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심리학으로 풀어보는 삼국지] 제갈량도 못 피한 비웃음과 조롱의 마력

상대를 모욕하는 욕설로 카타르시스…실수 유발하는 전술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예나 지금이나 편모슬하에서 자라는 아들은 힘들고 외롭다. 근대 이전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아버지는 가족을 지키고 가르치고 부양하는 수호신이었다. 그러므로 ‘아비 없는 후레자식’이라는 욕설은 본데없이 막 자라서 교양머리도 없고 의지할 사람조차 없는, 그러므로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태양신 헬리오스의 아들 파에톤도 동년배 아이들로부터 같은 욕을 먹고 분통이 터졌다. “어머니 제가 진짜 태양신의 아들이 맞아요? 아버지는 대체 어디에 있죠?” 파에톤이 어린 시절 받은 모욕과 그 때문에 생긴 울분을 아테네의 왕 테세우스나 고구려 건국 신화의 주인공 주몽도 똑같이 겪고 자랐다. 예수 역시 지상의 사람들 눈에는 ‘아비 없는 사생아’에 불과했다.


성문 앞에서 벌어진 질펀한 욕설 전투
인류가 욕설을 하게 된 기원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처럼 부모의 존재 여부나 그들에 대한 모욕적 언사에서 시작해 점차 출신 성분으로까지 확대돼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 ‘삼국지’에서 여포를 향해 ‘성이 3개나 되는 놈’이라고 욕하는 것도 두 명의 양아버지를 죽인 여포의 포악한 심성과 함께 그의 출신 성분이 하잘것없다는 것을 함께 조롱하는 욕설이다.

‘삼국지’ 초반 십상시의 무리들이 영제의 황후인 영사황후의 오라비 대장군 하진을 주살하면서 ‘소·돼지나 잡던 백정 놈’이라고 욕하는 것도, 장비를 위나라나 오나라 사람들이 그리 욕하는 것도, 유비를 일러 ‘돗자리와 짚신 짜던 놈’이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촉한(蜀漢)이 서서히 세력을 키워 나가면서 관우의 명성도 천하에 널리 알려졌다. 오나라 손권이 사신을 시켜 관우에게 제안했다. “관공의 딸과 내 아들을 결혼시키면 어떻겠소이까?” 손권의 속내를 꿰뚫어 보고 있던 관우. 그는 손권의 정략결혼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면서 사신을 혼쭐내 돌려보낸다. “가서 전하라! 세상에 호랑이의 자식을 개의 새끼에게 시집보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아마도 손권이 생전에 들은 말 중 가장 모욕적인 말이 아니었을까.

소설 ‘삼국지’에는 본격적인 전투에 들어가기에 앞서 아군과 적군 사이에 한바탕 질펀한 욕설의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고의로 적을 질타해 상대를 격분시켜 실수를 유발하는 것도 상투적인 전술의 수단이었다”고 한다(김문경, ‘삼국지의 세계’, 264쪽).

욕설로는 장비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다. 와구관에서 장비와 위나라 조홍의 부장 장합이 서로 맞붙었다. 장비가 계속 싸움을 걸었지만 장비에게 한 번 패했던 장합은 성 안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장비가 분노해 매일 술을 마시면서 장합이 주둔한 성문 앞에 가서 욕설을 퍼부었다. 하루는 장비가 술에 취한 척하면서 온종일 병사들에게 씨름을 시키는 등 희희낙락 여흥을 즐기고 있었다. 마음을 놓은 장합이 그날 밤 기습 작전을 감행했다가 크게 패했음은 물론이다.

유비가 조조 군대에게 소패성과 서주성을 빼앗기고 원소에게 의탁하게 된 시절, 관우만 외롭게 하비성을 지키고 있었다. 성 안에는 장형 유비의 부인들이 있어 관우는 철통같이 하비성을 방비하며 조조의 군대가 시비를 걸어도 싸움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하후돈이 하비성 성문 앞에서 욕설을 퍼부었다. “관우야! 네 주공 유비는 벌써 목이 달아났는데, 네 놈만 혼자 살겠다고 숨어 있는 거냐?” 충정과 의리의 화신인 관우가 배신자라는 욕설을 듣자 분을 삭이지 못했다. “하릅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는구나!” 하후돈의 유인책에 걸려 성 밖으로 나온 관우는 하비성을 빼앗기고 조조에게 의탁하는 신세가 된다.

