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트렌드] ‘열린 혁신’ 오픈 이노베이션의 성공 조건

집단지성에서 돌파구 찾는 글로벌 기업…트렌드 센싱, 융·복합적 안목 갖춰야


구글 트렌드에서 검색어로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을 입력하면 오픈 이노베이션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높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게다가 한국은 세계에서 오픈 이노베이션을 가장 많이 검색한 국가로 나타난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미국 버클리대의 헨리 체스브로 교수가 2003년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The New Imperative for Creating and Profiting from Technology)’이라는 책을 통해 소개한 용어로, 기업이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의 아이디어를 이용해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글이 발표된 후 전 세계 학계를 비롯해 정부와 기업들의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여러 기업들은 오픈 이노베이션을 소프트웨어 관점에서 소스를 공개해 개발하는 방식으로만 생각하거나 연구·개발(R&D)에만 국한된 관점으로 해석하거나 아니면 막연하게 외부와의 협력 정도로 받아들이는 등 개념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용어 자체가 ‘열린 혁신’ 혹은 ‘개방형 혁신’이어서 그 의미가 광범위하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치 사슬 전반으로 확산되는 개방형 혁신
오픈 이노베이션은 사실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1960년대부터 미국에서는 협력 R&D, 공동 R&D, 리서치 스필오버(Spillover) 효과와 같은 연구들이 활발히 진행됐다. 이런 연구들을 바탕으로 체스브로 교수는 학계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한 용어를 사용해 개념을 정리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배경과 책의 제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초기의 오픈 이노베이션은 R&D와 기술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2006년에 발간된 ‘오픈 비즈니스 모델(Open Business Models: How to Thrive in the New Innovation Landscape)’에서는 그 개념이 기업의 사업 활동 전반으로 확장됐다.

결국 체스브로 교수는 연구·개발, 상업화에 이르는 기업의 가치 사슬 전반에서 외부와의 모든 형태의 혁신적 지식 교류 활동을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 활동에서 외부와 함께하는 어떤 혁신이라도 오픈 이노베이션이 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즉 부품 회사가 세트 회사의 요청으로 연구·개발해 납품하고 결과로 신제품이 출시된다면 이것도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신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외부 전문 마케팅 기관을 이용해 새로운 시장 전략을 만들어 낸다면 이것 역시 오픈 이노베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확장하면 특허 라이선싱, 공동 연구, 연구 용역, 아웃소싱, 조인트벤처, 인수·합병(M&A), 스핀오프 등도 모두 이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있다.

그렇다면 최근에 오픈 이노베이션이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글로벌 정보기술(IT)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업 내부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아이디어와 기술, 사업 모델들이 세계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잘 포착하고 평가하며 끌어들이거나 내보낼 수 있는 능력이 사업의 성패를 결정지을 수도 있게 됐다. 특히 한국 주요 기업들은 혁신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는 산업에 주로 포진해 있고 끊임없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만 하는 처지에 처해 있다. 이제는 더 이상 후발 주자(팔로워)가 아닌 창조자(크리에이터)의 역할이 필요해지고 있기 때문에 오픈 이노베이션에 대한 니즈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 사례의 공통점과 차이점
글로벌 기업들의 대표적인 오픈 이노베이션 사례들을 간단히 살펴보자.

▶P&G의 ‘Connect+Develop’
미국의 거대 소비재 기업인 P&G는 2000년 초에 재무적인 위기를 맞았고 주가가 폭락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2002년 새로운 최고경영자(CEO)에 취임한 앨런 조지 래플리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강조하며 “우리가 얻는 이노베이션 중 50%는 P&G 외부에서 가져오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P&G는 ‘커넥트+디벨로프(Connect+Develop)’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외부의 아이디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탄생한 제품들을 살펴보면 우선 프링글스의 과자 표면에 인쇄된 그림이 떠오른다. 과자 겉 표면에 먹을 수 있는 잉크를 이용해 그림이나 유머 등을 프린트해 보자는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이탈리아 볼로냐에 자리한 제과점의 기술을 받아들였다. 자칫 수년이 걸릴 뻔한 일을 바로 해결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예로는 옷감 손상을 적게 하면서 성능을 유지할 수 있는 세탁 세제 개발을 들 수 있다. P&G팀은 스웨덴의 룬드대와 공동으로 폴리머 소재 개발을 통해 타이드 토털 케어라는 제품을 출시할 수 있었다.


