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_미국] 유럽 가세로 힘 얻은 오바마 ‘푸틴 정조준’
입력 2014-08-11 18:50:56
수정 2014-08-11 18:50:56
여객기 격추 후 서방 민심 돌아서…경제제재 압박 수위 높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신냉전이 아니다”고 말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의 대치 국면은 냉전을 방불케 하고 있다. 그동안 러시아 제재에 시늉만 해 오던 유럽연합(EU) 28개 회원국이 미국과 보조를 맞춰 경제제재에 동참하기로 했다. 네덜란드를 비롯한 수많은 유럽의 민간인을 태운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가 우크라이나의 친러시아 반군 세력의 미사일에 격추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유럽의 민심이 돌아섰기 때문이다. 서방과 러시아의 ‘총성 없는 전쟁’의 막이 올랐다.
미국과 EU가 이번에 새롭게 내놓은 경제제재는 국영은행·군수·에너지 기업을 겨냥한 것이다. 러시아의 대외무역은행(VTB)과 그 자회사 뱅크 오브 모스크바, 러시아농업은행 등 3개 은행이 미국이나 유럽의 자본시장에서 주식·채권 발행을 금지했다. 자금 조달을 차단한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에 대한 신규 무기 수출 금지, 원유 시추 및 군수 관련 장비의 수출 금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측근에 대한 자산 동결 등이 골자다. 탈냉전 이후 서방국가들이 러시아에 가한 가장 강력한 제재다.
로이터통신은 “냉전 이후 최고조로 치달은 서방과 러시아 간의 대치 상황이 새로운 국면에 진입하는 신호탄”이라고 풀이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 제재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신냉전으로 봐야 하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그건 아니다. 우크라이나 정부에 무기를 제공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러시아가 치러야 할 비용은 더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방의 제재는 러시아의 캐시카우인 원유 산업을 정조준했다. 러시아는 원유 시추를 서방 기업의 기술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 관련 기술의 이전을 막음으로써 러시아는 중·장기적으로 북극해와 심해의 원유 시추와 땅속 진흙퇴적암층의 셰일오일을 생산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될 전망이다.
러시아 국영은행 및 기업들의 자금 조달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블룸버그 추산에 따르면 러시아 기업의 달러 및 유로화 채권 발행 잔액은 1650억 달러에 이르는데 이 자금줄을 틀어막겠다는 것이다. 서방국가들은 푸틴 대통령이 당장 우크라이나에서 발을 빼지 않겠지만 제재의 영향이 가시화되면서 서서히 협상 테이블에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전문가들은 푸틴이 ‘굴복’할 가능성을 낮게 본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한 후 푸틴의 러시아 내 지지율(현재 80%)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푸틴으로서도 우크라이나의 친러시아 반군 세력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처지라는 얘기다.
주요국 “러시아에 추가 조치도 가능”
러시아가 계속 버티면 서방은 더 강한 제재에 나설 수밖에 없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날 “이번 조치는 불가피하다. 러시아의 태도에 따라 추가 조치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미국은 이란에 대한 제재처럼 러시아 기업의 달러 거래를 중단하는 조치는 내놓지 않았다. 서방의 제재에 대응해 러시아가 EU로 수출하는 천연가스관을 막기라도 한다면 글로벌 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게임은 지금부터”라는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워싱턴 = 장진모 한국경제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