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우커 노믹스 왕서방을 잡아라] 홍통거리 점령한 요우커…면세점 북새통

한류 명소 많고 거리 공연도 인기, 중국인 부동산 매입도 급증


8월 5일 오후 홍대앞 사거리. 사고라도 난 것처럼 차들이 꼼짝하지 않는다. 평일 오후인 것을 감안하면 의아한 일이다. 마침 외국인 관광객을 태운 관광버스가 눈에 띈다. 대로변에 주차한 3대의 관광버스로 홍익대 정문으로 이어지는 길이 막힌 것이다. 차 앞 유리에 붙은 안내 표시를 보니 틀림없는 중국인 관광객(요우커)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홍대 정문까지 올라가는 짧은 시간 동안 요우커를 태운 대형 관광버스가 4~5대 더 지나갔다.

이는 홍대앞에서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화장품 가게 ‘토니모리’ 앞에 관광버스 1대가 멈춰 서자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요우커들이 가게 안으로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홍익대에 재학 중인 최민영(26) 씨는 “2년 전부터 홍대앞에서 30~40명씩 몰려다니는 중국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대로변의 화장품 가게인 토니모리와 홀리카홀리카에서 쇼핑을 끝내고 나온 요우커들이 가게 바로 옆 골목에서 시작되는 ‘홍통거리’를 향했다. ‘홍대로 통하는 거리’라는 뜻의 이 거리는 다양한 가게가 있는 관광 명소다. 홍통거리를 따라가니 100m 남짓한 거리에 잇츠스킨·더페이스샵·네이처리퍼블릭·클럽클리오·아리따움·에뛰드하우스 등 화장품 가게 6개가 들어서 있었다. 매장 유리창마다 중국어로 된 문구가 보였다. 판매하는 신제품을 중국어로 설명한 포스터들은 물론이고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등의 문구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액세서리 가게 ‘못된 고양이’는 간판 밑에 ‘한류 패션 액세서리 매장, 외국어 판매 가능’이라고 적어놓았다.


쇼핑뿐만 아니라 볼거리도 풍부
요우커들이 홍대앞을 좋아하는 이유는 중저가 화장품 매장 때문만은 아니다. 홍대앞 일대에는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에 나왔던 카페, ‘신사의 품격’에 나왔던 놀이터 등 유명 드라마의 촬영지와 연예 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 등 한류와 관련된 장소들이 밀집해 있다. 홍대앞 관광 명소 중 하나인 트릭아이미술관은 간판 자체에 ‘트릭아이 3D 미술관’이라는 뜻의 중국어를 적어 놓았다. 놀이터에서 열리는 프리마켓이나 길거리 공연 등의 볼거리도 요우커를 끌어들이는 매력이다.

지하철 홍대입구역에서 만난 린위안(21) 씨는 “한국 아이돌을 좋아해 친구들끼리 셋이서 놀러왔다”며 “아이돌이 광고하는 화장품을 여럿 구매했고 미술관에서 사진도 찍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하철을 타고 명동으로 갈 예정”이라며 “예전에는 명동부터 찾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제는 홍대앞을 먼저 온다”고 말했다.

홍대앞 사거리를 중심으로 요우커들의 성향이 다르다. 사거리에서 홍대 정문까지 개인이나 가족 단위의 요우커가 많고 망원동·성산동으로 이어지는 반대편 지역에는 단체 패키지 관광을 이용하는 요우커가 주로 찾는다.



성산동 방향으로 홍대앞 사거리를 건넌 뒤 대로변에 주차된 관광버스들을 따라가면 요우커를 대상으로 하는 면세점과 건강식품 매장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세워져 있는 버스만 약 20대, 차도에 오가는 버스까지 합하면 최소 30여 대였다. 인삼을 사러 간 요우커들을 기다리던 신정관광 관계자는 “4박 5일로 놀러온 단체 패키지 관광객을 맡고 있다”며 “시진핑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이후 요우커의 수가 굉장히 늘었다. 북한에 1명이 간다면 한국엔 9명꼴로 온다”고 말했다.