▶레고의 ‘쿠소’
플라스틱 블록 장난감 회사인 레고는 과거 매사추세츠공과대(MIT)와 7년에 걸쳐 공동 개발한 제품의 핵심 기술이 해커들에 의해 완전히 공개되는 사건을 겪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비디오 게임으로 흥미를 잃어 가던 레고 팬을 다시 끌어들이게 됐고 이를 통해 레고의 경영진은 외부 협력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지금도 ‘쿠소(Cuusoo)’라는 아이디어 소싱 사이트를 통해 전 세계 레고 팬들로부터 아이디어를 받아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IBM의 ‘이노베이션 잼’
IBM은 과거 대표적으로 ‘폐쇄형 혁신’을 추구했던 기업이었지만 2000년대 초부터 ‘이노베이션 잼(Innovation Jam)’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내·외부의 집단지성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오픈 이노베이션을 실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핵심 기술 분야까지도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공동 연구·개발하고 결과물에 대해 공동 특허를 얻는 방식으로 범위를 넓혀 가고 있다. 핵심적인 기술들은 거꾸로 외부 기업들에 팔거나 라이선스를 주어 외부 송출(Outflow) 형태의 오픈 이노베이션이 발생한다. 뉴욕 IBM중앙연구소의 한 임원은 “우리가 연간 개발하는 프로젝트 중 절반 가까이는 외부에서 들여온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GE의 ‘퀘스트’
제너럴일렉트릭(GE) 역시 전통적으로 내부 연구에 중점을 두는 기업이었지만 최근 외부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2012년부터 외부 스타트업이나 연구 기관을 이용해 기술을 소싱하고 쿼키(Quirky) 같은 인터넷 기반 오픈 플랫폼을 이용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자체적으로는 퀘스트(QUESTS)라는 프로그램을 운용하는데, 주제를 주고 솔루션을 공모하는 방식이다.


▶BASF의 산학 협동 연구
독일의 대표 화학 기업인 바스프(BASF) 역시 외부 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오픈 이노베이션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바스프는 대학 및 정부 출연 연구 기관들과 적극적인 파트너십을 맺고 기초 화학 분야의 연구 용역 및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주요 학교, 연구소들과 이미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올해 국내에서도 성균관대 자연과학대 내에 전자소재 R&D센터를 설립하고 40여 명의 연구진을 파견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전자 기업들과도 소재에 관한 아웃 플로 오픈 이노베이션을 추진하고 있다.


▶지멘스의 ‘테크노 웹’
지멘스는 에너지, 헬스 케어, 운송수단 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독일 기업이다. 지멘스 역시 과거 매우 보수적인 조직이었지만 2000년 이후 오픈 이노베이션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멘스는 IBM·GE의 방식과 조금 다른 ‘테크노 웹(Techno Web)’이란 내부 인트라넷을 통한 오픈 이노베이션을 진행하고 있다. 전 세계 180개국에 있는 직원들이 이 툴을 이용해 현재 겪고 있는 이슈들을 포스트하고 해결책을 공동 모색한다. 그 과정에서 직원들이 가지고 있는 외부 네트워크 역시 이용될 수 있다. 즉 최선의 솔루션을 위해 내부 혹은 외부의 협력을 얻는 방식이다.

이 밖에 글로벌 기업들의 다양한 오픈 이노베이션 사례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살펴보면, 영역별(단순 아이디어 공모 vs 핵심 기술 및 사업), 방법별(인 플로 vs 아웃 플로), 사업별(기존 사업 vs 신사업)로 오픈 이노베이션을 다양한 스펙트럼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본격적인 오픈 이노베이션을 실행하려면 오픈 이노베이션에 따르는 위험과 단점들에 대비한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사업별 노하우가 축적된 핵심 영역들을 구분해 보호해야 할 영역과 오픈할 영역 혹은 원칙 등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 있어야 한다.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자칫 중요한 지적·무형자산들이 외부로 흘러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폐쇄형 이노베이션(Closed Innovation)을 상당 기간 유지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오픈 역량을 갖추는 것부터 시작하라
둘째, 기술과 사업의 글로벌 트렌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떤 대학과 스타트업 혹은 기업들이 그 분야에서 가장 앞서 나가는지 등을 센싱(sensing)할 수 있는 기능이 반드시 필요하다. 외부의 가장 핫한 네트워크에의 적극 적인 참여, 경우에 따라서는 오픈 이노베이션 전담 조직 등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가능한 오픈 이노베이션의 영역을 넓힐 수 있고 가장 적합한 파트너에게 보다 효율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기술·사업에 대한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안목과 능력이 있어야 한다. 한국 기업들의 내부에도 많은 우수 인재들과 최고의 전문가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문성은 반대로 기존 사업에 매몰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신사업에 대한 가치 평가는 다소 보수적으로 흐르는 경향을 보일 수도 있다. 전문가적 시각뿐만 아니라 보다 융·복합적인 관점으로 통찰력 있게 볼 수 있는 안목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또한 필요하다면 적극적인 협력·인수 등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신속한 의사 결정 프로세스 혹은 권한 위임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특허 및 법률 전문 조직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외부 대행 기관을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글로벌 오픈 이노베이션을 추진할 때 각 국가의 법이 상이하기 때문에 계약상의 여러 조항들을 꼼꼼하게 분석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필요한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당장 해야 할 일은 트렌드를 따라 오픈 이노베이션을 몇 번 해보는 것보다 오픈할 기본적인 준비를 갖추는 게 우선일 것이다.


이진상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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