 즉 전문성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기준들은 대상자가 현재 ‘여기’의 맥락에서 성과를 잘 내 왔고 앞으로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말해 줄 뿐이다. 또한 조직에서의 충분한 업무 경험, 전문성은 업무 프로세스 및 노하우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만을 보장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잠재력과 전문성이 ‘그곳’의 환경과 맥락에서 충분히 발휘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선발 방식에는 이 대상자가 ‘그곳’에서의 역할 수행에 필요한 역량과 잠재력을 갖고 있는지, 자신의 전문성과 경험을 현지에 유연하게 접목해 스스로를 현지화할 수 있는지 등 핵심적인 질문이 결여돼 있다.

이문화 환경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는 사람들의 특성은 ‘여기·우리’의 상황에서 성과를 내는 데는 필수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그곳’에서의 성과와는 밀접하게 관련된 능력을 보유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역할에 따라, 요구하는 성과에 따라 필요한 행동 특성이 다를 수 있다는 게 역량의 관점이고 ‘일을 잘하는 직원은 언제 어떤 일을 시켜도 잘한다’는 것은 과거의 잘못된 판단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는 특성을 전제로 그것이 ‘그곳’에서도 같은 성과를 올릴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 아닐까.

변화하는 역할과 상황에 맞춰 주재원들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곳’의 포지션에서 요구하는 특성, 현재 수행해야 하는 역할 및 미래에 전략적으로 요구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요건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이에 맞는 사람을 찾는 게 필수적이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가능성’의 관점에서 볼 때 ‘그곳’의 환경이 요구하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을 찾는 게 기본이라는 것이다.


‘여기’의 성과만으로 평가하는 건 위험
그러나 현재의 기업 환경에서 증가하는 해외 포지션의 인력 수요에 대응하면서 각 해외 지역 및 업무 포지션별로 다른 역할 특성을 정의하고 이에 맞는 인력을 검증하며 내보내는 것은 사실상 쉬운 일은 아니다. 주재원들을 사전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미리 교육해 내보내고 귀임 이후에도 적절한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주재원의 순환이 어느 정도 안착된 조직 등 관리 역량이 성숙한 곳에서나 가능한 상황이다. 현실은 어느 정도의 경력과 어학 실력이 되는 인력부터 수요에 따라 급하게 내보낼 수밖에 없다. 파견 1주일 전에 통보 받아 부랴부랴 짐을 싸야 하거나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파견 통보를 받아 애써 얻은 신혼집을 내놔야 하는 사례들은 해외 사업이 활발한 조직이라면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상황이다.

파견되는 ‘그곳’에서의 역할을 명확히 정의하는 것도쉬운 일은 아니다. 불확실한 사업 환경에서 역할이 급격히 달라지거나 통합·축소돼 사라질 수도 있다. 이렇듯 글로벌 차원에서 전략적 인재 관리는 내부 관리 역량의 충분한 성숙과 예측 가능한 사업 환경, 혹은 뚝심 있게 전략을 밀어붙이는 조직의 강한 의지가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어려운 환경을 탓하며 기존의 선발 전략을 고수해야 할까.

각기 다른 ‘그곳’의 니즈를 개별적으로 맞출 수 없는 상황이라면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할 역량과 특성은 주어진 환경에 ‘스스로를 현지화할 수 있는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헤이그룹 글로벌의 연구 결과 글로벌 단위의 이동 시 성과를 낼 수 있는 역량으로 환경에 대한 탐색, 분석적 사고, 영향력, 스스로와 타인을 성장시키는 육성력과 함께 겸손과 유연성을 정의한 바 있다.

이러한 자기 현지화 역량을 진단할 때 ‘감성 역량(Emotional Competency)’과 ‘문화 지능(Cultural Intelligence)’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감성 역량은 최근 조직 내 소통과 관련해 중요한 역량으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데, 자신과 남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스스로를 동기부여하며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감정을 다스리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해 타인에 대한 이해, 자신 및 타인과의 관계에서 감정을 조절하는 것까지 확대된다.