이처럼 대놓고 직접적으로 하는 욕설도 있지만 간접적으로 모욕을 주는 경우도 많았다. 예컨대 조조는 아끼던 참모 순욱이 자신이 황제의 의전에 준하는 구석(九錫)의 특권을 받으려는 걸 반대하자 순욱에게 빈 도시락을 보낸다. ‘아무것도 먹지 말고 죽어라’는 뜻의 간접적인 모욕임을 간파한 순욱은 독주를 마시고 자결한다.

‘삼국지’ 필생의 라이벌 제갈공명과 사마의 사이에 일어난 에피소드다. 제갈량은 건강이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천하통일의 대업을 달성하기 위해 출사표를 던지고 마지막 북벌을 감행했다. 아무리 공명의 군사들이 성 밖에서 욕설을 해도 사마의가 꿈쩍도 하지 않자 조바심이 난 공명이 사마의에게 여자 옷과 패물을 선물로 보낸다. “사마의! 자네는 일개 아녀자보다 못한 허접한 자로구만!” 비웃음과 조롱이 담긴 선물이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번성전투에서 관우에게 사로잡힌 방덕은 항복을 권유받았다. “우리 주군(조조)은 백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위세를 온 천하에 떨치고 있는데, 범재에 불과한 유비의 하수인에게 내가 왜 항복을 하겠느냐?” 방덕은 의연히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같은 전투에서 조조 막하의 우금은 관우에게 항복했다. 조조가 탄식했다. “내가 우금을 알고 지낸 지 30년이 넘었건만 재난을 당하니 방덕보다 못하구나!”


조조, 모욕감에 치를 떨다
세월이 흘러 관우가 오나라 마충에게 잡혀 죽고 포로로 있던 우금의 군대는 오나라로 압송됐다가 손권에 의해 위나라로 돌아간다. 조조는 이미 죽고 그의 아들 조비(위문제)가 즉위한 때였다. 조비의 눈에 항장(降將) 우금이 곱게 보일 리가 만무했다. 조비는 오나라에 특사 자격으로 우금을 파견하면서, “우금! 그대는 아버지의 능에 참배를 하고 가라”고 명한다. 조조의 능에 참배하러 갔다가 그 곳에 그려진 벽화를 본 우금은 치욕감을 견디지 못하고 곧 화병으로 죽고 만다. 무슨 그림이 그려져 있었을까. 관우에게 포로가 된 방덕은 고개를 쳐들고 관우를 노려보는데, 우금은 무릎을 꿇고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욕설은 문장의 형식을 빌리기도 했다. 대표적인 게 원소 휘하에 있던 진림이 서주에 있던 유비를 참전시키기 위해 쓴 조조를 성토하는 격문이다. 내용이 놀랍다. “조조는 환관에게 빌붙은 더러운 집안의 피를 타고났다. 본래 덕이 없고 교활하고 협잡이 심하고 난을 일으키고 재앙을 즐기는 간신배다.” 조조가 모욕감에 치를 떨며 진땀까지 흘리는 바람에 앓고 있던 두통이 감쪽같이 나았다고 한다.

연구에 따르면 욕설은 저주와 악담을 퍼붓는 쌍욕, 비아냥거리는 조소의 욕, 꾸지람과 차별을 위한 채찍과 같은 욕, 즐기기 위한 익살스러운 욕 등이 있다고 한다. 욕설은 어느 정도 카타르시스적인 기능도 갖는다. 욕설을 통해 사람들은 평소에 쌓인 개인적인 스트레스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고 가진 자와 있는 자들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통해 사회적 스트레스도 배설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사가 다 그러하듯이 어느 한계를 넘어 중용의 덕을 잃은 저주와 악담과 조소와 채찍 같은 욕설이 개인적·사회적 건강에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사족. 러시아 소설가 막심 고리키는 이런 말을 했다. “욕설은 세 사람에게 동시에 상처를 준다. 욕을 먹는 사람과 욕을 전하는 사람, 그중에 가장 큰 상처를 입는 사람은 욕설을 퍼부은 그 사람 자신이다.” 제 주장이 옳다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새겨들을 말이 아닌가 싶다.


김진국 칼럼니스트, ‘재벌총수는 왜 폐암에 잘 걸릴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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