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 사람 맛난 인생]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방법 음식에 있죠”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 원장


동장군의 극성이 채 가시지 않은 지난 2월 초. 서울 종로구 원서동 창덕궁 돌담 끝자락에 자리한 궁중음식연구원 2층 조리 실습실에 젊은 조리사 50여 명이 이곳 한복려 원장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궁중 음식이라고 해서 꼭 궁중에서만 먹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궁중 음식에는 복잡하게 기교를 부린 음식도 있죠. 하지만 조리법이 단순한 음식도 많습니다. 두부나 오이, 호박 같은 일상적인 식재료가 궁중 음식을 만들 때 자주 쓰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궁중 음식을 일반 가정이나 음식점에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고요. 궁중 음식의 한 품목을 골라내 전문 음식점도 낼 수 있어요. 신선로는 샤부샤부 못지않은 전문 메뉴로 발돋움시킬 수 있어요.”

이날 한 원장은 손수 칼질을 하며 신선로를 만들어 줬다. 당초 몇몇 젊은 요리사 ‘페친(페이스북 친구)’에게 간단하게 궁중 음식을 소개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들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타고 “저도요, 저도요”가 쇄도하면서 ‘젊은 셰프들을 위한 신선로 시연 특강’으로 커진 것이었다.


황혜성 교수 맏딸로 궁중 음식 전수 받아
특강에 앞서 이들을 인근 북촌박물관에 1시간 앞당겨 불러 모아 때마침 전시 중인 ‘신선로 전(展)’도 함께 관람하며 신선로의 역사와 의미에 대해서도 설명해 줬다. 이날 행사에 참석했던 한 조리사는 “한국 음식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궁중 음식을 무형문화재 선생님에게 직접 배울 수 있어 더욱 뜻 깊은 자리였다”며 좋아했다. 예상 밖의 호응에 한 원장 역시 약간 흥분한 듯했다. 특강 진행 과정 내내 평소보다 목소리의 톤이 높았다.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 음식 3대 기능 전수자 한복려 궁중 음식 연구가의 행보가 달라졌다. ‘궁중 음식’이란 화두를 양손에 받쳐 들고 궐 밖으로 나와 대중 앞에 다가서는 모습이다.

“궁중 음식이 왜 최고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그 나라에서 사시사철 나는 최고의 식재료를 가지고 음식만 만들어 온 전문인들이 정성을 다해 만들었기 때문인 것 아니겠어요. 그런 최고의 한국 음식을 ‘궁중’이란 담 안에 가두고 있을 이유가 없잖아요. 궁중 음식의 이미지를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모두 함께 나누며 즐기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궁중 음식=수라상’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대중 속의 궁중 음식’으로의 변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초 젊은 요리사들을 대상으로 신선로 특강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요즘은 선진 외국에 요리 유학을 하고 돌아온 젊은이들이 많아요. 이들은 우리 음식 분야에서도 꿈나무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우리 최고의 음식인 궁중 음식을 모른 채 밖에서 배운 외국 음식에만 매달려 있어요. 자신이 먹어본 밥상을 한식의 전부로 규정하고 한식을 도외시하는 시각도 안타까웠고요.”

‘대중 속의 궁중 음식’과 함께 ‘생활 속의 궁중 음식’, ‘미래를 향한 궁중 음식’으로 방향을 넓혀야 한다는 얘기다.

어릴 적 한 원장에겐 음식이나 요리가 특별한 게 아닌 일상이었다. 궁중 음식 연구가인 고 황혜성 교수의 맏딸로 어머니 곁에 있으면서 자연스럽게 음식에 젖어들었다. 본격적인 음식 공부는 조선왕조 궁중 음식이 1971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부터다. 어머니의 조수 겸 조교로 일하며 차근차근 배우기 시작했다. ‘엄마와 딸’의 관계가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된 지 어느새 44년. 그 사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뒤를 이어 조선왕조 궁중 요리 3대 기능 보유자로 지정돼 7년이란 세월도 지났다.

