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전기차 수도’된 오슬로…테슬라 택시도 등장

세금 제로·공해 제로, 파격 혜택으로 세계 자동차 기업 각축

기획 연재 제2 자동차 혁명의 최전선, 세계 ‘전기차 도시(EV City)’를 가다 ①



북유럽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자리 잡은 노르웨이는 유럽의 대표적인 부국이다. 인구 500만 명의 작은 소국이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0만 달러를 넘어 세계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살인적인 물가, 축복 받은 석유 자원, 피오르(침수된 빙식곡), 풍부한 전력 등이 오랫동안 노르웨이를 상징해 왔다면 최근 들어선 전기자동차가 주목받고 있다.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는 전 세계 ‘전기차의 수도’로 불릴 정도다. 2014년 5월 기준으로 노르웨이에서 운행 중인 전기차는 3만319대에 이르고, 그중 6181대가 인구 63만 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인 오슬로에 몰려 있다. 오슬로는 어떻게 세계 전기차의 수도가 됐을까.


노르웨이의 경제 발전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석유산업이다. 2012년 기준으로 노르웨이는 세계 13위의 석유 생산국이자 5위의 수출국이다. 천연가스는 세계 5위의 생산국이자 3위 수출국이다. 석유·가스 등 에너지 자원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노르웨이 GDP의 25%, 국가 재정수입의 33%를 차지할 정도다. 국가 재정은 석유에 의존하고 있지만 실제 전력 생산은 수력발전이 담당하는 것도 노르웨이의 특징이다. 피오르(fjord)로 유명한 나라답게 풍부한 수량과 산악 지형을 바탕으로 일찍부터 수력발전을 발전시켜 왔다. 현재 노르웨이는 세계 6위의 수력발전국으로, 생산하고 남은 전력을 이웃인 스웨덴과 덴마크 등에 수출할 정도로 풍부한 전력량을 자랑한다.

남아도는 전력은 전기차 대중화를 낳게 한 원동력이다. 오슬로시청에서 전기차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한스 카츠 씨는 “오슬로의 전기차 운행 대수가 작년 대비 올 1분기에만 28.3%나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오슬로시에 등록된 전기차는 5월 현재 6100대를 넘어섰다. 실제로 오슬로 도로 곳곳에 설치된 공공 충전기 주변에선 충전을 위해 플러그를 꽂아 놓은 차량을 찾아보는 게 어렵지 않다.


오슬로에 등록된 전기차만 6181대
전기차 보급에 꼭 필요한 인프라는 풍부한 전력량이다. 쓰고 남을 정도인 노르웨이의 전력이 전기차 보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당연하다. 이에 더해 노르웨이는 이미 1990년대 초부터 전기차 보급에 힘을 기울여 왔다. 배기가스에 따른 환경오염과 소음 공해 등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가 일으키는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 당국의 인식이 그 출발이었다. 특히 세계 최고의 복지를 자랑하는 나라답게 전기차 소유자에게 주어지는 파격적이고 다양한 세금 혜택은 시장 확대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찍이 1990년 전기차에 대한 수입세를 일시적으로 폐지한 게 그 시초로, 1996년 들어선 아예 영구 폐지됐다. 1996년에는 1년 주기로 부과되던 자동차세도 감면됐는데 2004년 이후부터는 10만 원도 안 되는 금액이 책정됐다. 2000년에는 법인 소속 전기차에 붙던 세금이 감면됐고 이듬해부터는 부가세도 면제됐다.



세금 외에도 전기차 이용자가 받을 수 있는 혜택은 다양하다. 1997년부터 고속도로 등 주요 간선도로의 통행료가 면제됐고 1999년에는 ‘EL’로 시작되는 전기차 전용 번호판을 도입했다. 이 번호판을 단 차량은 공공 충전기가 설치된 도로나 전기차 전용 주차장 등에 무료로 주차할 수 있다. 여느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끔찍한 교통난과 주차난을 겪고 있는 오슬로에서 무료 주차는 차량 소유자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이점이다. 2003년 들어선 전기차의 버스 전용차로 진입이 허용됐다. 얼마 전 월스트리트저널은 “전기차의 버스 전용차로 진입으로 오슬로의 버스 운전사들이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전기차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나타난 부작용이다.

충전기 등 공공 인프라도 전기차 보급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오슬로시 당국은 2008년부터 대대적인 공공 충전 인프라 확충에 힘을 쏟아 왔는데 현재 노르웨이 전체에 설치된 공공 충전기만 4500대에 이른다. 이 중 오슬로에 설치된 공공 충전기는 500여 대 정도로, 시 당국은 올해 말까지 900대 수준까지 늘릴 계획이다.

