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인재 전쟁 무방비] 대기업 CEO 현지 채용 나서도 ‘시큰둥’

유학생 절반 미국 체류 선호…한국 취업했다 유턴하는 사례도

<YONHAP PHOTO-0269> Employees work in the international user operations area at the new headquarters of Facebook in Menlo Park, California January 11, 2012. The 57-acre campus, which formerly housed Sun Microsystems, features open work spaces for nearly 2,000 employees on the one million square foot campus, with room for expansion. Picture taken January 11, 2012. REUTERS/Robert Galbraith (UNITED STATES - Tags: SCIENCE TECHNOLOGY MEDIA)/2012-01-13 05:54:09/ <????沅??? ?? 1980-2012 ???고?⑸?댁?? 臾대? ??? ?щ같? 湲?吏?.>

세계 금융의 심장 뉴욕에는 국경과 나이를 초월한 글로벌 인재들이 한데 모여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에 근무하는 성유헌(29·가명) 씨도 그중 한 명으로, 현재 리스크 관리팀에서 분석 업무를 맡고 있다. 성 씨는 대학 시절 미국행을 택했다. 아주대 재학 중 학교 복수 학위 프로그램으로 뉴욕주립대 유학길에 올랐다. 졸업 후 일자리를 구할 때 미국과 한국 사이에서 잠시 고민했지만 기회의 땅에서 마음껏 능력을 펼쳐 보겠다는 포부로 미국 정보기술(IT) 스타트업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미국 사회에 ‘진입’한 이후 다시 한 번 ‘점프’해 선망했던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성 씨의 하루 일과는 오전 8시 30분 미팅으로 시작된다. 업무 후에는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한국인들과의 비공식 모임을 통해 친분을 쌓고 정보를 교류하곤 한다. 20여 명이 모이는 이 모임에는 유학 후 미국에 정착한 이들이 상당수다. 모두 “유학까지 와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현지 취업을 택한 이들이다. 타지 생활의 외로움 때문에 간혹 한국으로의 ‘유턴’을 고민하기도 하지만 “한국에 가더라도 외국계 기업에 취업하겠다”고 말한다.

“한국에 가면 신경 쓸 게 많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여기서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자기 할 일만 하면 나머지 부분에선 자유롭다는 것이에요. 출퇴근 시간이나 재택근무 여부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죠. 한국에서 인턴사원으로 일한 적이 있는데 눈치를 많이 보는 분위기였어요. 여기서는 사고방식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요. 또 승진 가능성도 크게 열려 있어 일을 잘하면 무한대로 인정해 주죠.”

성 씨는 연봉에도 만족한다고 답했다. 학사 졸업 후 초봉 9000만 원에서 시작해 이내 1억 원 연봉을 돌파했다. 현재 3년 차인 성 씨의 연봉은 1억2000만 원 수준이다. 성 씨는 미국 기업에 취업하지 못해 불가피하게 한국으로 간 사례는 있어도 굳이 한국행을 택한 경우는 보지 못했다고 한다. 유학생들이 한 번 미국으로 건너가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국내 명문대 재학생도 해외 취업을 희망하며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는 분위기는 이상할 것 없는 현실로, 스스로 미국을 희망한다는 점에서 ‘인재 유출’이라는 표현이 적합한지에 대해 의문을 던졌다.


“한국 대기업보다 미국 벤처가 낫다”
실제로 미국에서 유학 후 귀국을 꺼리는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미국과학재단(NSF)의 2012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 이공계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한국인 연구 인력 중 미국 내 체류를 희망한 비율은 1998~2001년 41.1%에서 2006~2009년 45.4%로 높아졌다. 2008년부터 4년간 이공계 대학원생과 학부생 13만3302명이 외국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같은 기간 외국인 과학 인재 유입은 5만412명에 그쳐 국내를 떠난 유학생이 2.6배 더 많았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이공계 인력 유·출입 실태 조사’를 보면 이공계 대학원생은 2006년 1만866명이 해외로 나갔지만 2011년에는 1만2240명이 국내를 빠져나가 연평균 2.4% 증가했다.

또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국내에서 일하는 이공계 박사 147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7.2%는 해외 취업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는 ‘부족한 연구 환경’이 52.3%로 가장 많고 이어 ‘자녀 교육(14.0%)’, ‘외국 정착(7.8%)’, ‘임금 수준(6.4%)’ 등이 뒤를 이었다. 2010년 기준으로 한국 내 이공계 박사 학위자의 평균 연봉은 6881만 원으로, 미국 내 박사 평균 9317만 원(달러당 1156원으로 계산)의 74% 수준이다.

