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사이트] ‘경기 회복’ 마지막 한 수, 금통위의 선택은

최경환 경제팀, 총수요 부양에 정책 총동원…이제 한국은행이 답할 차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9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 참석,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저성장-저물가-경상수지 과다 흑자’의 모습은 1991~2010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기간 중 나타난 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경상수지의 패턴과 유사하다. 부동산 등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자산시장 부진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또 급속한 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성장 잠재력이 감소하고 있는 점도 닮은꼴이다. 특히 우리가 주목할 점은 당시 일본 정책 당국자들이 경기 침체를 일시적 부진으로 인식, 과감하고 근본적인 정책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런 점을 철저히 분석해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새 경제팀의 경제 정책 방향’, 2014년 7월 24일)

이상은 최경환 부총리가 주도하는 새 경제팀의 한국 경제에 대한 인식이다. 이들은 한국 경제가 장기적으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같은 길을 갈 수 있다고 보고 과감하게 총수요를 부양하는 정책을 내놓았다. 그리고 부동산을 포함한 규제 완화를 통해 경제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통화정책이다. 8월 14일 개최될 회의에서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는 어떤 해법을 내놓을까.

지난 7월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방향’ 발표문을 보면 “앞으로 마이너스 국내총생산(GDP) 갭은 점차 축소될 것이나 그 속도는 완만할 것으로 예상된다”라는 문구가 있다. 여기서 ‘GDP 갭’이란 잠재와 실제 GDP의 차이다. 이로 미뤄 보면 한국은행이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있지 않지만 잠재성장률을 추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잠재성장률은 일반적으로 ‘한 나라 경제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 등으로 정의된다.

2013년 10월 국회 예산정책처가 추정한 한국 경제의 GDP 갭은 2009년부터 계속 비교적 큰 폭의 마이너스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잠재 능력 이하로 계속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생산함수 접근법을 통해 2013~2017년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3.5%로 추정하고 있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경제 위기 여파로 2009년 실질 GDP가 잠재 수준에서 아래로 3% 정도 벗어났다. 실질 GDP가 잠재 수준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경제가 잠재성장률보다 훨씬 더 높은 성장을 해야 한다. 앞으로도 실질 경제가 3%대 중반 정도 성장한다면 마이너스 GDP 갭은 계속 3% 정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국회 예산정책처 추정처럼 한국 경제가 잠재 수준 이하로 성장한다는 것은 경제 내에 수요 부족으로 디플레이션 압력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GDP 갭이 마이너스일 때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떨어졌다. 앞으로도 마이너스 갭이 존재하는 한 물가는 계속 안정될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GDP 갭 추정만 할 건가
소비나 수출 등 총수요가 증가할 때 디플레이션 압력은 해소된다. 수출은 글로벌 경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조절하기 힘들다. 더구나 한국 경제의 수출 의존도는 너무 높아졌다. 한국 GDP에서 재화와 서비스를 포함한 총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에 35%였지만 2012년에는 56%까지 올라갔다(2013년에는 54%로 낮아졌다). 디플레이션 압력과 함께 수출 중심의 불균형 성장을 해소하기 위해 내수, 특히 소비를 부양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일부 방법상의 문제는 있지만 새 경제팀의 정책 방향은 옳다고 볼 수 있다.

이제 한국은행이 한국 경제의 성장 경로를 명확하게 제시할 때다. 단기적으로 GDP 갭을 추정하는 것도 좋지만 중·장기적으로 한국 경제가 인플레이션으로 갈 것인지 디플레이션을 갈 것인지에 대해 분명하게 견해를 밝혀야 한다. 한국은행은 그만한 인재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한국은행법’ 제6조 제1항에 의거, 정부와 협의해 3년간 적용할 중기 물가 안정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2013~2015년 중 물가 안정 목표는(전년 동기 대비) 2.5~3.5%로 설정돼 있다.



그러나 실제 소비자물가의 최근 상승률은 목표치를 크게 밑돌고 있다. 2013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3%에 그쳤고 올 들어 7월까지도 1.4%에서 안정되고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한국 경제가 잠재 수준 이하로 성장하면서 디플레이션 압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물가가 오를 가능성이 낮다.


‘잃어버린 20년’ 반면교사의 타깃 될 수도
2.5~3.5%의 물가상승률 목표는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4% 이상일 때나 타당하다. 이제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3% 안팎으로 하락했다. 한국은행이 잠재성장률을 다시 추정하고 물가 목표를 하향 조정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물가 목표가 옳다고 판단되면 통화정책을 적극적으로 운용해 물가를 높여야 한다. 물가가 목표치 이상으로 올랐을 때 한국은행이 질책을 받는 것처럼 목표치 이하일 때도 질책을 받게 법을 개정해야 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한국 경제의 잠재 GDP와 함께 물가 목표를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다면 금리에 대한 답도 나온다. 적정 금리 수준은 추정 방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필자가 테일러 준칙을 응용해 본 결과 2014년 6월 현재 기준 금리의 적정 수준은 1.5% 정도로 나타났다. 테일러 준칙은 실제 GDP가 잠재 수준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와 함께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에서 어느 정도 이탈됐는지에 가중치를 두고 추정한다. 여기서 GDP 갭은 HP 필터(경기지수의 추세와 순환변동을 분리하는 호드릭 프레스콧 필터)를 통해서 구했고 물가 상승률 목표는 한국은행의 목표치 중간인 3%를 사용했다. 가중치는 같은 비중을 줬다. 한국은행은 2013년 5월부터 올해 7월까지 15개월 동안 기준 금리를 동결했는데, 필자가 추정한 바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한 번 이상 금리를 인하했어야 했다. 금리는 시차를 두고 각종 경제 변수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통화정책은 선제적이어야 한다. 그 답을 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 필자가 이 칼럼에서 강조한 것처럼 금융시장은 현명하다. 채권시장에서 금리가 앞으로 경제 상황을 미리 말해준다. 특히 장·단기 금리 차이가 경제성장률에 2분기 선행했고 상관계수도 0.61로 상당히 높았다. 지난 7월 장·단기 금리 차이가 마이너스로 돌아서 경기 둔화를 예고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7월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을 4월 예측치보다 각각 0.2% 포인트씩 낮은 3.8%와 4.0%로 하향 수정했다. 시장은 이것도 높다고 보고 있다. 국고채(10년) 수익률이 예상되는 경제성장률보다 낮은 3.0%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3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도 2.5%로 낮은 수준에서 머무르고 있다. 물론 최근 10년 사이에도 그해의 국고채(10년) 수익률이 실질 경제성장률보다 낮은 경우가 4번(2004년, 2006년, 2007년, 2010년)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 해에 경제성장률이 모든 경우에 낮아졌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2007년 5.5%였던 경제성장률이 2008년에는 2.8%로 낮아졌고 2010년과 2011년에도 경제성장률이 각각 6.5%에서 3.7%로 떨어졌다.

2008년부터 한국은행이 경제 전망을 대체로 낙관적으로 해 왔는데, 내년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앞에서 본 것처럼 정부는 “일본 정책 당국자들이 경기 침체를 일시적 부진으로 인식, 과감하고 근본적인 정책 대응을 하지 못했다. 이런 점을 철저히 분석해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 화살이 한국은행으로 향할까 두렵다.

한국은행이 한국 경제의 성장 능력과 이에 따른 물가 목표를 재평가해 단기적으로는 금리를 조정하고 중·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성장 경로를 제시할 때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solchan0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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