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에세이] 수직에서 수평적 기업 문화로

근로자들을 이끄는 내면적 동인은 희생과 물질적 요소가 아니라
개인의 권리와 행복 실현이라는 것을 기업들이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기령 타워스왓슨코리아 사장

1962년생. 고려대 교육학과 졸업. 뉴욕 버펄로주립대 교육심리학 석사·박사. 머서·헤이그룹·에이온컨설팅 대표. 2012년 타워스왓슨코리아 사장(현).


최근 연이어 터진 대형 참사로 슬픔에 빠진 한국 사회를 보면서 자랑스럽게만 여겼던 한국의 경제성장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한국 사회는 6·25전쟁 이후 지난 50년간 서러움과 가난이 원동력이 돼 하루빨리 강해져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을 지배해 왔다. 그리고 이로 인해 개인의 권리까지 돌아볼 여유를 갖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글로벌 시대를 맞이하며 ‘웰빙’, ‘안전’, ‘행복’ 등이 주요 어젠다로 떠오르면서 더 이상 21세기 한국은 ‘희생’이 아닌 ‘국민 행복’에 대해 고민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왔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우리 삶의 터전인 ‘일터’에서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우리의 일터를 이끌어 가는 구성원, 즉 직장인들이 느끼는 서러움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근로자 10명 중 4명이 하루 1시간 이상 야근을 한다고 응답했다. 주요 사유로 상사 또는 사회 분위기를 언급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세계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도 열악한 한국 근로자의 환경에 대한 평가는 별다를 게 없다. 2012년 기준으로 한국 근로자의 연간 근로시간은 2092 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420시간이나 많았고 2013년에 발표된 행복지수는 34개 가입 국가 중 33위를 기록했다. 이렇게 직장 상사 혹은 동료의 눈치를 살피다가 매년 수백 시간을 허비하는 ‘직딩’들의 행복지수는 매년 떨어지는 추세고 업무 효율성 또한 이에 비례해 저하되고 있다.

한국의 야근 문화도 결국 수직적 기업 문화의 부산물이다. 수직적 기업 문화는 고도성장기에는 효과적으로 작동했을지 모르지만 ‘혁신’과 ‘창의’가 지속 가능한 기업 성장의 발판이 되고 있는 이제는 새로운 기업 문화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한다. 이에 ‘상사’라는 개념을 아예 없애버린 고어의 사례를 눈여겨볼만하다. 아웃도어 기능성 소재인 ‘고어텍스’로 널리 알려진 고어의 창립자 빌 고어는 50년 전 자신의 집 지하실에서 ‘고어와 동료들(W.L. Gore & Associates)’을 설립했다.

고어에는 상사와 부하가 아닌 오로지 ‘동료들(associates)’만이 존재, 어떠한 직위도 서열도 없으며 최고경영자(CEO)를 선출하는 이사회의 결정 또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문 조사를 토대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고어의 수평적 기업 문화는 직원 개개인의 참여를 독려하고 창의성을 자극해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스가 선정한 ‘세상을 바꾼 101가지 발명품’ 중 하나로 선정됐던 고어텍스를 개발하는 근간이 되기도 했다.

그동안 하나의 관행으로 굳어진 한국의 수직적 기업 문화는 근로자들의 삶의 질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21세기 한국의 창조적 탈바꿈을 둔화시킨 주요 요인 중 하나다. 그러나 다행히 고어와 같은 세계에서 인정받은 성공적 기업 문화를 창조 경제 시대의 혁신 모델로 삼고 배우려는 국내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어 반갑다. 근로자들을 이끄는 내면적 동인은 희생과 물질적 요소가 아니라 개인의 권리와 행복 실현이라는 것을 기업들이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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