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_미국] 전쟁 중 골프…미국 대통령의 ‘담대한 휴가’

“국제 이슈 무관심” 공화당 맹공, 클린턴 전 장관도 오바마와 선 긋기


“전쟁 중에 최고 군통수권자가 휴가를 가다니….”

미군이 이라크의 수니파 반군 단체 ‘이슬람국가(IS)’에 대해 공습을 단행한 지 몇 시간 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주간의 휴가를 떠났다. 국가적인 재난이나 비상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대통령이 그 당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가 논란이 될 정도인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8월 9일 오전 백악관 잔디밭에서 공습 상황에 대한 짧은 기자회견을 마친 후 대기 중인 전용 헬기를 타고 가족들과 함께 매사추세츠 주 해안의 고급 휴양지 마서스 비니어드로 향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이 있었던 2012년을 제외하고 취임 후 이곳에서 매년 여름휴가를 보냈다. 공화당에서는 “군 최고사령관이 전쟁 중에 자리를 비워서 되겠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온라인 매체 허핑턴포스트는 “오바마 대통령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휴가를 중단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오바마는 휴가지에 도착하자마자 골프채를 잡았다. 백악관은 대통령의 ‘전쟁 중 골프’를 이례적으로 언론에 공개했다. 떳떳하게 휴가를 보내고 있다는 점을 애써 강조한 것이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대통령이 휴가를 변경할 계획이 없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럴 필요 없다. 통신 장비를 갖추고 있고 국가 안보 보좌관 등도 따라가기 때문에 군 최고사령관으로서 요구되는 결정을 충분히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의 다나 밀뱅크 칼럼니스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우크라이나 사태 등 국제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오바마 대통령은 이런 국제 이슈에 무관심한 것처럼 비쳐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부시 전 대통령도 못 말리는 골프광
오바마 대통령이 ‘담대한 휴가’를 즐기고 있는 가운데 한때 정치적 동지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오바마를 정면 비판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시사 잡지 애틀랜틱과의 인터뷰에서 “이슬람 급진 무장 세력이 발호하도록 만든 것은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정책의 실패”라고 비판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위대한 국가는 원칙을 수립하는 게 필요하다”며 “‘멍청한 짓은 하지 마(Don’t Do Stupid Stuff)’라는 (오바마의) 말은 원칙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DDSS’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처럼 무모한 군사행동을 자제하는 대신 국제분쟁 개입을 최소화하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신고립주의’ 정책이 담겨 있는 말이다. 클린턴 전 장관의 오바마 비판은 대권 행보의 일환으로 읽힌다. 인기가 바닥으로 추락한 오바마 대통령과 확실한 선 긋기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40%다. 현직 미 대통령으로서는 최악이다. 이런 가운데 전쟁 중 휴가라는 오바마 대통령의 배짱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사실 미 대통령이 국제 안보 위기 상황에서 휴가를 떠나는 건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 발생 이듬해인 2002년 8월 휴가 중에 골프장 1번 홀에서 이스라엘의 연쇄 자살 폭탄 테러 사건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각국이 테러 방지에 최선의 공조를 하고 있다. 자, 그러면 이제 내 드라이버 실력을 봐라”면서 골프를 강행했다. 골프광이었던 부시는 그러나 2003년 이라크 침공 후 골프를 중단했었다.


워싱턴 = 장진모 한국경제 특파원 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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