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AK 주식 사들이는 애경家 맏며느리

채형석 부회장 부인 홍미경 씨, 아트센터 접고 본격 경영 나서나


장영신(78) 애경그룹 회장의 맏며느리 홍미경(52) 씨가 지난 5월에도 어김없이 AK홀딩스의 주식을 샀다. 홍 씨는 채형석(54) 애경그룹 총괄 부회장의 부인이다. 그는 작년 10월 처음으로 애경그룹의 지주사인 AK홀딩스의 주식을 사들여 주주 명부에 이름을 올리고 난 뒤 8개월째 주식 쇼핑 중이다. 애경그룹 계열사인 제주항공의 실적 개선 등으로 AK홀딩스의 주가가 고공 행진하고 있어 홍 씨의 꾸준한 주식 매입이 예사롭지 않다. 특히 홍 씨는 그동안 경영 일선에 모습을 보이지 않고 예술 사업에만 집중해 왔던 터라 그의 행보에 더욱 이목이 집중된다.


AK에스앤디, 사업 목적에 예술 사업 추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홍 씨는 5월 27일 AK홀딩스 주식 114주를 샀다. 당일 종가(6만2900원) 기준으로 717만 원어치다. 이에 따라 홍 씨의 AK홀딩스 보유 주식은 총 1564주, 매수 금액은 약 1억1560만 원에 이른다. 홍 씨가 주식을 사는 것에 대해 금융 투자 업계에서는 “주식 매입을 통해 남편인 채 부회장에게 힘을 실어 주려는 것 아니냐”고 보고 있다. AK홀딩스는 지주사 전환을 통해 2세 경영이 본격화되고 있는 상황으로, 채 부회장의 지분율은 작년 9월 그룹이 지주사로 전환되면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현재 채 부회장의 AK홀딩스 지분율은 17.37%로, 모친인 장 회장의 지분율 9.27%보다 훨씬 높다. 업계에서는 “그룹 내 영향력을 확고히 하고 있는 채 부회장이 조만간 회장직에 오를 것으로 내다보는 만큼 홍 씨가 힘을 보태 내조 경영을 펼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애경그룹 측은 홍 씨의 주식 매입에 대해 ‘은행 적금’과 같은 개념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한 달에 300만~400만 원에 불과한 금액으로 주식을 매입하고 있는데, 이를 그룹 경영과 연관 짓기는 부족하다. 일반인들도 이 정도 투자는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설명이다. 박중선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홍 씨의 지분율이 0.01%로 워낙 소량이어서 내조 차원 외에 더 큰 그림을 그리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단순 내조에서 나아가 홍 씨가 직접 경영에 참여하려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홍 씨의 행보를 두고 그룹 경영에 참여하기 위한 채비를 서두르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말이 돌게 된 계기는 작년 주주총회에서 발표한 사업 계획이 발단이 됐다. 애경그룹의 백화점 사업을 담당하는 유통 계열사인 AK에스앤디는 2013년 3월 28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사업 목적에 ‘예술품 및 골동품 소매업’을 추가했다. 업계에선 AK백화점 사업을 맡고 있는 AK에스앤디가 예술 사업을 추가하면서 그룹의 미술 사업에 상당 부분 관여하고 있는 홍 씨가 경영에 참여하지 않겠느냐는 해석이 나왔다. 성균관대 미술교육과 출신인 홍 씨는 ‘몽인아트센터’를 운영해 왔다. 애경그룹 측은 “AK에스앤디는 홍 씨가 지분을 가지고 있는 AK홀딩스와 법인이 다르므로 경영 참여로 연관 짓는 것은 무리”라고 못 박았다.



그러나 애경그룹의 크고 작은 행사나 그룹 관련 사업 준비 작업에 홍 씨가 모습을 보인 정황이 포착되고 홍 씨가 운영하던 ‘몽인아트센터’도 폐관됨에 따라 그녀의 경영 참여설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홍 씨는 ‘몽인아트센터 관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난 6월 3일 몽인아트센터가 있는 삼청동으로 찾아가 본 결과 해당 갤러리는 수년 전 폐관된 것으로 확인됐다.

2007년 5월 개관된 몽인아트센터는 1970년 작고한 채몽인 애경그룹 창업자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아트센터의 의미가 남다른 만큼 홍 씨는 개관 당시 “한국 미술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운영 포부를 밝혔지만 결국 4년 만에 문을 닫았다. 비슷한 시기에 문을 연 ‘몽인아트스튜디오’도 현재 운영이 유야무야된 상태다. 몽인아트스튜디오는 신인 작가 육성 공간으로, 2000년 초까지 장영신 회장이 살던 신당동 자택을 활용해 운영할 만큼 미술인 육성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관장 맡던 몽인아트센터 수년 전 폐관
한 업계 관계자는 “홍 씨는 개관 3년 전부터 해당 부동산을 매입하고 건축가 조병수 씨에게 설계를 맡기는 등 아트센터에 굉장한 애정을 보였다. 운영 동안에도 꽤 좋은 전시를 한 달에 네 번은 열었는데, 2011년부터 갑자기 활동이 줄더니 조용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애경그룹 측은 이에 대해 “폐관은 맞지만 이유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몽인아트센터가 있던 삼청동 부지에는 현재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가 들어서 있다. 등기부등본 확인 결과 현재 부동산 소유자는 채형석 부회장으로 확인됐으며 해당 커피 브랜드에게 전세를 준 상태다.

