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는 여름] 침묵과 사색으로 세상 바라보기

휴가 때 다시 읽는 피카르트 ‘침묵의 세계’와 소로 ‘숲 속의 생활’


막스 피카르트(Max Picard, 1888~1965년)는 ‘침묵의 세계’에서 이렇게 말한다.

“침묵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고 단순하게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침묵은 능동적인 것이고 독자적인 완전한 세계다. 침묵은 시작도 끝도 없는, 창조되지 않은 채 지속돼 온 존재다.”

가슴이 뜨끔하다. 우리는 말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TV와 라디오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 신문과 잡지에서 튀어나오는 글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댄다. 그러면서 정작 침묵하는 법은 모른다. 검색은 넘치지만 사색은 부족한 부박함의 원인 가운데 하나는 바로 침묵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은 말이 필요한 시대가 아니라 침묵이 필요한 시대다. 침묵은 단순한 말의 단절이 아니다. 쓸데없는 말의 감옥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나와 세상을 만나는 중요한 공간이다. 침묵 속에서 나를 비켜갈 수는 없다. 피카르트는 말은 더 이상 정신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다만 음향적 잡음으로만 존재한다고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말은 자신의 배후에 하나의 세계, 즉 침묵의 세계를 가질 뿐만 아니라 자기 곁에 또 하나의 세계, 즉 진리의 세계를 갖는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침묵을 잃은 우리는 자기 곁에 둬야 할 또 하나의 세계를 상실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자꾸만 소음에 불과한 소리들에 여전히 귀를 쫑긋 기울이고 있다.

침묵을 상실한 것은 말의 상실과 다르지 않다. 헛되고 삿된 말의 범람에서 우리는 헛되고 삿된 삶을 꾸려 간다. 사색은 바로 그런 침묵으로 자신을 회귀시키며 헛되고 삿된 것을 걸러낸다. 그러니 사색의 힘은 얼마나 대단하고 중요한가. 무의미한 소음에 불과한 말들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핏기 없는 회색의 얼굴로 살아갈 뿐이다. 피카르트의 경고를 기억해야 한다.

“오늘날 인간의 얼굴에는 어떠한 바다고 어떠한 산도 없다. 얼굴이 더 이상 그것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에게서 밀어내 버린다. 얼굴에는 더 이상 그런 것들을 위한 자리가 없다.”


숲 속에서의 사색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2년)는 목소리가 큰 사람도 아니었고 살아있을 때 크게 주목받지도 못했다.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토지 측량을 하기도 하고 가업인 연필 제조업에 종사하기도 했던 소로는 에머슨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삶과 생각에 대해 천착하면서 주옥같은 작품을 써냈다. 소로는 1845년 여름 월든 호수에 들어가 만 2년 2개월 동안 살았다. 땅의 소유주는 바로 에머슨이었다. 소로는 그 땅에 직접 아주 작은 통나무 오두막집을 지었다. 도끼로 나무를 베고 잘라 집을 짓는 데 쓴 돈은 모두 합해 28달러였다. 그곳에서 그는 모든 문명의 이기를 버리고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몸소 체험하면서 완전히 자연과 동화하는 삶을 살면서 책을 읽고 쓰고 산책하며 명상에 몰두했다. 1865년 그곳에서의 생활과 성찰을 담은 책 ‘숲 속의 생활(Walden, or Life in the Woods)’이 나온 것은 그 결실이었다.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 직면해 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소로는 책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비록 그가 월든 호수의 통나무집에서 지낸 시간은 2년 남짓에 불과했지만 그는 삶과 죽음 전체를 꿰는 성찰을 이어 갔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월든에서 세상과 담을 쌓고 살지는 않았다. 멕시코 전쟁을 반대하고 인두세 납부를 거부한 죄로 투옥당하는 일도 겪었다. 하지만 그는 그 경험을 토대로 ‘시민의 반항(1849년)’을 썼고 훗날 간디의 운동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소로는 왜 굳이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사는 이상한 일(?)을 벌였을까. 소로가 보기에 사람들은 집의 노예였고 재산의 노예였다. 또한 일의 노예였다. 그런데 150여 년이 넘은 지금 우리 또한 여전히 그러한 노예로 살고 있지 않은가. 인간의 멈추지 못하는 욕망은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그가 직접 그리고 최소한의 공간으로 집을 지은 것은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노예로서의 삶을 살지 않겠다는 선언이고 증명이었다. 그가 원하는 삶은 바로 자유인의 삶이었다. 그것은 비단 시간이 남아돌아 얻는 게 아니다. 또한 그냥 빈둥빈둥 시간만 보내는 삶이 아니다. 불필요한, 없어도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못하고 평생을 매달려 사는 미망들을 털어내고 자신에게 충실한 그런 삶이다. 소로는 ‘숲 속의 생활(흔히 월든이라고 부르기도 하는)’에서 이렇게 간결하게 말했다.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제발 바라건대, 여러분의 일을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줄일 것이며, 백 가지나 천 가지가 되도록 하지 말라. 백만 대신에 다섯이나 여섯까지만 셀 것이며, 계산은 엄지손톱에 할 수 있도록 하라.”

과연 우리는 어떤가. 끝없이 검색만 하면서 바쁘기만 할 뿐 실속도 내재화도 없는 정보의 홍수에서 허우적거리며 소화도 하지 못할 온갖 정보들을 서핑하고 이리저리 담기에만 바쁘지 않은가. 이런 삶에 대해 소로는 따끔하게 충고한다.

“밥벌이를 그대의 직업으로 삼지 말고 도락으로 삼으라. 대지를 즐기되 소유하려고 들지 말라. 진취성과 신념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이 지금 있는 곳에 머무르면서 농노처럼 인생을 보내는 것이다.”


일이 삶의 주인은 아니다
소로의 삶은 뜻밖에도 짧았다. 불과 45년의 시간이 그에게 허락된 시간의 전부였다. 우리는 흔히 그가 월든 호숫가에 정착하며 사색하고 저술한 ‘숲 속에서의 생활’ 때문에 그의 삶이 고립되고 정적인 것으로만 여기기 쉽다. 그러나 그의 첫째 책인 ‘강에서 보낸 철학과 사색의 시간’을 보면 사색이 꼭 조용한 곳에 틀어박혀 명상하거나 숲을 산책하는 것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그는 명상가이며 시인이고 사상가이기 이전에 탐험가요 모험가였다. 그의 삶 자체가 도도한 탐험이고 모험이었다.

누구나가 자기 삶의 주인이고 싶어 한다. 먹고 살아야 하는 까닭에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노동으로 제공하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노동은 또 자아를 실현하는 방식이고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향상시키는 근원이라는 점이 분명하다. 일을 통해 성취를 이루는 건 신성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일이 자신의 모든 것이 되고 그 일을 통한 평가가 자신의 삶의 척도가 될 때 자신은 일의 노예가 된다. 그 임계점은 어느 한순간에 온다. 그리고 거기에 도달하고 결국 붕괴될 때까지 임계점을 스스로 알 수 없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 분별이 명확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사색을 통해 이뤄진다. 내 삶의 강물은 어디로 흐르고 있는가. 그것을 과연 정보나 지식으로 알 수 있을까. 지금 우리에게 사색이 필요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조용하고 의연하게 삶과 세상을 보는 힘, 그것이 자기 삶과 세상을 바꾼다. 시끄럽고 요란한 건 그저 빈 수레일 뿐이다.


김경집 전 가톨릭대 교수·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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