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리더는 가능성을 본다…여성은 협업에 강점
“리더란 모든 일의 순서를 바꾸고 긍정적인 변화를 도출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이를 일깨워주는 것이 진정한 리더십이다.”
‘포천’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최고경영자(CEO)’ 1위에 6년 연속 오른 칼리 피오리나(60) 전 휴렛팩커드(HP) 회장이 한국을 찾았다. 칼리 피오리나 칼리피오리나엔터프라이즈 회장은 5월 30일 제주 해비치호텔에서 열린 제9회 제주포럼 특별 세션에서 ‘기업가 정신과 여성의 리더십’에 대해 역설했다.
기조연설에 이어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과의 대담, 청중과의 질의응답으로 진행된 이번 강연에서 그는 리더가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은 안정을 추구해 변화에 저항하려고 하지만 리더는 신속한 판단으로 무언가가 바뀔 수 있는 기회의 창을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혁신 실패 사례로 코닥을 언급했다. 비록 100년 역사의 기업이라고 할지라도 차세대 디지털 기술의 큰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는 너무 늦은 것이다. 리더는 모호한 상황에서도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논란이 일었던 HP의 컴팩 인수와 관련해서도 “모든 이들의 이해를 받지는 못했지만 리더십이 발휘된 빠른 결정”이라고 회고했다.
피오리나 회장은 진정한 리더는 다른 사람의 잠재성을 발견하고 물꼬를 터 개발해 주는 사람이라고 거듭 말했다. 소규모 부동산 중개업소의 비서직으로 첫 직장 생활을 하던 그에게 회사 상사가 “타이핑이나 전화 받는 것 대신 일을 제대로 배워 보는 게 어때?”라고 제안했고 이 일을 계기로 비즈니스의 세계에 정식으로 입문하게 됐다며 타인의 잠재성을 열어 주고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리더라고 정의했다.
그는 성공한 기업의 리더가 되기 위해선 전통과 혁신, 단기 과제와 장기 과제, 주주와 고객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여성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자원인 만큼 여성을 더 많이 참여시키는 것도 리더십을 통해 가능하다고 말했다.
피오리나 회장과 조 장관의 대담 내용을 정리했다.
정부 차원에서 청년 창업을 돕기 위해 다양한 지원을 한다. 그럼에도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기업가 정신이 부족한 것 같다. 진정한 기업가 정신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리스크 테이킹’이다. 실수하는 것을 절대로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기성세대와 우리 사회는 ‘기업가 정신은 원하지만 실수를 용납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위대한 발명가인 토머스 에디슨은 ‘실패란 없다. 다만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라고 했다. 우리가 발전하고 새로운 것들을 창조하기 위해선 가끔은 실수도 하고 넘어져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만 않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이나 기업의 리더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실패는 치명적인 게 아니라고, 리스크를 얼마든지 짊어져도 된다고 말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길 바란다.”
당신은 통신이나 컴퓨터 등 남성 중심의 조직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나도 남자들이 대다수인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며 여성이어서 중요한 일에서 제외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여성이 남성 동료나 보스들과 소통하는 법이 있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어떤 조직에서 성공했다는 것은 동료들과 원만하게 잘 지낼 때를 의미한다. 회사 내에서의 훌륭한 결과는 한 개인의 활약만으론 한계가 있다. 팀워크가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만약 어떤 조직 내에서 홍일점이라면 남자 동료들과 잘 지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도 예전에 통신 기업인 AT&T에 입사했을 때 동료들 대부분이 남자였고 처음 고객을 만나러 간 곳은 야한 옷을 입은 여자들이 춤을 추는 스트립 클럽이라 당황했던 적이 있다. 오히려 남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좀 더 스마트하게 처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싶다. 스마트하다는 것은 여성이 갖고 있는 잠재력이나 재능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당신의 회사나 국가가 성공하길 원한다면 이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의 잠재력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또한 여성을 너무 다른 종으로 생각하지 말고 서로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여성들도 사회생활에 용기를 갖고 보다 강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여성 리더십의 장점은 무엇인가.
“우선 리더는 가능성을 보는 사람, 타인의 잠재력을 육성하는 사람, 미래의 비전을 구성원과 나누는 사람이다. 이러한 리더의 자질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동일하다. 하지만 여성만의 장점이 분명히 있긴 하다. 여성들은 다른 사람과 협업하려고 노력한다. 이야기를 끝까지 듣기도 전에 다른 사람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파악한다. 이건 여성의 본능이 아닐까 싶다. 오늘날 우리 사회와 기업에서는 날마다 복잡하고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하는데 혼자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런 때 팀워크가 중요하고 여성 리더십의 장점이 발휘된다고 본다.”
당신은 몇 해 전 상원 의원에도 출마했다. 재계에서 정계로 커리어 전환을 시도한 이유는.
“알다시피 정치인들의 결정은 경제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미국은 시민의 정부라고 생각한다. 민간 부문의 인사들이 공직에서 일하고 다시 돌아가 민간에서 일하는 전통을 가진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하지만 지난 50년간 정치가를 전업으로 삼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들은 자신들의 결정이 경제에 어떤 힘을 행사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나는 한 시민으로서, 기업인으로서 미국의 통치와 사회적 이슈에 참여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는 리더가 되고 싶어 정계에 진출하고자 했다.”
OECD나 IMF 등 많은 국제기구들이 여성 고용을 늘리라고 촉구하고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남성 수준으로 증가한다면 모든 국가의 성장률이 상승할 것으로 보나.
“물론이다. 현재 이는 전 세계적 이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일본의 경제를 더 육성하기 위해선 여성의 사회 참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만약 여성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하면 모든 상황이 좋아질 것이다. 이는 많은 경제 데이터로도 증명됐고 지난 40년간 경험해 오기도 했다. 만약 여성들이 빈곤 퇴치에 참여하면 식량 부족 문제가 해결될 것이고 문맹률도 해소되고 질병도 퇴치될 것이다. 여성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모든 부문에서 좋아질 것이다. 여성의 사회참여가 많이 늘었다고 하지만 미국 기업 전체의 CEO 중 여성은 고작 3%다. 우리가 가야 할 여정은 아직 너무나 멀다. 남성과 여성이 둘 다 이 점을 깨달을 때가 변화의 시점이다.”
대담에서 발견한 ‘피오리나 성공 노하우’
1. 운명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내가 여덟 살 때 어머니에게서 받은 카드에 ‘지금 네 모습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리고 앞으로 네가 어떻게 되는지는 네가 하나님께 주는 선물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재능이나 리더십은 타고나는 것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학창 시절 나는 친구들보다 똑똑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우리 모두에겐 각자의 잠재력이 있고 이것을 발전시키고 노력하는 게 더 중요하다.”
2. 실력으로 가치를 입증하라
“이 사회는 남성이 어떤 지위에 오르면 그에 합당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성은 그 지위에 맞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직장 생활을 하며 여성들은 테스트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 그 상황을 피하기보다 좀 더 열심히 일하고 스스로 경쟁력을 갖췄다고 강하게 입증해 보여야 한다.”
3. 수첩에 답이 있다
“내가 수년간 지켜 온 습관이 있다. 나는 매달, 매년 말에 수첩을 펴 보면서 일정들을 되새겨 본다. 시간 배정에 문제는 없었는지, 당시의 선택이 옳았는지, 가정과 일의 균형은 잘 맞춰 왔는지 등을 꼼꼼하게 떠올리고 반성한다.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니 반드시 수첩을 활용하기 바란다.”
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