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트렌드] 사과 주저하다 괴담에 무너지는 기업들

위기의 3가지 유형과 대응 전략…‘크라이시스’ 때 신중론은 화 부를 수 있어

<YONHAP PHOTO-1237> Toyota Motor Corp. President Akio Toyoda brows as he makes a recall announcement during a press conference at the automaker's office in Tokyo, Japan, Tuesday, Feb. 9, 2010. Toyota says it is recalling about 437,000 Prius and other hybrid cars worldwide to fix brake problems - the latest in a string of embarrassing safety problems at the world's largest automaker. (AP Photo/Shizuo Kambayashi)/2010-02-09 16:07:20/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2000년 6월 일본은 전후 최대의 식중독 사건으로 발칵 뒤집혔다. 피해자는 무려 1만4789명. 20~30명 정도의 집단 식중독도 뉴스에 나올 법한데, 이는 실로 엄청난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켰다. 그런데 일본 국민들에게 더욱 큰 충격을 준 것은 이 사건의 주범이었다. 주범은 바로 ‘유키지루시(雪印)유업’이다. 이 회사는 1950년에 설립돼 일본 국민의 절대적 신뢰를 받아오던 기업이었다. 흰 눈송이 모양의 기업 브랜드는 청결과 건강을 상징하는 국민 브랜드로 평가됐다. 이 사건은 유키지루시유업을 파산 직전까지 몰고 간다.

2011년 3월 노르웨이의 의원들은 코카콜라 불매 운동을 시작한다. 이 운동을 시작한 지 불과 2주 만에 무려 5만3000여 명이 이에 동참한다. 이 운동의 발단은 한 살인 사건에서 비롯됐다. 영국에서 묘령의 노르웨이 여성이 살해된다.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예멘의 한 젊은이는 수사망을 교묘히 피해 자신의 고국으로 도피한다. 당시 영국과 예멘은 범죄인 인도 조약이 체결돼 있지 않아 속수무책이었다. 젊은이의 아버지는 예멘의 유력한 사업가였다. 그래서 노르웨이는 용의자 가문과 거래가 있는 기업들에 거래 중단을 요청했다. 이 중 코카콜라가 그 하나였다. 그러나 코카콜라는 사건 해결이 국제경찰의 몫이라며 협조를 거부했다. 물론 불매운동이 확산되자 결국에는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위기 때는 ‘유죄 추정’ 원칙이 지배한다
기업이 직면하게 되는 위기 상황은 천차만별이다. 언제, 어디서, 무엇 때문에 발생하고 그래서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에 대해 판단하기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유키지루시유업과 같이 명백하고 직접적인 원인에 의해서도 발생하지만 코카콜라와 같이 별 관련이 없을 것 같던 사건도 돌고 돌아 때론 심각한 위협이 된다. 이처럼 기업에 위협이 되는 상황들을 모두 총칭해 흔히 ‘위기’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위기라고 말하는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모양이나 색깔이 사뭇 다르다. 그러한 위기가 언제 발생하는지의 발생 시점과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지의 발생 확률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이미 발생한 사건이다. 이는 ‘크라이시스(crisis)’라고 한다. 크라이시스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한 대 맞아 코피가 줄줄 흐르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는 신속하게 불을 끄고 지혈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러기 위해선 그 누구보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나서야 한다. 회사가 잘못했을 가능성이 많고 상당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라면 더더욱 CEO가 가능한 한 일찍 등장해 입장 표명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확실한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 기다리겠다거나 괜히 나섰다가 죄인으로 낙인찍히는 것을 피하겠다는 신중론은 자칫 정보의 공백을 낳을 수 있다. 이러한 정보의 공백은 속칭 ‘카더라 통신’이나 경쟁사의 소식통이 채우게 될 공산이 매우 크다. 해당 기업에 결코 유리한 내용은 기대할 수 없다.

유키지루시유업이 파산 직전까지 가게 된 이유도 신속한 초동 대처의 미숙에 있었다. 내부적으로는 제조 공정상에 발생 원인이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키지루시유업의 경영층은 원인 규명이나 피해에 대한 사과보다 회사와 자신들의 입장을 방어하는 데 치중했다. 그러다 식중독 환자가 1만5000명 가까이 증가하고 여론이 심각하게 악화되자 사건 발생 3일 만에 CEO가 언론에 모습을 보였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이미 50년 동안 쌓아 올린 기업의 이미지는 바닥으로 추락한 상황이었다.

