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_미국] 개미들 떠난 미 증시, ‘부익부 빈익빈’ 심화

증시 회복세에도 540만 가계 떠나…‘고점 매수-저점 매도’ 트라우마 원인


‘꼭대기에서 사고 바닥에서 팔고….’

주식 투자를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속상한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된다는 점이다. 많은 투자자들은 ‘탐욕’에 사로잡혀 ‘고점 매수’에 나서고 ‘공포’에 질려 ‘저점 매도’하는 시행착오를 되풀이하고 있는 게 엄연한 사실이다. 주식시장의 역사가 한국보다 훨씬 오래된 미국의 개인 투자자들은 어떨까.

미국 중앙은행(Fed)이 발표한 최근 가계 금융 동향을 보면, 미국 가계에서 주식을 직접 투자하는 가계의 비율은 2001년 21.2%였지만 2007년에는 17.9%로 줄었다. 그리고 2008년 금융 위기를 거친 후 2010년 그 비중이 15.1%로 감소한 뒤 2013년에는 13.8%로 더 줄었다. 미 증시가 2009년부터 회복세로 전환돼 6년째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지만 개인들은 하염없이 주식시장을 떠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뮤추얼 펀드와 같은 간접투자까지 포함해도 마찬가지다. 주식을 직간접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가계의 비중은 2007년 53.2%에서 2013년 48.8%로 감소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Fed의 보고서를 분석하면서 2010~2013년 사이 주가가 급등할 때 540만 가계가 주식시장을 떠났다고 추정했다. 미국의 개인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을 떠나고 있는 데는 금융 위기 때 겪었던 ‘트라우마’가 아직 치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프랭크 스태퍼드 미국 미시간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 위기 이후 실업 등을 겪으면서 소득과 자산이 줄어든 개인들이 주식 투자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진단했다. 미국은 금융 위기 직후 대공황 이후 가장 혹독한 경기 침체를 겪었다. 주택 거품이 꺼지면서 돈을 빌려 주택을 구입한 수백만 가계가 ‘깡통 주택’에 직면했다. 빚을 갚기 위해 그리고 실업자들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헐값에라도 주식을 팔아 치워야 했다. 두려움에 떨며 증시를 떠난 이들이 아직 정신적 외상의 충격에서 회복되지 못해 증시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상위층 부자는 주식 비중 확대
불행한 것은 이런 슬픈 현실이 소득 불균형, 빈부 격차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산층과 저소득층들이 주식을 떠나면서 주가 상승의 혜택, 즉 ‘부의 효과(wealth effect)’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Fed 분석에 따르면 소득 상위 10% 계층은 주식 비중을 확대한 반면 하위 90%가 집중적으로 주식을 축소했다. 소득 상위 10% 계층에서 주식을 직간접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가계의 비율은 2010년 90%에서 2013년 93%에 증가했다.

그 결과 부의 편중 현상이 심화됐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2013년 기준 미국인 상위 10% 부자가 미국 전체 부의 61.9%를 차지하고 있다. 1989년에는 상위 10% 부자가 미국 전체 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가 조금 넘었지만 24년 만에 10% 포인트 이상 늘어난 것이다. 반면 소득 하위 80%는 2013년 기준으로 전체 부의 26.2%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24년 전의 40%에서 크게 감소했다. 또 미국 경제가 회복된 최근 2년 동안 미국인 가운데 최상위층 부자 7%가 보유한 부는 28%나 불어난 반면에 나머지 미국인들의 부는 4%나 줄었다.


워싱턴 = 장진모 한국경제 특파원 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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