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트렌드] 잡스의 창조 신화에 발목 잡힌 애플

신제품 공개 때마다 쏟아지는 실망감…‘파괴적 혁신’에 대한 환상이 문제 아닐까

<YONHAP PHOTO-0430> Steve Jobs, chief executive officer of Apple Inc., talks about the iMovie application for the iPhone 4 during his keynote address at the Apple Worldwide Developers Conference (WWDC) in San Francisco, California, U.S., on Monday, June 7, 2010. Jobs introduced the redesigned iPhone 4 today, delivering a 24 percent thinner body and 100 new features. Photographer: David Paul Morris/Bloomberg *** Local Caption *** Steve Jobs/2010-06-08 06:19:11/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지난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계 개발자 회의(WWDC 2014)에서 애플은 새로운 운영체제와 프로그래밍 언어 등을 발표했다. 아이폰 6, 아이워치 등 새로운 기기를 공개할 수도 있다는 기대가 있었지만 결국 이들 제품의 공개는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원래 세계 개발자 회의는 애플의 제품과 서비스를 홍보하기보다 애플의 플랫폼을 활용하는 개발자들을 위한 행사다. 그래서 이번 세계 개발자 회의에서도 행사장 외벽에 큼지막하게 ‘(프로그램) 코드를 작성해 세상을 바꿔라’는, 개발자들의 의욕을 불타게 만드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가 2010년 아이폰 4를 WWDC에서 공개한 이후 매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신제품을 공개해 온 때문에 이번에도 혁신적인 제품의 등장을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다. 새로운 운영체제와 프로그래밍 언어 등이 주인공이 된 WWDC는 애플 신제품의 출시를 기다리고 있는 소비자들에겐 김빠진 행사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WWDC 2014에서 공개된 운영체제와 프로그래밍 언어를 바라보는 개발자들의 감정은 일반인들과 사뭇 다르다. 개발자들에겐 이번 행사가 앞으로 스마트폰에서 사용되는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하는 환경과 방향이 통째로 바뀌어야 된다는 폭탄선언이 등장한 행사였을 수도 있다.

그러면 WWDC에서 깜짝 놀랄 아이폰 6가 발표됐다면 일반인들도 개발자들처럼 초대형 폭탄을 맞은 것처럼 놀라움을 느꼈을까. 혁신적인 제품이 발표됐다면 많은 이들의 관심과 찬사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 아이폰이 세상에 선보였을 때 혹은 아이패드라는 새로운 제품을 발표했을 때 느꼈던 긴장과 흥분에 비한다면 최근 발표되는 애플의 신제품에서 느끼는 감정은 다소 밋밋한 편인 이들이 많다. 이런 현상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빅뱅 이후 새로운 것은 없다
발표의 귀재였던 스티브 잡스가 고인이 된 때문일까. 철저한 준비를 통해 사전에 계획된 시나리오에서 단 1초도 다르지 않은 완벽함을 보여준 그의 발표는 분명 많은 이들이 느낀 흥분에 큰 기폭제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살아있을 때에도 언젠가부터 단지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뒤의 숫자가 하나씩 증가하는 것에 불과한 발표에 다소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한국의 언론에서는 애플의 발표에 새로운 혁신이 없다는 기사를 쏟아내곤 했다.

혹자는 성공하려면 애플처럼 누구나 깜짝 놀랄만한,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던 혁신을 이루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생각해 봐야 할 점들이 몇 가지 있다. 우선 단 한 번의 혁신으로 오랫동안 지속되는 성공 기업을 만드는 것은 무척 힘들다. 지속적으로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 등을 창출해야만 장수하는 기업을 이룰 수 있다.

