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CEO가 되다] ‘기업가 된 주부’…여성 창업 사상 최대

생계형 창업 넘어 기술 창업으로, 정부 지원도 봇물


“여성이 일해야 나라가 산다.” 한국 최초 여성 대통령의 여성 일자리 독려 방침에 따라 ‘여성이 일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여성 고용률은 5월 50.2%로 7년 동안 고대하던 ‘50%’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특히 50대 고용률이 두드러진다. 50~54세 여성 고용률(65.2%)은 작년 동기보다 1.9% 포인트 늘어 전 연령 가운데 증가 폭이 가장 컸다. 자녀들의 성장과 남편의 은퇴 시기에 맞춰 ‘일터로 돌아온 주부들’이다.

여성의 경제활동은 취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창업 시장에서도 주부들이 맹활약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상반기 여성의 법인 설립은 전년 동기 대비 12.7%(1090개) 증가한 9693개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분기별로 보면 2014년 1분기 4817개에서 2분기 4876개로 계속 성장 추세다.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어나면서 여성이 대표로 있는 신설 법인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연령대로 보면 어떨까. 산업연구원이 올해 여성 창업자 4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여성 창업자의 연령은 40대가 전체의 41.8%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30대 40.0%, 50대 10.3%, 20대 6.5%, 60대가 1.5%를 차지한다. 이들 중 ‘결혼해 자녀가 있다’고 응답한 이들이 전체의 78%로 상당수가 ‘주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생활 밀착형 아이디어에 강점
육아와 살림살이로 벅찬 주부들이 이처럼 세상 속으로 뛰어들고 있는 배경은 먼저 한국 사회 전반적으로 창업 시장이 커지면서 여성 창업도 덩달아 증가한 때문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기업들의 구조조정과 남편의 불안정한 일터가 주부들의 창업을 부추긴다. 남편을 대신해 일찍이 창업 교육을 받거나 은퇴 이후 부부가 함께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을 찾아 나선다.

또 하나의 배경은 창업 시장에서의 ‘주부 파워’다. 산업 흐름상 ‘창업에 강한 주부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양현봉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거 개발형 중후장대형 경제에서 이제는 지식 융합 사회로 넘어오면서 아름답고 감성적이고 부드럽고 창의적이고 섬세한 능력을 요구하는데 이런 부분에 여성들이 더 적합하다”며 “큰 트렌드가 변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들의 역할이 필요하고 그런 의미에서 여성 창업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단일 아이템 넘어 장기 로드맵 세워야
30~50대 주부들의 교육 수준이 높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백순복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서울지회 총무 부회장은 “이전 시대와 달리 공부도 많이 하고 유능한 엄마들이 많다. 마음만 먹으면 준비해 창업에 뛰어들 수 있는 여건이 잘 조성돼 있다”고 말했다. 또한 직장 경력이 있는 여성일수록 못다 핀 꿈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 백 부회장은 “보통 아이가 다섯 살쯤 되면 자기 성찰의 갈등 시기를 겪는다”며 “배운 여성들이 ‘내가 왜 집에 있어야 하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아 성찰을 통해 최고경영자(CEO)로 도전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주부들이 경쟁력을 갖는 것은 생활 밀착형 아이디어가 많기 때문이다. 살림이나 육아를 통해 생활 속에서 얻은 지혜, 소비자로서 느꼈던 불편함 등을 발전시켜 적은 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다. 직장에 매여 있는 이들에 비해 여유가 있기 때문에 차근차근 준비해 나갈 수 있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갈수록 중요해지는 디자인 감각에 있어서도 여성이 강점을 갖는 부분이 많다.

인프라 여건도 달라지고 있다. 정부의 여성 일자리 지원이 창업 시장으로 확대되면서 각종 사업이 활발하다. 이를 잘 활용하면 창업 아이디어 개발, 시제품 제작, 창업 초기 자본 등에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정지호 시스템앤린경영연구원 컨설팅본부장은 “정부와 각 시도 및 지자체 등에 창업 교육 프로그램이 활성화돼 있다”며 “창업 전 이러한 교육을 통해 시행착오를 줄이고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창업진흥원의 맞춤형 지원 사업은 여성에게 가점을 주고 있고 특허를 가지고 있다면 또한 가점을 받을 수 있다.

미사포를 제작하는 김명희 키리에 대표는 정부 지원을 적극 활용한 대표적 사례다. 아이들의 옷을 만드는 취미를 갖고 있던 그는 미사포라는 틈새시장을 공략해 중저가 선물용 세트로 국내시장에서 자리 잡았다.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던 그는 서울시창업센터에서 온라인 판매 방법에 대한 교육을 받고 올해부터 중국과 일본 등에 주얼리 판매를 시작했다. 이와 함께 서울시산업진흥원 사업에 선정돼 중국 장저우시에 온라인 사업 진출 또한 시작했다.

특히 최근 정부 지원 사업은 ‘기술 집약형 창업’, ‘지식 서비스형 창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과거 생계형 창업에 국한됐다면 최근에는 특허나 지식재산권 등을 활용한 창업을 독려한다. ‘나만의 노하우’를 정량화·표준화를 통해 진입 장벽을 구축하도록 교육한다. 단순한 현금 지원보다 교육과 멘토링 등을 통해 아이템을 발굴하고 정부 과제에 선정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정 본부장은 “현금 형태로 지원하는 것은 중소기업청의 창업 선도 대학 사업, 창업 맞춤형 지원 사업 등이 대표적”이라며 “이에 앞서 일반인 창업 아카데미를 수강한 이후 스스로 리스크 매니지먼트와 장기 로드맵, 시장 진입 계획을 포함한 사업 계획서를 꼭 써 보라”고 추천했다. 정부 지원과 관련된 내용은 창업넷( www.changupnet.go.kr)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성공하는 주부 창업자들에겐 어떤 공통 DNA가 있을까. 백 부회장은 ‘끈기와 뒷심’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단일 아이템으로 반짝 뜰 수는 있지만 거친 창업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열정과 인내심이 필요하고 이런 이들이 끝까지 남더라”고 말했다. 또한 주부 성공 창업의 대명사로 불리는 한경희생활과학의 한경희 대표와 같은 사례가 더 많이 나오기 위해서는 성공 사례를 더 많이 발굴하고 알리는 사회적 분위기도 조성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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