홍 씨의 모습은 청담동 일대에서도 자주 목격됐다. 2012년 신세계와 삼성가에서 한창 청담동 일대 부지 매입에 열을 올릴 때다. 부동산 업계의 한 고위 임원은 “애경 큰며느리(홍 씨)가 청담동 일대 부동산을 샅샅이 뒤지고 다닌다는 말이 한동안 돌았다”고 전했다.

강남 일대 부동산 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다수의 업체 관계자들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실제 그는 부동산 개발 담당 이사라는 사람과 함께 청담동 일대 물건을 보고 다녔다고 한다. “부동산의 용도는 근린생활시설이며 넓은 곳을 찾았고 주택가라도 좋다고 했지만 당시만 해도 가격·위치 등 몇 가지 조건이 맞지 않아 그해 매매가 이뤄진 것은 없다”는 게 그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하지만 이듬해인 2013년 홍 씨가 둘러본 건물 중 한 곳에 편집숍 ‘쿤’이 들어섰다. 쿤은 애경그룹의 백화점 사업부가 패션 사업 진출을 위해 2011년 7월 인수한 편집매장이다. 해당 숍은 청담동에 있으며 전세로 입주한 상태다.

한 바자에서도 홍 씨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애경그룹의 대외 행사에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홍 씨는 작년 10월 삼성동에서 열린 ‘2013 적십자 바자’에 등장했다. AK플라자 판매 부스에 홍 씨가 유니폼을 입고 나타나 손님맞이를 하는 등 바자 활동에 직접 나섰다.

행사에 참여한 AK플라자 백화점 관계자는 “홍미경 고문이 직접 방문해 현장 분위기를 많이 띄웠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홍 씨는 현재 AK플라자 문화아카데미 고문을 맡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아트센터를 폐관한 것은 그가 갖춘 능력을 그룹 내 필요한 부문에 집중 활용하기 위한 모습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자신의 전공을 살려 경영 일부분에 참여하는 것이지 경영권에 욕심을 내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관측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애경가 그룹은 가족 간 우애가 좋기로 소문난 집안이다. 가족 경영이 애경의 힘”이라고 강조하며 “채형석 부회장의 동생인 채동석 부회장의 아내 이정은 씨 역시 외식 사업을 했던 경험을 살려 외부 일을 접고 애경그룹의 외식 사업에 투입된 적이 있다. 홍 씨도 주특기를 살려 경영에 투입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채동석(50) 애경그룹 유통·부동산개발 부문 부회장의 아내 이정은(50) 씨는 외식 사업으로 사업 수완을 인정받아 작년 3월 애경그룹 유통·부동산개발 부문의 크리에이티브 전략실장으로 발령이 났다. 그는 유통 부문의 디자인 전략을 담당하며 그룹의 경영에 본격 참여하고 있다. 홍 씨의 향후 행보가 더욱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돋보기
주식 쇼핑 나선 재계의 며느리들
‘보이지 않는 손’처럼 조용히 장바구니에 주식을 담아 경영 내조에 나서는 며느리들이 늘고 있다. 어느 집안의 누가 치맛바람을 휘날리고 있을까. LG그룹 명예회장의 막내딸이자 고 최화식 깨끗한나라 창업자의 며느리인 구미정 씨는 지난해 깨끗한나라 주식 2만2580주를 매입해 지분율을 7.52%로 높였다. 구 씨의 남편 최병민 깨끗한나라 회장은 2009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 꾸준히 지분을 확대하고 있는데 구 씨의 이번 주식 매입은 최 회장에게 힘을 보태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의 며느리인 홍지윤·김희준 씨도 올 1월까지 주식시장을 빈번하게 오갔다. 두 며느리는 2012년 8월 임 회장으로부터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의 주식을 증여받은 후 주식 매매, 무상 신주 취득 등을 통해 지분 변동 공시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2월 현재 각각 한미사이언스 주식 60만2122주(지분율 1.10%)를 보유하고 있다. 두산그룹 박용곤 명예회장의 맏며느리 김소영 씨는 최근 두산중공업 1000주, 두산인프라코어 3000주, 두산건설 1만 주 등을 상속받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며느리들의 주식 보유는 형제 간 승계 구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웬만한 경영 내조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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