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에세이] 양심적인 회계사의 추억

한국 사회는 윤리, 특히 직업윤리를 망각한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은 물론이고 출판 기념회를 열어 버젓이 수억 원에 달하는 정치자금을 모으면서도 ‘당당한’ 국회의원이 국회에 앉아 국민을 대변해 정책을 논한다.



김종호 공인회계사·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마켓 및 산업총괄본부 대표

1957년생.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경방육영재단, 보령중보 재단 감사(현).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마켓 및 산업총괄본부 대표(Managing Partner)(현).


1990년대 후반의 일이다. 당시 신문 사회면에 오르내렸던 S건설 분식회계 사건과 관련해 단순히 참고인 조사를 받으러 서울지방검찰청 특수부를 방문한 적이 있다. 평생 가야 드나들 일 없던 검찰청 조사실 문턱을 넘을 때 긴장되고 불편한 심기는 아직도 생생하다. 담당 검사가 던지는 의례적인 질문과 필자의 답변이 이어지던 중 일순간 검사가 타이핑을 멈추고 필자를 빤히 쳐다봤다.

“주소는 어떻게 됩니까?”

“서울시 도봉구 ○○○동 ○○○.”

“어? 도봉구? 이 사람 양심적인 회계사네?.”

강남이 아닌, 어쩌면 변두리에 가까운 곳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양심적인 회계사’란 말을 들었다는 사실은 회계사를 바라보는 당시의 사회적 시선을 방증한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흐른 요즘도 이따금 회계사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을 마주할 때가 있다.

거기에는 아마도 일종의 기득권(?)에 대한 반감이 깔려 있는 것 같다. 여기서 기득권이라는 것은 외부감사인으로 일하면서 알짜 기업의 내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업무 환경일 것이다. 그것이 결국 개인적 이재에 도움이 될 것이란 추측 또한 뒤따르는 듯하다. 이는 대형 회계법인에 근무하는 회계사로서는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오명(汚名) 아닌 오명 같은 이미지였다.

하지만 현실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전문가로서의 공인회계사의 중요한 덕목은 윤리이고 이를 위한 윤리 기준의 요구 사항 수준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특히 고객에 대한 책임과 의무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독립성’ 유지 덕목이다. 예를 들면 감사인은 내부 정보, 즉 고객의 미공개 정보에 의한 주식거래, 누설, 타인을 대상으로 하는 주식거래 권고 등의 행위가 일절 금지된다. 즉, 아무리 ‘핫’한 주식 투자 정보를 알게 되더라도 배우자나 부양가족까지도 고객사 주식 투자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본인이 속한 회계법인은 매니저급 이상이 되면 회계법인의 고객사 중 피감사 금융사에 있는 예금·부채·펀드 등 모든 금융자산을 정기적으로 신고하고 회계법인 차원의 내부 감사를 받게 된다. 매니지먼트 레벨의 파트너들은 매년 금융자산 신고를 반드시 해야 하는데, 이러다 보니 쌈짓돈(?)을 해마다 공개해야 하는 배우자들의 불평이 커져 부부 싸움이 벌어지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처럼 현실을 두고 보면 회계법인에 다니는, 특히 회계사는 이재에 관한 한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최근 한국 사회는 윤리, 특히 직업윤리를 망각한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은 물론이고 출판 기념회를 열어 버젓이 수억 원에 달하는 정치자금을 모으면서도 ‘당당한’ 국회의원이 국회에 앉아 국민을 대변해 정책을 논한다. 심지어 뒷돈을 받고 정책 개정을 조종하기도 한다. 이 땅의 엄마들은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겠느냐며 분개한다.

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다. 더욱 낮은 곳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들이 그의 정신 근저에 깔린 성직자로서의 직업윤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 어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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