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넥스트 잡’ 시대] 귀촌 후 농업 32.3%…농업 창업이 뜬다

정부서 가구당 2억 원까지 자금 지원, 무작정 나서면 쓴맛

19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농촌에서 살겠다’는 생각은 쉽게 꺼내기 어려운 말이었다. 고향을 떠나 도시에 정착한 사람이건, 본시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건 대도시를 떠나 ‘시골’에 정착해 산다는 것은 일종의 ‘포기’나 ‘패배’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말이 제주도로 가야 하듯 사람은, 특히 성공과 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으레 서울 땅을 밟아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1990년 중·후반 들어서면서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산업화 과정에서 피폐해진 농촌을 되살려야 한다는 사회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결정적으로 외환위기 이후에는 생계형·자발적 귀농·귀촌자가 급격하게 늘기 시작했다. 2001년 880호에 그쳤던 전국의 귀농·귀촌 가구는 2012년에 2만7008호에 달했다. 불과 10여 년 사이에 235배나 폭증한 것이다. 귀농·귀촌은 이제 복잡하고 찌든 도시를 떠나 여유는 물론 경제적 풍요까지 거둘 수 있도록 삶의 질을 바꾸는 중요한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이번 ‘직장인의 넥스트 잡’ 조사 결과를 봐도 귀농·귀촌이 주요한 넥스트 잡으로 떠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귀촌 후 농업에 종사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이 32.3%에 달했다. 또 농업에 종사할 계획이 있는 응답자들은 ‘인터넷·커뮤니티 등에서 정보 취합(35.7%), 농업 관련 교육(23.3%), 서적 등을 통한 전문 지식 습득(16.3%)’ 등 실제로 귀농·귀촌 관련 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공적인 넥스트 잡의 조건은 얼마나 준비를 많이 했느냐에 달려 있다. 귀농·귀촌도 마찬가지다. 특히 최근에는 농업 관련 경험이 전무한 도시인들이 귀농·귀촌에 나서면서 이들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체험 프로그램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과거와 달리 ‘묻지 마’ 귀농에 나서는 이는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제대로 된 준비가 부족한 상태로 귀농에 뛰어들었다가 실패의 쓴맛을 보며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이도 적지 않다. 철저한 준비가 그만큼 중요한 이유다. 이번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9%가 귀촌 준비로 1년 이상을 계획하고 있다고 답해 달라진 인식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귀농·귀촌에 관심은 많은데,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이 서지 않는 초보자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운영하는 ‘귀농귀촌종합센터(www.returnfarm.com)’부터 방문하는 게 좋다. 정부가 운영하는 귀농·귀촌 종합 포털로 이해하면 좋다. 이곳에선 귀농·귀촌 준비와 절차, 지역별 상담, 우수 사례, 지원 정책, 작목 정보, 지자체별 통합 정보, 멘토링 서비스 등이 체계적으로 잘 갖춰져 있다.


귀농·귀촌 첫걸음은 정보 수집
귀농·귀촌이 붐을 이루며 정부나 지자체도 적극적인 귀농·귀촌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정부는 2009년부터 가구주가 가족과 함께 농촌으로 이주해 실제 거주하면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거나 계획 중인 사람, 농어촌 지역으로 이주 예정이거나 2년 이내 퇴직 증빙을 할 수 있는 퇴직 예정자 등에게 농업 창업금으로 가구당 2억 원까지, 주택 구입비로 가구당 5000만 원까지 대출을 지원하고 있다. 이 밖에 광역시, 도·시·군 등에서 각 지역에 맞게 특화된 귀농·귀촌 혜택을 지원 중이다.

귀농·귀촌 전문가들은 첫째도 둘째도 제대로 된 ‘준비’를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귀농·귀촌 주체의 성향·취향은 가장 우선시해야 할 덕목이다. 이 밖에 정착 지역과 작목, 자녀 교육 환경 등을 고려해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게 공통된 조언이다. 충남 괴산에서 귀농 12년 차를 맞고 있는 농부 이우성 씨는 “현지답사 등 귀농 계획은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좋다”고 말했다.



성공 사례 | ‘달마시안 제충국’ 재배하는 채의수 씨



“국산 제충국으로 연 1억 원 수입”
채의수 씨가 이름도 생소한 ‘달마시안 제충국’ 재배에 나선 것은 4년 전부터다. 충남 천안의 8200㎡(약 2500평) 땅에서 ‘꽃 농사’를 짓는 어엿한 농부지만 엄밀히 말하면 귀농 예정자이기도 하다. 채 씨는 현재 상업·물류 시설 개발사에서 일하고 있는 15년 차 직장인이다. 본격적인 전업농의 길은 내년으로 계획 중이다. 20대 후반부터 과수 등 농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채 씨는 7년 전부터 약 3305㎡(1000평)의 땅에서 블루베리 재배에 나섰다. 친환경 농업을 위한 해충 방지용 자재를 찾던 중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제충국이었다.

“살충 효과는 충분했는데, 대부분이 중국산이었어요. 국내에서 묘종이나 재배 관련 정보도 찾기 어려웠죠. 중국산을 쓰느니 손수 길러 보자고 결심했어요.”

블루베리를 접고 제충국 재배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하면서 채 씨는 어느덧 국내 최고 수준의 제충국 전문가가 됐다. 얼마 전에는 관련 책도 펴냈고 인터넷 카페를 통해 제충국 재배 희망자들과 활발한 커뮤니티 활동도 벌이고 있다. 채 씨는 농업뿐만 아니라 가정용 살충제, 먹을거리 보관, 동물 사육, 화장품·비누 제조 등 제충국의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고 말한다. 현재 채 씨는 제충국 재배를 통해 연간 1억 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앞으로는 재배 방법 전수자들을 체인으로 묶는 대형 체인 사업으로 사업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현재도 살충제 제조업체 등과 신제품 개발을 놓고 협의 중이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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