2010년 초 불거진 도요타 위기 사태도 마찬가지다. 2009년 8월 일가족 4명이 렉서스를 타고 가다가 급발진 사고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도요타의 CEO는 한참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도요타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커져만 갔고 도요타는 고객의 생명과 안전을 경시하는 나쁜 회사라는 이미지가 확산됐다. 2010년 대량 리콜이 현실화되고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그제야 부랴부랴 사과 성명을 들고 CEO가 나타났다. 두 번이나 등장했지만 사람들의 들끓는 분노를 달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이렇게 위기 시 CEO가 올바른 시기에 나타나는 것은 크라이시스를 관리할 때 가장 중요한 사항이다.


200년 역사의 베어링스를 파산시킨 닉 리슨
그런데 회사에 잘못이 없다고 확신할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때도 역시 CEO가 나설 필요가 있다. 법정에서는 유죄가 입증되지 않는 한 무죄 추정이 원칙이다. 그러나 사회는 다르다. 일단 사고가 터지고 나면 사회는 유죄 추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지나면 알아주겠지’, ‘진실이 언젠가는 밝혀지겠지’ 하다가는 기차를 놓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따라서 유죄 추정을 무죄 추정으로 바꾸려면 아주 강력한 어조와 대응이 필요하다. 1989년 한국 라면 시장을 송두리째 뒤흔든 사건, ‘우지파동’이 일어났다. 1997년 대법원에서 이 사건에 혐의가 있던 기업들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해당되는 기업들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황이었다. 이 중에는 시장점유율 60% 이상을 가져갔던 1위 기업도 있었다. 언론과 국민들이 주목할 수 있도록 자신들이 결백에 대해 보다 강력하게 주장하고 대응했더라면 아마 한국 라면 시장의 판도는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둘째는 아직 발생하지 않았지만 그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기업이 직면하는 위기의 90% 이상이 이에 해당한다. 이를 ‘리스크(risk)’라고 한다. 식스시그마에서는 1:10:100의 법칙이 있다. 이는 품질관리를 위한 예방비용·검사비용·실패비용을 얘기하는 것이다. 1은 예방 비용으로서 제품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결함을 발견하거나 교육 등을 통해 품질관리를 생활화하는 데서 발생하는 비용이다. 10은 검사비용이다. 이는 제품을 생산하고 출하하는 단계에서 검사하고 불량품이나 결함을 찾아 대책을 마련하는 데 드는 비용을 말한다. 그리고 100은 실패비용을 말한다. 이미 제품은 고객의 손에 전달됐고 고객의 불만에 의해 결함이 발견돼 이를 해결하는 비용이다. 한국 속담에 ‘호미로 막을 것 가래로 막는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비용의 크기가 단계를 넘어갈 때마다 무려 10배씩 커지니 예방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사실 비용의 크기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고객의 불만이다. 이는 기업에 대한 신뢰성 저하뿐만 아니라 고객의 재구매 의사도 상실시키게 된다. 이에 따라 리스크는 예방하는 것이 상책 중 상책이다.


우리가 위기라고 말하는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모양이나 색깔이 사뭇 다르다. 발생 시점과 발생 확률에 따라 크게 크라이시스·리스크·불확실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리스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그 발생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리스크의 발생 원인은 원천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기업 구성원의 고의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구성원의 일에 대한 스킬이 부족하거나 부주의해 발생하는 것이다. 이 둘 중 어느 것이 주는 피해가 더 클까. 아마 구성원의 고의에 의해 발생하는 리스크의 피해가 더 클 것이다. 1995년 파산한 영국의 유서 깊은 은행 베어링스가 그 예다. 당시 베어링스는 설립된 지 200년이 넘었고 영국 왕실의 사랑을 받던 은행이었다. 그런데 무려 13억 달러의 손실을 입고 하루아침에 네덜란드 ING에 단돈 1달러에 매각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러한 몰락의 배경에는 뒤에 ‘악마의 손’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는 싱가포르 책임자 닉 리슨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 30대의 젊은 딜러는 자신의 투자 손실을 숨기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자신의 권한을 넘어서는 무리한 투자를 감행한다. 결과는 실패의 연속이었고 마침내 표면화됐을 때는 그 누구도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런 구성원의 고의적인 행동을 막을 수 있을까.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감사와 같은 감시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속담에 ‘열 포졸이 한 도둑을 못 막는다’라는 것도 있다. 아무리 감시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고 하더라도 작정하고 문제를 일으키려고 달려들면 이를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 베어링스은행도 투자은행인 만큼 그 어느 기업보다 철저한 감시 시스템이 존재했다. 실제로 닉 리슨도 여러 차례 감사를 받았다. 하지만 문제가 곪아 터질 때까지 그 누구도 고의로 숨겨 놓은 문제를 지적하지 못했다. 감시 시스템이 효과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근본적인 치유책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감시 시스템의 한계는 또 있다. 중국 유통 업계의 1인자는 다룬파(大潤發)다. 이 회사는 까르푸·월마트 등 세계적인 유통 업체를 제치고 중국 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유통 업체의 고민 중 하나는 매장 물건의 도난이 유독 심하다는 것이다. 유통 업체의 평균 도난율이 10%대에 이른다. 물건의 10분의 1이 도난으로 없어지는 셈이다. 그런데 도난의 대부분이 내부 직원들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그래서 다룬파는 내부 직원에 의해 발생하는 도난을 줄이기 위해 직원 각자에게 도난에 의한 손실률 방지 목표를 줬고 그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거나 급여를 차감하는 제도를 운영했다. 결과적으로 도난율은 2~3%대로 줄어들었고 이에 따라 매년 수억 위안 이상의 비용이 절감됐다.


