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금 피어오르는 우주 경쟁 움직임…기술 자립주의 대두
지난 10월 28일 오비탈사이언스의 화물 운송 로켓 ‘안타레스’가 발사 6초 만에 공중 폭발했다는 뉴스가 곳곳에 전해졌다. 높은 상공에서 폭발한 것도 아니고 지면 가까이에서 폭발해 적재 화물은 물론 지상 발사 시설까지 엄청난 화염에 휩싸인 영상이 생생히 흘러나왔다.
사실 한국의 나로호도 2번이나 발사에 실패했듯이 우주 발사체는 크고 작은 문제로 실패하는 게 결코 드문 일은 아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한 것은 이게 다른 나라도 아닌 미국의 로켓이었기 때문이다. 최고의 항공우주 기술력을 갖춘 미국의 주력 로켓이 폭발했다는 것은 영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발사는 미 항공우주국(NASA)이 비용 절감과 민간 주도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시행한 상업 궤도 운송 서비스(COTS) 사업의 일환이었다. NASA의 고비용 구조를 깨고자 스페이스X와 오비탈사이언스 두 업체에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의 화물 운송을 위탁하는 사업의 일부였던 것이다. 그만큼 미국을 대표하는 민간 우주 업체 중 하나로 손꼽히는 오비탈사이언스의 명성에도 큰 흠집이 날 수밖에 없다. 실제로 2톤이 넘는 화물과 2억 달러가 화염에 사라진 다음날 오비탈사이언스의 주가는 16%나 급락했다.
이런 사고 뒤 추궁이 이어지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갑자기 사태의 책임을 놓고 러시아 쪽으로 불똥이 튀었다. 이야기인즉슨, 안타레스 로켓은 이미 수십 년 된 러시아의 로켓 엔진을 이용한 것이었고 노후한 이런 러시아제 엔진은 언제든지 사고가 날만 했다는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급기야 오비탈사이언스는 앞으로 자사의 우주 발사체에 러시아제 엔진을 쓰지 않겠다는 성명까지 내놓았다.
미국 로켓 폭발 불똥은 러시아에로
이쯤 되면 떠오르는 의문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단연 세계 최고의 우주 강국으로 생각하고 있던 미국이 왜 러시아제 로켓 엔진을 수입해다 쓰고 있을까. 그리고 역시 양대 우주 강국으로서 우수한 기술력을 갖고 있는 러시아에 대해 왜 이런 비난이 쏟아지고 있을까. 실은 여기에는 냉전 시대부터 비롯된 양국의 기술 정책, 그리고 오늘날 새롭게 벌어지는 러시아·서방의 갈등 관계까지 다양한 문제가 얽혀 있다.
우리는 냉전과 우주 경쟁의 시대에 미·소 양국의 여러 자존심 싸움이 1960년대 이후 미국으로 기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1969년 7월 거대한 새턴 V 로켓이 플로리다 케네디 우주센터를 박차고 출발해 아폴로 11호와 닐 암스트롱 등 우주인을 달 표면에 안착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그 사이 소련은 여러 기술적 장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 유인 달 탐사선 계획을 접어야 했다. 그런가 하면 1981년 미국은 우주왕복선의 개념을 역시 한 발 앞서 실용화해 컬럼비아호를 지구 궤도에 보내는 데 성공했다. 소련판 우주왕복선으로 기획된 ‘부란’은 한참 늦은 1988년에나 발사됐고 그나마도 1회성 무인 시험비행에 그친 뒤 소련 해체로 후속 발사 사업 자체가 완전히 취소돼 버렸다. 이런 걸 보면 역시 소련·러시아는 미국에 한 수 뒤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 쉽다.
러시아의 이런 실패는 뜻밖의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은 1970~1980년대 우주왕복선 사업에 집중하면서 기존의 1회용 로켓은 금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술 개발 투자를 등한시했다. 또한 미국은 이미 걸출하고 신뢰성도 높은 맥도널더글라스의 델타 시리즈, 록히드마틴의 아틀라스 및 타이탄 시리즈 로켓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비용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 군용 화물을 실어 나르다 보니 원가 혁신에 게을리 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러시아는 원대한 기술적 도약에는 실패했지만 기존 로켓을 꾸준히 개량하고 출력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 예산도 미국만큼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소 구닥다리로 보일 수는 있어도 저렴하면서도 효율이 우수한 로켓 기술을 차근차근 쌓아 나갔다.
