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수익률 기적’ 메리츠를 움직이는 비밀 병기

존 리 대표와 20년 손발 맞춘 5인방…철저한 팀플레이·거침없는 토론 장점


그야말로 ‘환골탈태’란 표현이 딱 어울린다. 국내 자산 운용사 수익률 ‘꼴찌’를 면치 못하던 메리츠자산운용이 2014년 들어 확연히 달라졌다. 펀드 평가사 KG제로인에 따르면 2013년 메리츠자산운용의 국내 주식형 펀드 평균 수익률은 마이너스 4.12%였다. 자산 운용사들 가운데 하위권을 면치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불과 1년 만에 메리츠자산운용의 평균 펀드 수익률은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왔다.

8월 13일을 기준으로 연초 이후 메리츠자산운용의 국내 주식형 펀드 평균 수익률은 8.03%로, 국내 자산 운용사 중 넷째로 높았다. KG제로인은 이 같은 성과를 이유로 8월 12일 주식 운용 정성 평가에서 메리츠자산운용의 등급을 연초 ‘A’에서 ‘A+’로 한 단계 상향 조정했다. 제로인 측은 “올 초 존 리 대표와 권오진 전무가 새로 합류한 후 리 대표를 중심으로 기존 철학 및 프로세스가 실현될 수 있는 환경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 받았다”고 밝혔다. 이른바 ‘존 리 효과’가 제대로 통한 셈이다.

리 대표는 미국 월가의 스타 펀드매니저 출신이다. 스커더인베스트먼트에서 10년간 ‘코리아펀드’를 운용하며 국내에 이름을 알린 뒤 라자드자산운용으로 자리를 옮겨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일명 장하성펀드)’를 운용한 바 있다. 지난 1월 그가 메리츠자산운용의 신임 대표로 부임한 이후 확 달라진 메리츠자산운용의 성적표도 성적표지만 무엇보다 그의 독특한 경영 방식이 눈길을 끌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사무실을 여의도에서 계동으로 옮겨 온 것이다. 고층 빌딩이 빽빽하게 들어찬 여의도를 떠나 푸른 숲이 우거진 북촌에 터를 잡은 만큼 직원들이 보다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와 함께 팀장·본부장 등 직급을 없애고 리 대표와 바로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췄다. 리 대표는 이를 위해 기존의 넓고 화려한 사장실을 없앴다. 책상 한 대가 꽉 들어찬 그의 사무실은 언제나 직원들을 향해 문이 열려 있다.


라자드에서 메리츠로 ‘팀플 이동’ 눈길
그러나 이 모든 ‘튀는 행보’ 중에서도 리 대표가 메리츠자산운용의 핵심 성공 비결로 꼽는 것은 따로 있다. 다름 아닌 스커더인베스트먼트·라자드자산운용을 거쳐 지속적으로 그와 함께해 온 ‘팀원’ 들이다. 실제로 그는 부임 당시 라자드자산운용의 주식운용팀을 한꺼번에 영입해 와 운용 업계의 시선을 모은 바 있다. 자산 운용 업계에서는 드물게 ‘팀플레이’를 중심으로 움직이는데다 외국계 자산 운용사에서 국내 자산 운용사로 팀 전체가 한 번에 이동 한 경우는 그야말로 유례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라자드자산운용에서 메리츠자산운용으로 옮겨 온 팀원은 모두 6명으로, 길게는 20년에서부터 짧게는 3년 정도까지 리 대표와 함께 일하고 있다. 펀드매니저를 맡고 있는 권오진 전무와 포트폴리오 매니저 김홍석 상무, 애널리스트인 홍주연 부장, 모계방 차장, 정광우 대리가 그 주인공이다. 리 대표는 “국내 금융업계에서 20년간 한 팀으로 일한 경우는 우리가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 시간 동안 팀원들이 같은 가치를 공유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지속성’이야말로 팀플레이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메리츠자산운용의 주식운용팀은 어떤 방식으로 투자를 결정하기에 이처럼 높은 성과를 내고 있을까. 이들의 작업 방식은 개별 종목의 리서치를 바탕으로 장기 투자를 하는 보텀업(bottom-up) 방식이다. 김 상무는 “사실 일하는 방식만 놓고 보면 ‘기업 탐방→데이터 확인→팀 회의→투자 결정’에 이르는 순서나 형식은 다른 주식 운용사와 별반 차이가 없다”며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절차가 아니라 그 내용에 있다”고 설명했다. 리 대표는 “주식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주식 매매 타이밍을 판단하는 ‘투기’가 아니라 기업의 장기적인 가치를 판단하는 ‘투자’가 돼야 한다”며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인데, 정형화된 시스템 안에 갇히면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된다”고 강조한다. 형식상 어떤 규칙이나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이 팀의 가장 중요한 ‘규칙’이라는 얘기다.

