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_일본] 은퇴 노인이 나서 ‘大간병 시대’ 넘는다

초고령화로 비용 ‘눈덩이’…선제 개입·공동체 참여 등 대안 모델 주목


노년은 어둡고 슬프고 아프다. 방치된 노후 생활은 고스란히 금전 부담으로 직결된다. 지금처럼 저성장일 때 급격한 고령화는 특히 위험하다. ‘취업 호황→임금 상승→가족 구성→자산 증식→은퇴 준비’가 작동 불능에 빠지기 때문이다. 어지간해선 부모 봉양, 자녀 부양, 노후 준비의 트릴레마(3중고)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조만간 베이비부머의 순차적인 대량 퇴직이 현실화되면 노후 갈등은 심각한 사회 이슈로 불거질 수밖에 없다.

노년 걱정의 결정판은 병이다. 물론 돈이 제일 크겠지만 허리띠를 졸라매면 어떻게든 살아낸다. 결정적인 것은 건강이다. 몸이 건강해야 소액의 근로소득이 가능하다. 병들면 돈 걱정은 더 커진다. 공적보험·서비스를 받는다지만 비용 부담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완쾌마저 어렵다면 빈곤층으로 떨어질 수 있다.

건강해도 문제는 남는다. 잉여인간이란 푸념처럼 노인을 경제활동인구에 포함하려는 인식 변화는 별로다. 환갑 이전에 퇴직해 뒷방 신세를 지도록 강요받는다. 이들의 숙련 노하우를 아무리 강조한들 저성장의 자본 논리와 연결될 공산은 낮다. 일부 기업이 정년을 늘려도 대부분은 수혜에서 비켜선다.


경미한 질환부터 미리미리 손본다
최근 NHK는 ‘간병 졸업’을 키워드로 특집 방송을 내보냈다. 노인 인구의 질병 우려와 활동 부재를 엮어 낸 3가지 융합 모델을 소개해 주목 받았다. 지향점은 아픈 노인의 간병 수요를 건강한 노인이 돌봐주는 매칭 모델이다. 먼저 사이타마에 자리한 와코시의 프로그램이다. 간병 필요를 인정받은 노인별로 철저한 자립 계획을 수립·지원해 이를 완수할 수 있도록 신체 기능을 회복시켜 주는 모델이다.

‘간병 졸업’ 프로그램은 심각하지 않은 초기 질병을 대상으로 실시 중인데 참가자 중 40%가 종료 이후 졸업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졸업 근거는 자력 생활의 가능 여부다. 즉 본격적인 간병 필요로 넘어가기 전의 경미한 상황에서 체력 증진을 돕는다는 점에서 간병 예방으로 해석된다. 몸이 망가지기 전 자신의 생활 스타일을 최대한 지켜 내는 차원이다. 조만간 닥칠 ‘대(大)간병 시대’의 딜레마를 풀어낼 유력 해법으로 관심을 받는 이유다.

와코시는 약 8만 명이 거주하는 도쿄의 베드타운이다. 위성도시답게 노인 인구가 많아 시의 재정 상황이 꽤 악화됐다. 문제는 향후다. 간병보험의 7단계 인정 수준에 포함될 노인 인구가 향후 10년에 걸쳐 2배나 늘 것으로 추산된다. 그래서 찾은 해법이 간병 졸업 프로그램이다. 지원이 필요한 1~2단계의 경미한 상황일 때 선제적이고 적극적으로 개입해 적어도 간병 필요의 5단계로 넘어가지 않도록 하자는 아이디어다. 노인 본인은 물론 재정 안정에도 도움이 되는 일석이조의 노림수다.

프로그램의 만족도와 실효성은 높다. 먼저 담당 공무원의 개별 방문과 청취 조사다. 어떤 서비스를 해주면 자립 생활이 가능할지 맞춤 지원하기 위해서다. 그간의 획일·일방적인 서비스에 수동적으로 참가하는 게 아니라 수요자가 원하는 서비스에 방점을 찍는다는 게 차별적이다. 지원 계획은 매월 2차례 열리는 커뮤니티 케어 회의에서 재차 확인된다. 공무원과 보험 당국만 아니라 민간 전문가도 참가해 서비스의 적정 여부와 시행 기간을 체크한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평가 도출이 목적이다. 그 결과를 해당 노인에게 보고·동의를 얻은 후 본격 지원이 시작된다. 대개 일상생활 중 넘어져 보행이 곤란하거나 급격한 체력 저하에 직면한 경우가 많다.