C 면세점이 자리한 곳은 원래 유동인구가 적은 조용한 동네인데 요우커들로 북새통이다. 출입문 앞에 선 경호원이 일정 수의 인원을 끊어 들여보냈다. C 면세점 바로 건너편에 자리한 편의점은 면세점을 찾는 요우커를 의식해 ‘외국인기념품점’이라는 문구를 중국어로 붙여 놓고 한국 기념품과 한류 스타의 브로마이드 등을 판매하고 있다. 편의점 직원은 “건너편 면세점에는 특별히 요우커가 많이 몰리는 시간대가 따로 없다”며 “오전 9시부터 문 닫는 오후 6시까지 끊임없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면세점 안에서는 약 231㎡(70평) 크기의 매장에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요우커가 화장품을 구매하고 있었다. 면세점은 2개 층으로 각 층마다 상품을 계산하는 카운터가 두 개씩이었다. 요우커는 6개에서 많게는 10개까지 패키지로 묶은 화장품을 대량으로 구매했다. 면세점 측에서는 많이 구매한 손님들에게 붉은색 캐리어를 증정하며 이 캐리어 역시 순식간에 동이 나 외부에서 트럭을 이용해 추가로 계속 실어 나르고 있었다.


연남동 화교들, 홍대앞 투자 늘려
C 면세점을 나서자 ‘한국고려인삼’이라고 적힌 빨갛고 거대한 간판이 보였다. 인삼을 사려는 요우커들이 대로변에 주차한 3대의 관광버스에서 우르르 내렸다. 가게 바로 옆 건물인 동진빌딩의 건물 관리자는 “오전 8시 30분부터 10시 30분에 가장 많은 요우커가 몰린다”며 “한국인이 아니라 화교가 건물을 사서 운영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기뿐만 아니라 근처의 C 면세점 등도 화교가 소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면세점 인근 상운부동산 관계자는 “이 부근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큰 매장들은 대부분이 화교가 땅을 사서 투자한 곳”이라고 말했다. 홍대 정문 앞 푸르지오부동산 관계자는 “8~9년 전부터 홍대앞 대로변에 한국인이 연 면세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며 “최근에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연남동·연희동 화교타운에 둥지를 틀고 있던 화교들이 부쩍 홍대앞으로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마포구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면세점이 44개인데 이 중 절반 이상인 24개가 2010년 이후 생겨났다. 부동산 중개업자들 사이에서는 이 24개 대부분이 화교의 소유로 알려져 있다.

홍대앞에 진출하는 중국인들의 규모는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정부가 지정한 여행사만 3인 이상의 중국 단체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도록 중국 전담 여행사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2014년 8월 4일 기준으로 전국 178개의 여행사가 중국 전담 여행사로 지정됐고 이 중 마포구에 53개(약 30%), 특히 홍대앞 지역인 서교동·동교동·상수동에 23개(약 13%)가 자리해 있다.

마포구의 집계에 따르면 중국인이 매입한 마포구의 토지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2년 3월 2410㎡(729평)에서 다음해 2864㎡(866평)로, 올 3월에는 5789㎡(1751평)로 급증했다.

김규정 우리투자증권 부동산 연구위원은 홍대앞에 진출하는 중국인에 대해 “미국과 달리 한국 부동산 시장은 아직 정체 상태”라며 “최근 홍대앞 부동산에 유입된 자금은 중국 본토 투자자들의 신규 투자보다 국내 화교들의 투자 확대로 보인다”고 말했다.

해외의 사례를 보면 중국 자본의 지역 상권 진출은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 우선 해당 지역의 건물을 사들인 뒤 중국인 대상 여행사를 운영하다가 기반이 다져지면 주변 건물을 추가 인수해 면세점을 운영하는 전략을 쓴다. 현재 홍대앞은 중국인 대상 면세점이 빠르게 늘어나는 확장 단계다. 향후 이 지역의 중국인 부동산 투자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이시경 인턴기자 ck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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