“어머니 황혜성 스승님은 한희궁 상궁을 통해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있던 조선시대 궁중 음식을 발굴해 전수하는데 진력하셨지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묵묵히 스승의 길을 이어 왔는데 어느 날 저를 돌아보니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더라고요. 이제는 새롭게 제가 할 일을 찾아야겠더라고요.”


요리 개념 벗어나 종합 궁중 문화로 발전시켜야
최우선으로 꼽는 일은 ‘황혜성 박물관’ 건립이다. 평생 궁중 음식 연구가로 활동하신 스승 황혜성을 기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유품은 물론 그동안 수집한 음식 관련 고서적이나 유물도 열심히 정리하고 있다. 박물관 장소는 묘소와 생가 터가 있는 충남 예산군 덕산을 생각하고 있다. 인터뷰 중간 에어비닐로 둘둘 만 목각 북어 두 마리를 내보이며 얼마 전 인사동에서 고미술품을 보다가 우연히 발견해 사들였다고 자랑했다.

다음 일은 궁중 음식을 대중의 생활 속으로 퍼뜨리기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펼치는 것은 아니다. 갑자기 한 원장이 규정하는 ‘궁중 음식의 정의’가 궁금해졌다. 잠시 고민하더니 “궁중 음식은 인간이 갖출 수 있는 최고 예(禮)의 본보기”라고 대답했다. 이어 그는 “궁중 음식은 임금을 위해 최고의 식재료를 가지고 최고의 정성을 들여 음식을 만드는 일. 그리고 그 음식을 대하면서 그 과정의 사람들 노고에 대해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 행위가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대중 속으로 들어가는 궁중 음식은 ‘단순히 입으로 먹고 눈으로 즐기는 고급 음식의 개념’이 아니다. 정성·감사·품격·소통·공감을 두루 갖춘 ‘정신으로 먹는 음식’이라는 말이다. 이를 위해 “단순한 요리의 개념을 벗어나 식기·의상·예술 등과 복합적으로 이뤄지는 종합 궁중 문화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궁중 음식 연구가 본인의 밥상은 어떨까. 수라상을 닮았을까. 별것 없단다. 요즘 들어 특별히 먹고 싶은 것도 없고 맛있다고 느껴지는 것도 없다고 한다. 괜히 나이 탓만 하다가 술술 풀어놓는다.

아침엔 토스트를 굽고 토마토 주스로 간단하게 요기를 한다. 점심에 바깥 약속이 없으면 연구원에서 식사를 해결한다. 메뉴는 수강생들이 만든 게 식탁에 오를 때도 있고 강의가 없으면 조교들이 만든 음식이 오른다.

한 원장도 가끔 라면을 먹는다. 원래 음식 가지고 타박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러나 제자나 수강생들이 기본에 어긋난 요리를 하거나 정성 없이 음식을 대할 땐 회초리를 든 마음으로 호통을 친다.

“음식이라는 것은 정을 먹는다고 할 수 있어요. 누군가를 위해 만든 음식 속엔 사람과 사람의 정이 느껴지죠. 자기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방법도 음식에 있어요. 자신을 함부로 대하면 먹는 것도 아무거나 먹게 되잖아요. 자신의 몸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음식도 잘 고르고 차려 정갈하게 하는 법이니까요.”

요즘 우리의 식문화에도 일침을 곁들인다.

“음식이 너무 외식으로 흐르고 있어요. 자기가 만든 게 아니라 남이 만든 것이 대부분이죠. 편의점에서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아이들을 보면 무척 애처로워요. 백화점 지하 식품 매장에서 다 만들어진 음식을 사는 주부들의 모습도 마찬가지고요.”

이에 대해 굳이 주부들을 탓할 생각은 없단다.

“음식은 기본적으로 가정을 지키는 파수꾼입니다. 영양적인 면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엄마의 음식을 먹고 자란 아이, 가족끼리 자주 식사를 함께한 사람은 가슴이 따뜻합니다. 좋은 추억도 많고요. 요리를 못하더라도 죽순철엔 죽순을 데쳐 초고추장과 함께 식탁에 올리고 평상시엔 두부라도 부쳐 가족들을 밥상머리로 불러 모으세요.”


유지상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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