타인에 대한 이해는 단순히 ‘타인의 감정을 안다’는 선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타인의 생각과 니즈에 관심을 가지고 공감하며 함께하려 한다는 것을 포함한다. 또한 타인과의 관계에서 감정을 잘 조절한다는 것은 이를 통해 효과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고 나아가 환경에 대해 수용적 태도를 갖고 불확실한 상황에 대해서도 불안을 견디고 인내하는 역량까지 이어진다. 본사와 현지를 조율하고 현지의 상황을 수용해 전략을 펼치며 한편으로는 증가하는 현지인들의 성장 니즈를 고려해 효과적인 리더십 발휘를 고민해야 하는 주재원들의 상황·역할을 고려할 때 이러한 감정적 측면의 역량이야말로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감성 역량이 부족하면 현지인의 니즈를 무시하고 스스로의 전문성과 본사 중심의 관점을 앞세워 독단적인 결정을 밀어붙이거나 본사와 현지의 상이한 니즈와 요구 사이에서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받고 업무 추진에 실패할 수도 있다.



둘째, 문화 지능은 말 그대로 타 문화에 효과적으로 적응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특히 문화적 다양성이 두드러진 상황을 효과적으로 인식, 파악하고 행동하는 것으로 초인지적(Meta-cognitive)·인지적(cognitive)·동기적(motivational)·행동적(Behavioral) 측면으로 나눠 설명된다.


‘문화 지능’ 새롭게 각광
인지적 문화 지능은 경험이나 교육을 통해 확보한 다른 문화의 규범, 행동 양식 그리고 전통에 대한 지식 정도를 의미한다. 말하자면 다른 문화의 경제적·법률적·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지식·문화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하위문화 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지식을 통해 문화 간의 차이와 유사점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중국에 파견되는 주재원이 중국에서 거래처와의 관계 형성에 있어 ‘관시’가 어떤 특성을 갖는지 배우는 것이 좋은 예다.

한편 이러한 인지적 측면을 관리할 수 있는 역량, 다시 말해 자신이 가진 다양한 문화적 차이와 지식들을 연결해 이를 전략으로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을 초인지적 문화 지능이라고 본다. 동기적 문화 지능은 이제 문화적 차이를 아는 것을 뛰어넘어 적극적으로 타 문화에 몰입, 적응하고자 하는 의지, 동기적 측면을 평가한다.

끝으로 행동적 측면은 앞서 파악한 문화적 지식, 특정 문화에서 바람직한 행동과 그렇지 않은 행동을 알고 이에 맞춰 스스로의 행동을 변화,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 개인주의 사회에서 업무적 관계에서 만난 파트너에게 사적인 질문, 예를 들면 결혼 여부나 나이, 가족 관계를 묻는 질문이 다소 무례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인지적 측면이라면,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개인적인 질문을 피하는 대신 다른 화젯거리를 찾아내는 것이 행동적 측면의 문화 지능인 것이다. 이와 같은 네 가지 문화 지능의 측면을 모두 측정한 결과가 개인의 전반적인 문화 지능의 수준이 된다.

이전 연구에 따르면 문화 지능의 수준이 문화적으로 수용되는 판단이나 의사 결정, 이문화 적응력과 성과 달성에 관련이 있다는 점이 밝혀지고 있다. 문화적 다양성이 두드러지는 상황, 즉 이문화에 적응해야 하거나 상이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협력하는 상황에서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나아가 그에 맞춰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유연한 태도는 성공적인 상호작용을 위한 준비 자세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 경영의 노하우를 쌓은 기업을 중심으로 체계적인 주재원 교육과 관리가 이뤄지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선발 이후의 교육이 아니라 장기적인 전략 아래 포지션과 역할의 정의, 그에 맞는 인재를 꼼꼼히 따져 선발하는 과정의 체계화가 수반돼야 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라도 보다 효과적인 인재 검증을 위해 본국에서의 성공 방정식과 전문성을 그대로 밀어붙이기보다 현지의 관점과 니즈를 충분히 이해하고 단계적으로 조율해 나갈 수 있는 측면의 역량 검증이 필수적이며 그것이 현지에서의 불협화음을 최소화하고 불필요한 위험을 회피하는 의미 있는 안전장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김영선 헤이그룹 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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