미국으로의 이동은 특히 이공계 분야에서 활발하다. 전 세계적인 엔지니어 부족 현상 속에 한국 IT 위상이 높아지면서 한국 공대 출신을 영입하려는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박소라 커리어케어 글로벌사업본부 수석 컨설턴트는 “한국 엔지니어들이 일을 잘하고 스마트하면서도 근면 성실하다는 평판이 있다”며 “좋은 미국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인재를 영입하려는 수요가 증가했다. 이공계 종사자들은 미국에 기회를 두드리고 있고 기회도 많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특히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미국 유학길에 오른 경우는 미국에 뿌리내리기 위한 의도를 강하게 갖고 있다. 박소라 수석 컨설턴트는 “미국 상위권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들은 미국 현지 취업이 관계화돼 있다. 그러한 우수한 두뇌들이 열심히 공부해 미국 땅에 정착하는 게 바람직해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 기업 진출에 가장 큰 걸림돌은 ‘언어’이지만 실리콘밸리 소프트웨어 분야 개발자들은 언어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기술이 있으면 취업이 가능한 분위기다. 한국에선 인재들이 벤처나 중소기업 취업을 꺼리는 반면 미국에선 벤처도 ‘신의 직장’으로 통한다. “한국의 대기업보다 미국의 벤처가 낫다”는 인식이 엔지니어들 사이에 퍼져 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엔지니어들은 소규모 벤처를 통해 미국 본토에 진입한 후 다시 한 번 취업 문을 두드리곤 한다.

‘미국으로의 탈출’ 혹은 ‘새 땅에서의 새 출발’을 기대하며 뒤늦게 미국행을 택하는 인재들도 많다. 인텔에서 연구원으로 종사하는 A 씨는 한국 중견 벤처에서 5년 정도 근무한 후 미국 뉴욕주립대에 박사과정을 밟았다. 한국에서 엔지니어로 살기 쉽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우선 업무 환경이 힘들었어요. 야근은 물론 주말에도 끊임없이 일해야 했고 휴가를 1주일 내는 것도 눈치를 봐야 했죠. 2년 반 동안 휴가 없이 일만 하면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고 미국에서 더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32세에 박사 유학길에 올라 4년 반을 공부에 매진한 후 인텔에 취업했다. 현재 그는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8시에 출근해 5시에 퇴근하는 게 일상이에요. 동료와 얘기가 되면 휴가를 3주 연속 쓸 수도 있고 주말에 일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생각이죠.” 연봉도 두둑이 챙기고 있다. A 씨가 다니는 인텔은 박사급 인재의 최소 연봉이 1억 원이며 매년 2000만~3000만 원의 보너스를 받는다. 연차가 올라갈 때마다 연봉이 매년 5~10% 인상되고 능력에 따라 스톡옵션도 지급된다.


핵심 인재 놓고 글로벌 스카우트 경쟁
그와 함께 박사과정을 밟았던 지인들도 대부분이 미국에 남았다. 취업이 쉽지 않을 때는 박사 후 과정(포스트 닥터)으로 미국 생활을 이어 가는 지인도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취업했다가 다시 미국에 돌아오는 사례도 있다. “한국에서 외국계 기업에 다녔는데 6개월 후 답답하다고 다시 돌아왔어요.”

최근 인재 쟁탈전은 ‘한 명’의 인재를 두고 각국이 경쟁하는 ‘글로벌 스카우트 경쟁’ 양상이다. 국적에 관계없이 실력만 있으면 어느 곳에서든 손을 내밀어 쟁탈전을 벌인다. 최근 미국 내에서도 기업 간 잦은 스카우트 경쟁으로 구글·애플·인텔·어도비 등 네 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인력 스카우트 자제 담합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한국의 우수한 두뇌들이 미국 내에서 몸값을 더욱 높이며 활약하는 모습이다. 검증된 한 명의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각 회사에서 달콤한 제안을 한다. 통상적으로 연봉의 30% 인상을 제시하며 A의 한 지인은 70%까지 연봉을 올려 받았다. 여러 곳에서 제안 받을수록 몸값이 더욱 치솟는다.

핵심 인재를 영입할 때는 기업에 따라 전략적으로 움직인다. 그렇다 보니 업계 전문가들에게는 늘 손님이 따라다닌다. A 씨에게도 매년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 인재 영입에 열심인 한 기업에서 A 씨의 회사 근처에 매년 찾아와 식사 요청을 하곤 한다. A 씨는 참석을 거절했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기업의 제안을 들어보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자리로 이러한 비밀 만남을 지속하고 있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미국으로 직접 찾아 나선다. 학교 리크루팅을 하고 CEO가 직접 움직이는 일도 적지 않다. 면접 단계를 파격적으로 줄인다든지, 화상 면접을 통해 선발하는 방식도 자주 쓴다. 성유헌 씨는 “한국의 큰 기업들은 리크루팅을 하기 위해 매년 뉴욕에 온다”며 “유학생 전형으로 선발되면 글로벌 인재 프로그램으로 홍콩·인도 등 인재들과 함께 생활하고 프로모션 혜택을 준다고 했던 곳도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임원 및 CEO가 열심히 캠퍼스 리크루팅을 하고 많은 공을 들여도 지원자 자신이 미국에 남기를 강력하게 희망한다는 것이다. 박소라 수석 컨설턴트는 “유학 후 다시 한국 기업에 돌아가는 것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많다. 최선 아닌 차선이라는 인식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미 인재 쟁탈전과 관련해 최근 두드러지는 현상 중 하나는 한국 기업들의 외국인 채용이다. 미국으로 이동한 한국의 고급 석·박사 인재를 영입하는 것뿐만 아니라 실력만 있다면 국적도 상관없다는 인식이 한국 기업들 사이에서도 커가고 있는 것.