가정에서 전기차 한 대를 완전 충전하려면 한 달 평균 20크로네(3300원)가 들지만 공공 충전기에선 100% 무료다. 가정에서 드는 20크로네의 충전 비용도 노르웨이의 물가를 고려하면 거의 공짜나 다름없을 정도로 저렴한 수준이다. 오슬로시는 충전기 한 대당 매일 8크로네 정도의 유지비용을 대고 있다. 시 전체로 보면 하루에 4000크로네(약 66만6000원), 1년이면 146만 크로네(약 2억4300만 원)를 공공 충전 인프라에 투자하는 셈이다.




노르웨이 전기자동차협회가 2013년 말에 진행한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매달 500대 이상의 전기차가 신규 등록되고 있다. 2006년만 하더라도 노르웨이 전체에 등록된 전기차는 1654대에 불과했다. 더욱이 자국 기업이 만든 차량이 979대로 다수를 차지했고 해외에서 수입한 제품은 675대에 그쳐 그때까지 글로벌 기업들의 진출이 본격적으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공공 충전기 100% ‘공짜’
전기차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2011년 들어서다. 그해 전기차 누적 등록 대수는 5000대를 돌파(5387대)했고 수입산 차량이 3046대로 처음으로 노르웨이 국내산(2341대)을 앞질렀다. 2009년에 채 500개가 안 되던 공공 충전기도 2010년 들어선 2652개로 늘어났다. 충전 인프라 보급과 전기차 판매량은 정비례했다.

2012년부터는 해가 바뀔 때마다 전기차 보급이 거의 두 배 이상씩 늘고 있다. 2012년 누적 등록 대수는 9905대, 2013년에는 2만369대, 2014년에는 5월 현재 3만319대에 달한다. 전기차 보급에 관심이 많은 다른 나라나 직접 전기차 비즈니스에 뛰어들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이 노르웨이를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올 6월 현재 노르웨이 전역에 설치된 공공 충전기는 5359대에 달한다. 그중 1339대가 수도인 오슬로에 집중돼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망한 시장을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이 가만 놓아둘 리 없다. 한스 카츠 씨는 “세계의 모든 전기차 모델을 보고 싶다면 오슬로시의 전기차 전용 주차장을 찾으면 된다”고 말했다. 일례로 고가의 럭셔리 세단인 ‘테슬라’는 자국인 미국 시장에 이어 노르웨이가 세계에서 둘째로 큰 시장이다. 올 1분기에만 노르웨이에 신규 등록된 테슬라가 2603대에 이른다. 닛산의 ‘리프(Leaf, 2014년 1분기 등록 대수 3225대)’에 이어 시장점유율 2위다.

단순히 시장 규모만 비교해도 노르웨이에서 테슬라가 얼마나 인기인지 짐작할 수 있다. 테슬라 본사가 자리한 캘리포니아 주의 전체 인구는 4000만 명 수준인데 비해 노르웨이 전체 인구는 500만 명, 오슬로는 63만 명에 불과하다.

노르웨이 정부는 전기차 보급이 5만 대 수준에 이를 때까지 지금과 같은 각종 혜택을 유지할 계획이다. 현재의 보급 추세라면 내년 3월이면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 숫자가 기존 내연기관 차량의 수보다 많아져도 똑같은 혜택을 유지하겠느냐”는 질문에 한스 카츠 씨는 “모든 혜택을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향후에도 일반 차량에 비해 많은 인센티브를 부여한다는 것이 시 정책의 원칙”이라고 답했다.

유럽의 대표적인 부국답게 노르웨이의 가구당 자동차 보유 대수는 ‘2대 이상’인 경우가 85%에 달한다. 1대만 보유한 가구는 15%에 불과하며 19%의 가구에선 3대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노르웨이 전기차협회가 매년 실시하는 소비자 경험 조사에 따르면 ‘고등교육을 받고 수입이 많은 중년 가장들’이 전기차의 주요 고객이다. 이들은 넉넉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전기차를 기존의 내연기관 차량에 이은 ‘세컨드 카’로 활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전기차의 뛰어난 경제성 덕에 점차 통근용, 일과 후 활동, 휴가 등으로 전기차의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 추세다. 전기차를 구매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비용 절약’이 41%로 가장 많았고 ‘시간 절약’이라는 응답도 22%를 차지했다. 버스 전용차로 이용이나 무료 주차 같은 혜택 덕분이다. ‘환경 보존’을 위해 전기차를 구매했다는 응답도 29%에 달해 노르웨이의 높은 국민 의식 수준을 드러냈다.