그러면 시장을 뒤흔들어 놓을 파괴력을 가진 파괴적 혁신만이 혁신일까. 그렇지는 않다. 조금씩 이뤄지는 점진적인 혁신도 분명 혁신의 범주에 들어가며 우리가 파괴적 혁신이라고 생각하는 것들 역시 점진적인 혁신이 꾸준히 이뤄지고 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의 신제품 발표 현장에서 혁신은 하늘 아래 존재하지 않던 새로움을 선보여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절대 다수이니 애플의 임직원들이 느끼는 부담과 스트레스는 가히 상상하기 힘든 지경일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너무나도 놀라운 파괴적 혁신을 여러 차례 만들어 낸 애플의 원죄 때문에 당연히 치러야 하는 대가인 것일까. 과연 애플이 이룩한 혁신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것을 탄생시킨 파괴적 혁신이었을까. 다소 무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황당한 접근을 하자면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은 신뿐이다. 애플의 아이폰 역시 자연에 존재하는 여러 자원들을 가공하고 조합해 만든 것이므로 하늘 아래 없던 것을 창조한 것은 아니다. 이에 따라 태초에 우주를 탄생시킨 빅뱅 이후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철학적인 수준의 논쟁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의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는 무에서 유를 만들었다기보다 존재하던 것을 새로운 존재나 의미로 변화하거나 발전시킨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본의 전자 산업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예전에 카메라·텔레비전·전화기·계산기 등의 다양한 제품군을 구비하고 한 명의 소비자에게 여러 제품을 팔던 시대에서 이 모든 제품이 하나의 스마트폰으로 합쳐졌으니 한 명의 소비자에게 한 제품만 팔게 됐기 때문이라는 것을 풍자한 사진이 인터넷에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피카소를 훔친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한 인터뷰에서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스티브 잡스가 한 이야기로 알고 있지만 사실 이 이야기는 피카소가 한 얘기다. 남의 것을 단순히 모방하기보다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해 마치 모방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위대하다는 뜻이 담긴 것인데, 많은 이들이 피카소의 이름은 잊고 스티브 잡스가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훌륭하게 훔쳐낸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하튼 스티브 잡스의 업적을 논할 때 이와 관련된 이야깃거리들이 많은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애플이라는 회사 이름과 로고다. 스티브 잡스는 잘 알려진 비틀스 광팬이었는데, 애플의 음악 판매 서비스인 아이튠즈에 비틀스의 음악이 등장한 것은 불과 4년 전이다. 오랫동안 이어진 비틀스 측과 스티브 잡스 측의 법적 분쟁 때문에 비틀스 음원에 대한 판권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틀스는 음원 관리와 음반을 판매하기 위해 1968년 ‘애플’이라는 회사를 설립했고 사과 모양의 로고를 사용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설립한 것은 1977년이니 엄연히 상표 등 지식재산권을 침해한 사례에 해당되고 이후 2007년까지 법적인 분쟁을 벌이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피카소의 이야기만 훔친 것이 아니라 애플의 대표적 컴퓨터 ‘맥’의 OS 로고도 피카소의 그림으로부터 차용해 왔다고 알려져 있다. 피카소의 작품 중 하나인 ‘두 인물(Two characters)’에 등장하는 두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있는 부분을 조금 변형해 현재의 ‘맥 OS’ 로고를 만들었다는 것인데, 피카소의 작품보다 ‘맥 OS’ 로고를 접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으니 이것 역시 훌륭하게 훔친 사례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이 밖에 iOS7 출시 당시의 디자인은 1930년대 월트디즈니가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 위해 고안한 멀티플레인 카메라를 모방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제는 스마트폰 때문에 다소 구식이 되어 버렸지만 애플의 신화 중 하나인 아이팟에 포함된 도넛 모양의 직관적인 버튼 역시 오래전 고안된 개념을 차용했고 이후 문제가 생겨 최초 고안자와 합의했다고도 알려져 있다.

그러면 애플의 혁신은 모조리 새로운 것이 하나도 없는 비도덕적인 모방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빅뱅 이후 창조와 혁신이라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을 서로 잘 연결하고 조합해 유를 만들어 내는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것만 찾아다니다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이상만 꿈꾸며 현실을 외면하거나 혹은 거품이나 겉멋만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다. 파괴적 혁신에 대한 환상을 파괴하는 것이 혁신을 만들어 내는 지름길인지도 모른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학부 교수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