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책] 세계로 나가야 갑(甲)이 된다

글로벌 경영은 대재벌의 전유물이 아니다.
시골 나이트클럽 주인이 러시아 무용수를 영입하고 킹크랩을 수입하는 이때 넓은 세상에서 기회를 찾을 일이지 ‘상생’을 애걸해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정권마다 중소기업을 키운다며 외쳐대고 전담 부서에 경제 단체도 있는데 왜 ‘갑의 횡포와 을의 설움’은 사라지지 않을까. 목청 높이 외치던 ‘상생 협력’으로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아무도 모른다. 중소기업을 돕는다며 대기업에 가서 떵떵거리고 나랏돈 갖다 폼 잡고 쓴 못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 규모나 수준에 비해 몇몇 대기업들이 훌쩍 커버린 우리 경제의 구조를 생각해 보면 ‘대등한 갑과 을’은 애초부터 환상에 가깝다. 세계를 상대로 부품을 조달하는 삼성전자·현대자동차에 우리끼리는 조금 봐달라고 애원할 수도 없다. 더 나은 구매자도 없으니 ‘다른 데 가보겠다’고 버텨볼 수도 없다.

결국 중소기업 정책은 약자 편을 들어 스타 되는 로빈 후드 게임이 되고 그 속사정은 ‘내 체면도 있으니 성의 표시 좀 해 달라’는 또 다른 애원이 되기도 한다. 대기업 혼내 줄 칼자루를 얹으면 애원이 정치로 격상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니 국가가 도와야 한다면 세상에 더 어려운 사람은 무수히 많고 그 지원금은 사장 얼굴도 모르는 진짜 서민의 주머니에서 나간다.

대기업이 주도하는 우리 경제의 구조가 순식간에 바뀌지는 않을 테니 국내에서 우리끼리 상생 협력을 외쳐본들 ‘을의 설움’은 피할 수 없다. 중소기업이 억울하다고 대기업을 쪼개려 들 수도 없다면 답은 세계 무대로 나가는 것이다. 자동차 윈도 브러시를 만드는 회사를 생각해 보자. 상생 협력을 아무리 애원해 본들 완성차 업체도 월급 주고 빚 갚고 투자도 해야 하니 자기 살기 바쁘다. 하지만 소비자가 직접 찾는 제품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카센터에 가서라도 달 것이고 전국의 주유소와 마트들이 주문을 시작할 것이다. 세계시장으로 나가면 어떨까. 윈도 브러시 1000만 대 분량 파는 회사는 100만 대도 못 미치는 적자 완성차 업체가 부럽지 않다.

영안모자를 생각해 보자. 전문 매장은 고사하고 시장 노점에서나 모자를 팔던 시절, 세계시장으로 나가 최고의 전문 기업이 됐다. 국내 백화점에 애원한들 번듯한 자리에 모셔줬을 리 없고 정부가 전 국민 모자 쓰기 캠페인을 벌인 적도 없다(벌여 봐야 정치 게임 잘하는 분이 그 혜택은 다 누리겠지만). 뛰어난 기술이 있는 데도 알아보는 투자자가 없다면 아이디어 하나면 돈이 모이는 세계 금융시장으로 가면 된다. 좁아터진 국내 자본시장, 담보만 잡으려 드는 국내 은행을 탓한다고 돈이 생기지는 않는다.

능력 있는 중소기업이 세계를 상대로 기회를 만들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우선이다. 차세대 산업이 어떻다며 사업하는 사람 가르치려 들지 말고 순진한 기업인들이 영악한 해외 업체들이나 금융인들에게 단물만 뽑히지 않게 도우면 된다. 좁아진 세계, 정보가 많아진 세상에서 이제 중소기업들도 조금만 도와주면 과거 종합상사처럼 시장 개척과 해외 금융에 나설 수 있다. 인재와 경험이 없다고 한탄하기 전에 곳곳에 있는 전문가들과 함께하는 노력을 먼저 생각하면 된다(월급 몇 푼 주고 머슴으로 부리려 든 적은 없나 반성도 하면서).

글로벌 경영은 대재벌의 전유물이 아니다. 잘난 중역들이 회장님 앞에 영어 실력을 자랑하는 보여주기 사업은 더욱 아니다. 시골 나이트클럽 주인이 러시아 무용수를 영입하고 킹크랩을 수입하는 이때 넓은 세상에서 기회를 찾을 일이지 ‘상생’을 애걸해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1964년생.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대 경영학 석사. 하버드대 경영학 박사. 대우그룹, 대통령녹색성장위원회. 2002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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