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의 눈물] 정체된 경제·거래대금 급감 ‘이중고’

수익 중 위탁매매 수수료 비중 40% 넘어…안정적 성장 어려워


금융 투자 업계가 활력을 잃었다. 주가는 높은데 주식거래량도, 펀드 투자 잔액도 감소하며 수익 기반이 취약해졌다. 적자를 내는 증권사들이 무더기로 늘어 흑자를 낸 증권사가 뉴스가 될 정도다. 잘나가던 금융 투자 업계가 왜 이 지경이 됐을까.

거시적 측면에서는 정체된 경제성장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거시경제가 불안정해 투자 심리가 위축되면서 투자자들이 떠났기 때문이다. 주거비와 교육비 등 의무성 지출이 늘어 주식이나 펀드로 흘러들어갈 수 있는 자금 여력이 줄어들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또한 고령화 진행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들이 위험 투자보다 안전 투자로 자금을 돌리고 있다.

이는 금융 투자 업계의 수익 기반을 흔들어 놓았다. 2011년 하루 평균 7조 원 하던 주식거래 대금은 2013년 4조 원이 채 되지 않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자산 운용사도 어려운 상황인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 3월 말 기준으로 전체 자산 운용사의 운용 자산 중 펀드 수탁액 비중은 53.4%로 전년 말 대비 0.6% 포인트 감소했다. 올해 1분기 전체 자산 운용사의 영업수익은 3833억 원으로 전 분기 대비 450억 원(10.5%)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10년째 지속되고 있는 수수료 인하 경쟁
전문가들은 금융 투자 업계가 위기에 몰리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외부보다 내부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먼저 수익 구조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증권사는 ‘위탁매매 수수료’ 수익에 지나치게 의존해 위기를 부추겼다는 평가다. 증권사들의 수익 구조 중 위탁매매 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40%가 넘는 상황에서 거래 대금 급감이 실적 악화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실제로 2013년 증권사 62개 가운데 45%인 28개가 적자를 기록했다. 자산 운용사 역시 펀드 수탁액이 줄어들면서 운용 수수료 수입이 줄어들었다. 투자자가 판매(증권사)·운용사에 내야 하는 총비용은 크게 가입 또는 해약 때 한 차례 내는 ‘판매 수수료’와 주기적으로 내는 ‘보수(판매·운용·수탁 보수의 합계)’ 두 가지가 있다. 기존 오프라인에서 파는 주식형 펀드는 평균 판매 보수(0.89%)를 포함한 총보수(1.4%)에 판매 수수료(선취형 0.99%)까지 합치면 원금에 수익금까지 합친 돈의 2.4%를 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그나마 수익을 창출해 내던 증권사의 위탁매매 수수료가 깎이고 있다는 점이다. 10년째 지속되고 있는 ‘수수료 인하 경쟁’이다. 증권사가 1990년 22개에서 2014년 62개까지 늘어나 과당경쟁이 심해지며 나타난 단기 성과주의의 폐해라고 볼 수 있다. 증시 침체로 주식거래가 최악인 현 상황에서 무차별적인 인하 경쟁은 증권가를 더욱 위태롭게 했다. 전문가들은 투자은행(IB)과 자산 운용 업계까지 출혈경쟁의 소용돌이에 말려들어 금융 투자 업계 전체가 황폐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에 합당한 수수료를 받아야 하는데 업계 자체적으로 특색 있는 서비스를 하지 못해 수수료 덤핑으로 경쟁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 연구위원은 “위탁매매 중심으로 영업하고 있는 국내 증권사들은 위탁매매 수수료 수익의 변동성이 매우 심한 상황에서 안정적인 수익성을 추구하기 어렵다”며 “더욱이 위탁매매 부문이 향후 크게 확대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현재의 위탁매매 중심의 증권사 수익 구조가 가지는 비효율적인 면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장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는데 증권사는 여전히 옛날 옷을 입고 있다”며 “지금 증권업들은 그저 사업 구조를 유통 기반으로만 생각하고 있다. 위탁매매 수수료 경쟁에는 익숙하지만 전략적 사고가 부족하다는 게 문제다”고 꼬집었다.

과당경쟁은 또 다른 문제들을 낳았다. 증권사가 수수료를 벌기 위해 간혹 투자자에게 주식 매매를 유도하는 사례도 있다. 수수료 수익은 영업 직원이나 지점의 실적으로 인정돼 성과급이 지급되기 때문에 직원들이 위탁매매 영업에 매달리는 경우가 있다. 더 많은 성과급을 받기 위해 고객의 투자수익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매매까지 권유하는 일도 벌어졌다.

주진형 한화투자증권 사장은 지난 5월 자사 홈페이지에 ‘반성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주 사장은 “오래전부터 증권사가 고객(투자자)보다 회사와 직원의 이익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결국 고객의 신뢰를 잃고 증권업의 위기를 초래했다. 수수료를 더 받기 위해 잦은 주식 매매를 유도하고 높은 수수료를 받기 위해 펀드 가입을 권유하기도 했다. 심하게 말해 수수료만을 위한 장사를 했다는 비난을 받아도 떳떳하게 변명하기가 궁색할 정도였다”고 고백하며 성과 위주의 영업 방식을 탈피해 고객에 중심을 두겠다고 다짐했다.


금융시장 이해 부족한 정부도 발목 잡아
금융 투자 업계의 지배 구조도 위기의 원인으로 거론된다. 금융지주나 대기업에 소속된 금융사들이 경영 독립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금융지주나 대기업 계열 금융사들은 독자적인 생존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사고만 안 치면 다행’이라는 소극적인 사고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윤석현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제조업에 익숙한 대기업들은 정형화되지 않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금융 투자업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며 “그러다 보니 금융 계열사를 또 다른 핵심 기업으로 키우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금융지주 소속 금융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금융지주의 핵심은 대부분이 은행이기 때문에 증권사나 운용사가 상대적으로 소외된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경제학자는 “대기업 중에는 여전히 금융 계열사를 ‘사금고’로 여겨 성장보다 그저 조용히 있을 것을 주문할 때가 적지 않다”며 “대기업 계열 금융사는 큰 수익을 내지 못해도 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리더십 부재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정유신 한국벤처투자 대표는 “기업가 정신을 가진 금융사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장을 추구하며 특화된 수익 모델을 찾는 곳이 적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런 위기에는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리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증권사 부사장은 최고경영자(CEO)의 단명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그는 “해외 투자는 기본적으로 7~8년을 두고 전략 실행 계획을 세우는데, CEO가 3년 만에 바뀐다”며 “재임 기간에 자신이 혜택을 보지 못하는데 누가 나서 혁신을 주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금융 당국 역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 업계 전문가는 “금융 당국자들이 잦은 부서 이동으로 금융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시장에 군림하려고 들기 때문에 소통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윤석현 교수는 “문제가 터지기 전에 싹부터 잘라 놓는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증권사 임원은 “금융 소비자들이 주식·펀드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갖고 있지 않다 보니 투자 가치와 활용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며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는 초기에 겪는 불가피한 문제지만 하루빨리 제대로 된 경제 교육이 이뤄져 올바른 투자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생존을 위한 금융 투자 업계 안팎의 필사적인 노력, ‘줄탁동기’의 지혜가 절실한 때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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