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서울 오피스 시장에 돌아온 외국자본들

아부다비투자청 등 대거 매입…3년 만에 투자 규모 다시 1조 원 돌파


세계 랭킹 3위 국부 펀드로 꼽히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투자청(ADIA)이 서울 회현동에 있는 대형 오피스 빌딩 ‘스테이트타워 남산(총면적 6만6799㎡)’ 매입을 추진 중이다. 스테이트타워 남산을 소유한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은 8월 초 우선 인수 협약 대상자로 ADIA를 선정했다. 매각가는 3.3㎡당 2623만 원으로, 총 5300억 원에 이른다. ADIA는 현재 실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조만간 매입 작업을 끝낼 계획이다.


종로·을지로 일대 오피스 빌딩 인기
국내 대형 오피스 시장에 외국자본이 몰려들고 있다. 3~4년 전 부동산 시장 침체와 경제에 대한 낮아진 신뢰로 서울 오피스 시장을 이탈했던 외국자본이 다시 몰려오는 것이다. 아제르바이잔의 국부 펀드 소파즈(SOFAZ), 미국의 사모 펀드인 콜버그 크래비스 로버츠(KKR), 홍콩의 투자회사 림어드바이저스, 홍콩계 사모 펀드 거캐피털파트너스 등이 서울 오피스 시장에 투자했거나 투자할 계획이다. 올 들어 이들이 한국에 쏟은 금액은 1조3000억 원을 웃돈다.
부동산 종합 컨설팅 회사인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국내 오피스 투자 금액은 1조9383억 원을 기록했다. 이 중 해외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70%를 차지했다. 외국자본의 서울 오피스 시장 투자 금액이 1조 원을 넘긴 것은 2011년 이후 3년여 만이다.

이건욱 법무법인 대지 대표 변호사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최근 서울 오피스 투자에 쏟아지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공실률 이슈로 작년에 관망하던 투자자들이 올 들어 안심하고 투자하는 것”이라 말했다.

해외 투자자들은 주로 서울 종로·을지로·중구 등 시내 중심 지역(CBD: Central Business District)의 대형 오피스 빌딩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사모 펀드인 KKR와 홍콩 종합 투자회사인 림어드바이저스는 올 6월 서울 광화문에 있는 업무용 빌딩 ‘더 케이 트윈타워(총면적 8만4000㎡)’를 5066억 원에 공동 매입했다. 2012년에 준공된 더 케이 트윈타워는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 본사 등 국내외 기업·금융회사·로펌 등이 입주해 있다.

ADIA가 매입할 스테이트타워 남산도 서울 회현동에 있다. 특히 이곳의 투자 경쟁은 치열했다. 국내 부동산 자산 운용 업체인 이지스자산운용과 외국계 자본인 독일의 도이치자산운용, 싱가포르의 아센다스가 뛰어들어 인수를 시도했지만 결국 ADIA가 최종 우선 협상자로 선정됐다. 총자산 7730억 달러(778조 원), 임직원 1500명을 거느린 ADIA는 그동안 삼성자산운용 등 한국 투자 자산 운용사를 통해 한국 주식시장에 투자한 적은 있지만 한국 오피스 빌딩 매입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의 빌딩 쟁탈전은 결국 몸값을 치솟게 했다. 스테이트타워 남산 빌딩의 3.3㎡당 매매가는 2623만 원으로, 서울 오피스 빌딩 매매가 중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매각 대금은 5300억 원에 달해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은 이번 스테이트타워 매각으로 1000억 원 안팎의 차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아제르바이잔 국부 펀드인 소파즈는 올 4월 서울 을지로 ‘파인애비뉴 A동(총면적 6만5774㎡)’을 4775억 원에 매입했다. 이 빌딩의 3.3㎡당 매매가 역시 2400만 원에 달한다. 부동산 컨설팅 전문 업체인 리맥스코리아의 장진택 이사는 “통상 도심과 강남의 프라임급 빌딩은 3.3㎡당 평균 매매가가 2000만~2200만 원 선이지만 최근 거래된 가격은 이를 뛰어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 빌딩의 가격이 치솟으면서 서울 평균 오피스 빌딩 매매가 역시 상승세다. 부동산 컨설팅 전문 업체인 리맥스코리아가 서울 시내 200개 오피스 빌딩을 조사한 결과 2010년 2분기 1537만 원이던 3.3㎡당 평균 매매가는 올 2분기 1581만 원으로 꾸준히 오름세다. “공실률이 높아지고 있는데도 오피스 빌딩 가격이 뛰는 것은 안전 자산 선호 때문”이라는 게 리맥스코리아 측의 설명이다. 부동산 시장 침체와 저금리 기조로 마땅한 투자처가 부재한 상황에서 기관투자가나 해외 펀드가 오피스 빌딩을 안전한 투자처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장진택 이사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빌딩 가격은 긴 호흡으로 볼 때 떨어지지 않는다’는 인식이 투자자들 사이에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한국 부동산 시장은 안정적인 투자처”
이것이 바로 오피스 시장에 외국인의 ‘바이 코리아’ 움직임이 두드러지는 이유다. 저금리 기조가 있어 자금 조달의 부담이 적어진 데다 ‘안정적’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으로 꼽힌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서울 오피스 빌딩의 임대 수익률은 연 6%대를 유지하고 있다. 서울은 신축 오피스 빌딩이 늘어나면서 공실률이 높아졌지만 임대료나 매매가격이 잘 떨어지지 않아 임대 수익률이 높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서울 오피스 임대 시장은 금융과 제조업 등 여러 업종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입지 여건이 좋은 랜드마크 빌딩만 노리는 것도 이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주식·채권 등 전통적인 투자 패턴에서 벗어나 부동산 등 실물 자산에 분산투자해 안정적으로 장기 수익성을 높이려는 게 국부 펀드 등 글로벌 큰손들의 최근 동향이어서 앞으로 외국인들의 국내 빌딩 매입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30~ 40%의 시세 차익을 얻으려는 투기성 투자에서 벗어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수익성 높은 오피스 빌딩은 임대 수요가 넉넉한 데다 환금성이 좋아 되팔기도 쉽다. 이 때문에 외국자본이 꾸준히 유입될지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견해가 엇갈린다. 랜드마크 빌딩은 국내 투자처들도 줄을 서 있고 매물이 드물기 때문이다. 또 외국자본이 원하는 물량이 제한적이어서 과거와 같은 대규모 투자는 어렵다는 전망이다.

반면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있어 투자 대상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랜드마크 빌딩 외에 일부 대형 빌딩도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다는 근거에서다. 환금성은 랜드마크 빌딩보다 못하지만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한 만큼 외국자본의 투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또 내년부터 공실이 해소돼 외국인의 관심이 더욱 높아질 것이란 전망도 있다. 부동산 컨설팅 업체 세빌스코리아의 홍지은 상무는 “최근 2~3년 동안 서울에 신축 오피스 빌딩이 급증해 빈 사무실이 많아졌지만 내년부터는 이 문제도 상당 부분 해소될 전망”이라며 “임대료가 매년 1~2% 오를 정도로 임차 수요가 풍부한 것도 장기적인 투자 관점에서 외국인들에게는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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