강남아파트·자동차·자녀 학자금까지
삼성의 글로벌스트래티지그룹(GSG)이 대표적이다. ‘인하우스 컨설팅펌’으로 그룹 내 주요 사업에 대해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를 하는 이들은 18개국 출신 100여 명의 외국인으로 구성돼 있다. 모두 하버드·와튼·듀크·컬럼비아·시카고·버클리 등 세계 일류 경영학 석사(MBA) 출신이다. 평균 나이 만 30세의 젊고 똑똑한 인재들로, 처음엔 ‘외국인 조언 그룹’ 개념으로 출발해 현재는 주요 사업에 대한 컨설팅을 맡고 있다. 연봉 자체가 일반 직원과 다르고 집과 가족 건강보험, 자녀들의 국제학교 학비를 모두 지원하는 등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한다.

한국 기업들이 ‘눈독’을 들이는 영입 1순위 인재는 동종 업계 경쟁사 혹은 선진사의 부장급 이상이다. 연차로는 15~20년 차 전문가들을 영입하기 위한 물밑 작업이 치열하다. 이때 대우도 파격적이다. 한국 강남권에 방 3개 딸린 아파트와 자동차, 자녀 학자금을 모두 지급하고 전 세계 어디에서나 적용되는 국제 건강보험도 보장한다. 1년에 두 차례 비즈니스 클래스로 고향을 방문하는 비행기 제공은 물론 계약이 성사되는 것을 기념하는 보너스도 제공한다. 계약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계약서에 사인하자마자 축하의 의미로 2억~3억 원의 보너스가 지급된다. 연봉은 최소 30% 인상되며 임원급은 개인 비서와 운전사가 제공된다.

입사 전 면접 과정에서도 공을 들인다. 지원자가 비즈니스 클래스로 한국에 도착하면 인천공항에서부터 특급 대우가 기다리고 있다. 채용 과정에만 들이는 비용이 1인당 2억 원 가까이 든다. 박소라 수석 컨설턴트는 “한 명을 영입하는 데 서치펌을 이용할 때 억대의 수수료가 들고 비행기·호텔·운전사 비용을 더하면 2억 원 가까이 된다. 계약이 성사되고 보너스에 연봉까지 더하면 이사급 한 명을 데려오는 데 20억 원 정도 들어간다”고 말했다.

재밌는 점은 한국인보다 외국인 스카우트가 더 쉽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선호하는 대상은 미국에서 일하고 있으면서 한국 경험이 있는 교포 혹은 유학생이지만 이미 이들은 한국 기업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설득 과정이 더 어렵다고 한다. 외국인 인재를 설득하는 게 더 쉽다는 것이 웃을 수만은 없는 게 현실이다.

한미 간 인재 이동을 볼 때 핵심은 지원자들의 태도에 온도 차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떠나려는 이들은 너무나 많은 반면 미국에서 한국으로 인재 한 명을 데려오는 일은 수천~수억 원을 들여도 될까 말까 한 일이기 때문이다. 박소라 수석 컨설턴트는 “한국 엔지니어를 미국에 보내기도 하고 미국 엔지니어를 한국에 데려오기도 했는데 전자는 설득할 필요도 없이 너무나 쉬운 반면 후자는 말도 못 붙이는 경우가 많아 인재 시장 종사자로서 비애를 느끼곤 한다”고 말했다.

이는 단순히 연봉이 아닌 기업 문화와 비전, CEO의 인재 육성 의지, 국가 경쟁력 등이 종합된 결과로 보인다. 박소라 수석 컨설턴트는 “기업 인지도만 높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한국 기업에 가 봤더니 하루 종일 시키는 일만 하라고 하며 눈치를 주고 하루 내내 회의에 야근하고 술 마시고 집에 간다는 얘기를 주변을 통해 습득한 이들에게 딱히 뭐 하나만 고치면 될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업 경쟁력과 함께 사회적 환경인 국가 경쟁력, 다양한 인재를 포용할 수 있는 조직 문화가 정착되는 게 과제로 지적된다. 또한 미국 석·박사급 인재를 데려오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 것을 감안할 때 한국 내에서도 고급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교육 시스템에 의지하지 말고 한국 내 교육 시스템과 콘텐츠를 새롭게 하면서 요즘 기업들이 원하는 강의와 연구를 더욱 활발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