간병 졸업만으로 프로그램이 끝나지 않는다. 이후에도 무료 간병 예방 프로그램을 만들어 참여를 독려한다. 재차 악화돼 보험 지원이 필요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 덕분에 와코시의 간병보험료와 인정 비율은 전국 평균 이하다. 보험료와 인정 비율이 전국적으로는 각각 4972엔, 17.4%인데 와코시는 4150엔, 10.2%에 불과하다(2013년). 비용 이외의 기대 효과도 높다. 경미한 단계의 지원 정도일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한 동기부여가 낮아 방치될 때가 많은데 적극적인 초기 대응만으로 은둔 생활 등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초기 방치→은둔 생활→질병 악화→자신 결여→비용 증가’의 악순환을 졸업이라는 이벤트로 저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체조교실도 있다.
참가자의 평균연령은 77세로 최고령은 92세다. 강사도 73세의 고령으로 서로 공감대를 나누며 건강 증진과 생활 자극을 얻는다.


프로그램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복지법인 등)에게도 새로운 동기부여를 제공한다. 간병보험의 구조는 사회 가치의 실현이라는 선의를 지닌 사업자에게 정부가 사업을 위탁하는 형태지만 사업 지속을 위한다면 그 순수성만 강조할 수는 없다. 여기에서 일부지만 갈등이 발생한다. 열심히 치료·자활시켜 건강해지도록 하면 역으로 사업자로서는 해당 수입이 줄어들 수 있다. 서비스는 엉망인 채 수입 확보에 연연하는 몰상식한 사업자의 발생 유인인 셈이다. 이때 행정이 책임을 갖고 개입해 전달 체계를 고칠 수 있다는 게 와코시 사례의 교훈이다.


노인 중심 자원봉사로 돌파구
와코시의 간병 졸업 프로그램이 노인 인구의 간병 수요에 포인트를 맞췄다면 간병 예방을 위한 건강한 노인 인구의 자원봉사에 주목한 사례도 있다. 나가사키의 사자초는 노인 질병 등 노인 문제의 해법을 위한 대응 체제로, 노인 중심의 자원봉사에 포인트를 맞췄다. 간병 예방의 역할 주체로서 65세 이상의 건강한 노인 참가자를 꾸려 이들에게 자원봉사의 장을 제공하도록 했다. 이 지역도 노인마을답게 간병보험의 인정 비율이 한때 20%를 웃돌았고 보험료는 인근 지역에서 가장 높은 6000엔대에 육박했다. 이대로라면 지자체의 재정은 끝이 뻔했다.

구원투수는 은퇴한 노인 인구였다. 행정을 일부 도와주되 간병 예방을 위한 기획·주체는 전적으로 자원봉사에 호응한 은퇴자에게 맡겼다. 주 1회 열리는 남성 노인을 위한 요리 교실을 보자. 강습 주체는 여성 노인으로, 자원봉사자다. 참가자는 요리에 익숙하지 않은 할아버지들로, 요리교실이 없었다면 홀로 방치돼 외롭게 살아가야 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다. 이들은 참가를 통해 영양 보충뿐만 아니라 교류 증진, 건강 예방의 다목적 효과를 얻는다. 체조교실도 있다. 참가자의 평균연령은 77세로 최고령은 92세다. 강사도 73세의 고령으로 서로 공감대를 나누며 건강 증진과 생활 자극을 얻는다. 그 덕분에 이 지자체의 간병보험 인정 비율은 4년 전인 2010년보다 5%나 낮아졌다(20.8%→15.5%).

공포의 노인 간병을 위해 아예 동네 전체가 나선 모델도 있다. 역시 포인트는 선제적인 간병 예방으로, 주민 전체가 솔선해 지역 과제의 해결책으로서 간병 문제에 접근했다. 농촌지역인 미에의 이가시 사례다. 활동 중심은 초등학교별로 설치된 주민자치협의회다. 자치회·노인회·민생위원뿐만 아니라 주민이면 누구든지 참가할 수 있다. 대개 기업·비영리단체(NPO)·사회복지법인·자원봉사조직 등 해결 능력을 갖춘 단체와 연계해 간병 서비스에 들어가기 직전의 생활 지원 니즈를 발굴해 공급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간 이 지역에서는 대중교통이 부족해 노인 인구의 은둔 비율이 높고 인지 능력도 덩달아 떨어지는 문제가 자주 제기됐다. 그래서 간병 시설의 자동차가 아침저녁 송영 시간을 빼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해 서비스를 받지 않는 노인도 무료로 슈퍼·병원에 태워주기 시작했다. 이 밖에 치매 가족 간병 경험을 갖춘 자원봉사자가 돌아가며 치매 노인을 맡기도 한다.

일본은 4명 중 1명이 노인 인구다. 또 노인 인구 5명 중 1명은 간병보험 인정자다. 간병보험의 급부비만 한 해 10조 엔대다. 베이비부머가 75세를 맞는 2025년이면 20조 엔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보험료 대비 지급 비용이 늘면서 정부도 불가피하게 제도 개혁에 착수했다. 자기 부담금을 인상하고 일부 간병 서비스를 지자체에 이행하는 방안 등이 유력하다. 뒤집어 말하면 필요한 서비스가 충분히 제공되지 못할 우려가 크다. 앞에서 소개한 3개의 모델이 힘을 받는 이유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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