오슬로를 찾은 방문객은 운이 좋다면 테슬라 택시를 타 볼 수도 있다. 노르웨이에는 모두 개인택시뿐인데, 현재 오슬로에서 테슬라 택시가 2대 운행 중이다.



인터뷰 | 오이빈트 우신 카보그 ‘버디 일렉트릭’ 상임고문
“버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전기차 기업”




현재 노르웨이에 등록된 전체 전기차 3만여 대 중 자국에서 생산된 차량은 2164대에 불과하다. 살인적 물가로 생산 단가와 비용이 비싸 자국 생산보다 해외 수입이 오히려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버디 일렉트릭(Buddy Electric)’은 몇 개 남지 않은 노르웨이 전기차 메이커로, 2009년 최신 모델인 M9을 선보이며 노르웨이산 전기차의 명맥을 잇고 있다. 오이빈트 우신 카보그 버디 일렉트릭 상임고문은 덴마크 기업인 버디가 노르웨이 기업으로 변신한 1999년 초대 사장을 맡았고 현재는 고문 및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버디 일렉트릭은 어떤 회사인지 궁금하다.
“처음에는 덴마크에서 ‘케베트(Kewet)’라는 이름으로 생산되던 차다. 1995년부터 노르웨이에서 수입하다가 경기 불황으로 파산한 회사를 1999년 우리가 인수했다. 2009년에 현재 모델인 M9을 생산했다. 그때 사명은 ‘퓨어 모빌리티(Pure Mobility)’였는데, 사세를 무리하게 확장하다가 결국 문을 닫았다. 당시 대주주 가운데 한 명이 회사를 인수해 현재의 ‘버디 일렉트릭’을 세웠다. 규모는 작지만 2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전기차 기업 중 하나다.”


오슬로 시내에서 버디를 보는 게 어렵지 않다.
“지금까지 노르웨이에서 생산된 버디는 1600대 정도다. 시장점유율 면에선 낮은 게 사실이지만, 16만 크로네(약 2650만 원)의 판매가로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이상적인 가격은 10만 크로네(약 1650만 원)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 정도면 노르웨이 중산층의 두 달 치 월급 정도다.”


버디의 타깃 고객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현재 버디는 고객의 주문이 있을 때만 생산하고 있다. 생산 단계가 8개로 매우 간단해 비교적 작은 공간과 인력으로도 주문 제작이 가능하다. 어차피 버디는 테슬라·닛산·BMW 같은 기업과 경쟁하는 기업은 아니다. 스쿠터나 전기자전거 이용자들을 우리 고객으로 끌어들이는 게 목표다.”


버디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버디는 2~3인승의 초소형 자동차다. 오슬로는 물론이고 서울·런던·뉴욕·베이징·도쿄 같은 대도시에 매우 적합한 차량이다. 무엇보다 작은 차체 덕분에 도심 주차에 유리하다. 배기가스도 전혀 없기 때문에 공해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한 번 완전 충전으로 120km를 달릴 수 있고 최고 속도는 시속 80km다.”


해외 수출 계획은 없나.
“앞서 얘기한 것처럼 노르웨이에선 10만 크로네의 가격을 맞추기 어렵다. 제작비용이 워낙 높기 때문이다. 또 노르웨이의 시장 자체가 워낙 작아 대량생산도 어렵다. 해결책은 해외 생산뿐인데, 현재 여러 방면으로 파트너를 찾고 있는 중이다. 재정·기술·마케팅 등 어떤 분야도 좋다. 우리는 버디 생산권 판매에도 관심이 많다. 안정된 가격의 ‘외국산 버디’를 노르웨이는 물론 스칸디나비아반도 전역, 나아가 글로벌 시장에 내놓는 게 목표다.”


최신 모델인 M9이 소개된 지 5년이 지났다. 새 모델 계획은 없나.
“비록 노르웨이 안에서 한정 생산되고 있지만 지속적인 연구·개발이 이어지고 있다. 유틸리티 차량인 플렉시밴(FlexiVan) 모델이 대표적이다. 짐을 실을 수 있는 적재함을 탑재한 모델이다. 이 밖에 컨버터블 등 목적에 맞는 여러 모델을 개발 중이다.”


오슬로(노르웨이)=글·사진 장진원 기자┃후원=한국언론진흥재단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