스킬 부족서 오는 리스크엔 매뉴얼이 효과적
다룬파는 비용 절감이라는 외형적인 면에서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조직 문화는 과연 괜찮을까 싶다. 함께 일하는 동료가 나의 감시자로 여겨진다면 과연 일이 재미있고 직장이 행복을 구현하는 장소로 여겨질까. 장기적으로 본다면 이러한 조직 문화는 기업에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다 근원적인 치유책을 강구해야 한다. 감시 시스템보다 근본적인 방법은 구성원들에게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를 명확하게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작금에 한국 국민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주는 일련의 사건들을 접하고 있다. 이 사건들을 살펴보면 시스템에 분명한 문제가 있다. 하지만 이보다 시스템을 운영하는 당사자들의 가치관 부재가 더 큰 문제라고 본다. 돈보다 안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 있었더라면,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는 가치관이 행동을 지배하는 것이었더라면 아마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FILE--A customer goes shopping at an RT-Mart supermarket in Yichang city, central Chinas Hubei province, 9 July 2013. Taiwans RT-Mart is ready to launch its e-commerce business in China as per reports. The new online shopping website, feiniu.net, will be launched in December, and the company aims to build it into one of the three top shopping websites in China. RT-Mart continues to surprise its competitors, having become Chinas biggest whole sale market owned by foreign shares. The company, which aimed to exceed revenue of US$13.1 billion by the end of the year, is planning to launch another 20 branches on top of its 244 branches in China by the end of this year. RT-Marts new online shopping services will sell more than 200,000 items and all these orders will be delivered within 24 hours.

구성원들의 일에 대한 스킬 부족이나 부주의에 의한 리스크를 예방하는 방법으로는 매뉴얼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매뉴얼은 업무 수행상 발생할 수 있는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이고 실수를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업무 가이드로, 비즈니스 성패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베트남에 진출해 큰 성공을 거둔 ‘아트헤어’의 대표는 성공의 비결로 매뉴얼을 강조한다. 지금은 하루에 1000명 이상의 고객이 방문하지만 진출 초기만 하더라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베트남 종업원들의 인건비는 저렴하지만 서비스의 개념이 없었다. 여기에 한국식 서비스를 접목하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매뉴얼이었다. 꼼꼼하게 서비스 매뉴얼을 작성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종업원에게는 페널티를 부과했다.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매뉴얼을 일일이 지키기 어렵다면 중요한 것을 ‘행동 강령’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매뉴얼이 준수되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들의 우선순위를 정한다. 우선순위가 높은 문제부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지침을 2~3개씩 뽑아 철저히 지키게 한다.

셋째는 발생 가능성은 있지만 그 확률이 매우 낮은 상황이다. 그러나 한번 터지면 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을 ‘불확실성(uncertainty)’이라고 한다. 전쟁이나 천재지변, 과거 오일쇼크와 같은 아주 급격한 경기변동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에 대비하는 하나의 방법이 ‘시나리오 플래닝’이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항을 고려해 그중에서 가능성이 큰 몇 개의 시나리오를 그리는 것이다. 그리고 개별 시나리오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응 전략을 미리 설정해 놓음으로써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한 경영 기법이다.

우리는 위기라는 말을 쉽게 사용하지만 언제 발생했느냐 또 발생 확률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그 내용이 다르고 대응하는 방식도 차이가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 모든 위기 상황을 피할 수 있는 경영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위기 상황을 효율적으로 대처한다면 위기는 곧 기회가 될 수 있다. 경영자가 위기를 전략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한 이유다.


강성호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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