그중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기업 탐방’과 ‘팀 회의’다. 보통의 애널리스트들이 기업 홍보 담당자들과의 만남을 그 중심에 놓는다면 이들은 기업의 ‘사소한 정보’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김 상무는 “홍보팀에서는 신기술에 대해 좋은 점만 언급할 때가 많은데 실제로 기술 담당자를 찾아가면 어떤 부분에서 기술적으로 답답함을 느끼는지, 또 어느 경쟁사가 잘하는지 등 솔직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며 “직원들의 분위기나 회사 최고경영자(CEO)의 책상에 놓인 책 등 사소한 것에서 짐작할 수 있는 정보들이 더 많다”고 귀띔했다. 리 대표는 “이 기업이 장기적으로 돈을 벌 수 있을 것인지에 관심을 두면 자연스레 질문이 꼬리를 문다”며 “그 답을 찾기 위해 뛰다보면 기업 탐방의 질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팀 회의도 마찬가지다. 온갖 경제지표들을 언급하며 주가나 매도·매수 타이밍에 대한 얘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리 대표는 “중요한 건 시장의 일회성 정보에 귀를 닫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와 함께 팀원들이 모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종목은 애초 논의 대상에서 지워 버린다. 서로 다른 의견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분위기야말로 이 팀의 핵심적인 성공 비결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사옥을 여의도에서 계동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모두가 찬성 의견을 보이자 리 대표가 일부러 반대 의견을 냈다는 일화는 바로 이 같은 팀 분위기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김 상무는 “같은 기업에 대해 찬성과 반대가 오가는 과정에서 자기 의견을 상대에게 설득시키기 위해서라도 기업의 더 자세한 정보를 찾아보고 공부하게 된다”며 “이 과정에서 시장의 정보는 오히려 기업의 본질을 판단하는 데 방해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배제할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치열한 회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팀이지만 의외로 최종적인 투자 결정은 비민주적(?)으로 진행된다. 실제로 팀 내에서도 주식의 매매나 매도를 결정하는 이는 단 한 사람, 펀드매니저 권 전무만 그 권한을 갖고 있다. 리 대표는 “투자에서만큼은 민주주의가 통하지 않는다”며 “다수결로 갔을 때는 대부분이 실패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코리아펀드→장하성펀드→그다음은?
리 대표는 바로 이 팀원들과 ‘코리아펀드’부터 ‘장하성펀드’, 지금의 ‘메리츠코리아펀드’까지 그 역사를 함께해 왔다. 리 대표가 “지금까지 국내 금융 투자 업계에서 쌓아 온 발자취는 나 혼자가 아니라 팀원들이 같이 만들어 온 역사”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실제로 김 상무는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를 운용하며 팀에서 쌓은 노하우와 핵심 가치가 지금의 메리츠코리아펀드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는 지배 구조가 불투명해 주가가 저평가된 기업의 지분을 인수해 투명한 이사진을 구성하는 등 기업 가치를 높이도록 유도하는 펀드다. 당시 이 펀드는 태광그룹 계열사인 대한화섬 등의 지분을 확보하고 지배 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며 논란의 중심에 선 바 있다. 김 상무는 “해외 운용사가 국내 기업의 경영권에 지나치게 간섭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은 게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팀 내에서는 주식 투자에서 한국 기업 지배 구조의 중요성을 환기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리 대표는 “코리아펀드나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가 그렇듯이 향후에도 ‘남들이 가지 않은 길’에 도전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도 메리츠자산운용은 현재 향후 3~5개월 뒤쯤을 목표로 새로운 방식의 투자 상품을 개발 중이다. 김 상무는 “아직은 윤곽조차 잡히지 않은 상태여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면서도 “다만 다른 자산 운용사에서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주식을 운용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자산 운용 업계에서는 드물게 ‘팀플레이’를 통해 선전하고 있는 메리츠자산운용이 향후에도 ‘존 리 효과’를 이어 갈 수 있을지 주목되는 이유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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