그 결과는 냉전이 끝나고 러시아 우주 기술이 상업 시장에 공개되면서 확연히 대조적으로 나타났다. 알다시피 미국의 우주왕복선 사업은 당초의 비용 절감 목적과 달리 여러 사업비 부담에 시달렸다. 더군다나 1986년 챌린저호, 2003년 컬럼비아호 폭발 사고 등을 겪으며 안전성도 의심받았다. 결국 NASA는 30년간 135번의 미션을 수행한 끝에 우주왕복선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러시아는 부란 사업에는 실패했지만 이를 쏘아 올리기 위해 개발했던 에네르기아 로켓의 RD-170 엔진이 그야말로 명작이라는 게 밝혀졌다. 이 엔진은 추력 200톤짜리 엔진 4개를 묶은 것으로 단연 세계 최고 출력의 액체연료 로켓 엔진이었다.
특히 이들 러시아 엔진들은 서방에서는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한 단계식 연소 사이클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었다.
단계식 연소 사이클은 펌프를 돌린 가스까지 다시 재활용해 주 연소실로 주입해 쓰는 방식이다. 그만큼 허투루 낭비하는 동력이 없기 때문에 효율이 극대화된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고온·고압의 가스를 다시 연소실로 주입하려면 상상 이상의 엄청난 소재 및 가공 기술이 필요하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도 우주왕복선 주 엔진에 이 방식을 적용하기는 했지만 연료로는 비싼 액체수소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러시아는 탁월한 소재 기술을 발전시켜 저렴한 고정제 등유(RP-1)를 이용할 수 있는 엔진을 이미 실용화했던 것이다.
결국 미국도 저렴한 비용으로 기존 액체연료 발사체를 대형화하기 위해서는 고효율·고출력의 러시아 엔진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2000년대 이후 미국의 주력 우주 발사체로 자리 잡은 아틀라스 V도 1단 로켓으로는 러시아제 RD-180을 면허 생산해 쓰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RD-170의 연소실 4개를 2개로 줄여 절반 출력으로 만든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워낙 힘이 좋아(추력 400톤급) 웬만한 임무 수행에 무리가 없을 정도다.
러시아 엔진 꼭 필요한 미국의 우주 계획
이번에 폭발 사고가 난 안타레스 로켓은 비용 절감을 위해 더 자존심을 접는 선택을 해야 했다. 구소련에는 여러 로켓 개발 조직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항공기 엔진과 로켓 엔진을 만들던 쿠즈네초프 설계국이었다. 이곳에서는 실패한 소련의 유인 달 탐사선 로켓인 N1에 들어갈 로켓 엔진을 만들고 있었다. 이 역시 표면적으로는 미국에 패배했지만 그 과정에서 단계식 연소 사이클 엔진을 선구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게 NK-33 엔진이다.
이 엔진도 최근 스페이스X의 멀린 엔진이 등장하기 전까지 40년 가까이 중량 대비 추력 비율이 가장 우수한, 즉 효율이 가장 좋은 걸작 엔진이었다. 그러나 달 탐사 계획 무산으로 이 엔진은 약 150대가 생산된 뒤 쓰이지도 못한 채 수십 년 동안 창고에 쌓여 있었다. 이를 소련 붕괴 이후에 아에로제트가 러시아 정부로부터 저렴하게 불하받아 수리·개량한 것이 AJ26 엔진이고 오비탈사이언스는 이 엔진을 공급받아 안타레스 로켓에 장착한 것이다. NASA에 참담하게 패배해 40년 동안 묵혀 있던 엔진들이 이제 다시 NASA의 화물을 실어 나르기 위해 호출됐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미국의 발사체들이 러시아 엔진 기술에 적지 않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예전부터 미국 내에서도 여러 경고의 목소리가 높았었다. 냉전이 끝나고 러시아 업체들도 돈이 궁하다 보니 서방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는 하지만 갑자기 공급을 끊어버릴 때 대안이 분명 필요했다. 러시아 엔진에 대한 의존 없이 독자적인 엔진 기술을 쌓아 가는 스페이스X 등에 대한 기대와 정책적인 지원이 줄기차게 이어지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경고가 급작스레 현실이 돼 가고 있다. 이미 올해 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내전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면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 등 강경한 대응을 천명한 바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RD-180, AJ-26 등 러시아 업체들의 미국 우주 시장 참여를 제한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질세라 드미트리 로고진 러시아 부총리도 미국이 러시아 로켓 엔진을 안 쓰고 배기나 보자면서 미국의 군사위성을 쏘아 올리는 발사체에는 러시아 엔진을 공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양국의 험악한 분위기에 이번 AJ-26 엔진을 쓴 안타레스 로켓 폭발 사고는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이제 다시 기술 자립주의를 높여 가는 미국의 대응에 맞서 시장을 잃은 러시아가 과연 어떻게 대응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