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바람막이 역할 해온 캔터 공화당 원내 대표 신참에 참패
지난 6월 11일(현지 시간) 밤 미국 정치 1번지 워싱턴 D.C.에 ‘강진’이 발생했다.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의 2인자이자 7선의 중진 의원이 당내 예비 경선(프라이머리)에서 무명의 후보에게 참패하는 미 정치 역사상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다. 에릭 캔터(51) 공화당 원내 대표가 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버지니아 제7선거구에서 막상 뚜껑을 열자 랜돌프-메이컨대 경제학과 교수인 데이비드 브랫(49) 후보가 55.5%를 얻어 44.5%에 그친 캔터 원내 대표를 11% 포인트의 큰 표차로 이겼다. 캔터 원내 대표는 ‘예비 경선 첫 탈락 하원 원내 대표’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패배를 인정한 그는 내달 초 원내 대표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선거 자금만 봐도 큰 이변이었다. 정치 신예 브랫 후보가 20만 달러를 모금한 데 그쳤지만 캔터 원내 대표는 540만 달러를 모았다. 4~5월에만 100만 달러를 지출할 정도로 자금력을 과시했다.
정치 분석가들은 캔터 원내 대표가 차기 하원 의장을 노리면서 전국적 인지도를 높이는 데 집중한 때문에 지난 몇 년간 지역구 관리를 소홀히 한 것이 패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브랫 후보가 강경 보수파인 ‘티파티’ 세력의 지원을 받았다는 점에서 캔터 원내 대표가 ‘선명성 경쟁’에서 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시 말해 덜 보수적이었다는 게 주된 패인이라는 것이다. 캔터 원내 대표는 지난해 국가 부채 한도 증액 문제를 놓고 공화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 및 민주당이 극한 대치를 할 때 양측의 가교 역할을 하며 타협을 이끌어 냈다. 또 1100만 명의 불법체류자를 구제하기 위한 이민법 개혁 이슈에서도 민주당 측에 동조하는 입장을 보여 왔다. 티파티 후원을 받은 브랫 후보는 선거 기간 동안 “캔터 원내 대표가 불법 이민자 사면의 최고 치어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공화당 극우 티파티 부활하나
캔터 원내 대표의 패배로 공화당은 대혼란에 빠졌다. 선명성 경쟁이 가열되면서 오히려 중간선거에서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민개혁법 등 공화당 내 주류 세력과 강경파인 ‘티파티’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치 현안에서 공화당이 더 강경 쪽으로 기울어 결과적으로 본선 무대에서 표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캔터 원내 대표의 패배는 금융권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친월스트리트 성향인 캔터 원내 대표의 낙마로 정치권의 바람막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캔터 원내 대표는 월가에서 금융시장을 가장 잘 이해하는 정치인으로 꼽힌다.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출신으로 당내 반대를 무릅쓰고 금융권의 이익을 가장 많이 대변해 왔다는 평을 받는다. 예컨대 사모 펀드 매니저들에게 높은 소득세율을 부과하는 법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 왔다. 그의 부인은 한때 골드만삭스에 근무했다. 금융계 인사들은 이런 인연으로 크고 작은 문제가 터질 때마다 늘 캔터 원내 대표를 찾았다. 그는 또 월가에서 가장 많은 기부를 받은 정치인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이번 선거에서만 140만 달러를 받았다. 브랫 후보는 선거 기간 내내 “캔터 원내 대표는 월가와 결탁한 기득권 세력”이라고 공격했다. 결과적으로 과도한 친금융권 성향도 패배 이유 가운데 하나였던 셈이다.
워싱턴 = 장진모 한국경제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