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삼성의 미래’에 대한 다섯 가지 관전 포인트


한국 경제의 거목이 흔들렸다. 신경영을 통해 삼성을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탈바꿈시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갑작스러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것이다. 이와 함께 삼성그룹의 지배 구조 변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3세 경영권 승계 등과 관련한 ‘포스트 이건희 시대’의 시나리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한국을 넘어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삼성의 미래에 대한 다섯 가지 궁금증을 풀어본다.


1. 지배 구조 흔들릴 가능성은 없나
현재 가장 많은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강한 카리스마를 갖춘 이건희 회장의 부재 시 기존 삼성의 지배 구조가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삼성의 지배 구조는 이 회장이 직접 보유한 각 계열사 지분보다 주요 계열사들 간의 순환 출자 구조가 요체다. 순환 출자 구조는 크게 두 개의 고리를 가지고 만들어진다.

삼성의 지배 구조를 들여다볼 때 핵심 포인트는 어떻게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느냐는 것이다. 삼성의 작년 그룹 총매출은 334조 원이다. 이 중 삼성전자의 작년 매출은 228조 원이다. 그룹 전체 매출 3분의 2가량을 삼성전자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즉 삼성전자는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

그러면 삼성전자를 어떻게 지배할 수 있을까. 핵심은 삼성생명(지분 7.2%)과 삼성물산(4.6%)이다. 이는 크게 두 개의 순환 출자 고리로 이어진다. 하나는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큰 고리(1번 고리), 또 다른 하나는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으로 이어지는 작은 고리(2번 고리)다.

1번 고리는 확실히 탄탄하다. 좀 더 꼼꼼히 살펴보자. ‘사실상의 지주회사’ 삼성에버랜드는 이재용 부회장(장남)이 지분 25.1%를 가지고 있는 최대 주주다. 또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장녀)과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경영기획담당 사장(차녀)이 각각 8.4%씩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이 회장을 포함한 특수 관계인 지분을 합치면 46.9%에 달한다. 삼성생명은 삼성에버랜드로 지배한다.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의 지분 19.3%를 가지고 있다. 또 삼성문화재단과 삼성생명 공익재단이 각각 4.7%씩 가지고 있다. 이 회장도 삼성생명 지분 20.8%를 가지고 있다. 간단하게 말해 이 회장의 지분을 몽땅 포기해도 상장사인 삼성생명에 대한 지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삼성전자는 삼성생명으로 지배한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지분 7.2%를 가지고 있다.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11.12%)와 국민연금(7.71%)을 제외하면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의 최대 주주다. 즉 이재용 부회장 등이 삼성에버랜드만 확실하게 지배하면 삼성생명을 지렛대로 삼성전자의 최대 주주 자리에 오르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특히 이 부회장은 그동안 삼성전자의 최고운영책임자(COO)로 활약해 왔다. 그의 삼성전자 입사 연도가 1991년이니 근속 연수만 20년이 넘는다. 삼성전자의 경영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한명인 셈이다.


2. 남매간 계열 분리나 에버랜드의 지주사 전환 가능성은
이 역시 너무 앞서 나간 이야기다. 일각에선 ‘포스트 이건희 시대’에는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기반으로 전자와 금융을 총괄하고 이부진 사장이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건설과 화학 그리고 호텔신라 등을 총괄하며 이서현 사장이 패션사업과 제일기획 등 미디어를 총괄할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다. 특히 이를 기반으로 과거 이병철 선대 회장의 사후 삼성이 삼성·CJ·한솔·새한·신세계 등으로 나눠진 것처럼 계열 분리까지 가능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현 단계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시나리오다. 일단 계열 분리보다 현재와 같은 ‘하나의 삼성’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영향력이 가장 큰 이재용 부회장을 중심으로 이부진·이서현 사장이 힘을 보태는 ‘집단 지도 체제’ 형태다.



앞서 이야기한 2번 고리, 즉 삼성물산의 삼성전자 지분 때문이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의 지분 4.6%를 가지고 있다. 자사주와 국민연금을 제외한 삼성전자의 2대 주주다. 물론 삼성생명과 이건희 회장(3.4%), 홍라희 리움 관장(0.7%), 이재용 부회장(0.6%) 등이 삼성전자 지분을 보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삼성물산의 지분이 없다면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이 급격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특히 삼성물산에 대한 가족의 보유 지분이 핵심 계열사 중 가장 낮은 편이다. 이 회장이 삼성물산의 개인 최대 주주로 지분 1.37%를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는 삼성전자가 지분 13.5%로 지배하는 삼성SDI(지분율 7.4%)다. 또 삼성물산의 2대 주주는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삼성생명(지분율 4.65%)이다.

즉 삼성물산은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동시에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삼성물산에 대한 가족의 지배력을 오히려 더 높여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최근 삼성물산의 주가가 빠르게 오르고 있는 이유(3월 17일 종가 5만7000원에서 5월 14일 종가 6만700원)다. 이 때문에 최근 삼성물산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설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두 회사를 합치면 삼성SDI의 삼성물산에 대한 지배력이 더 높아진다. 삼성SDI가 삼성엔지니어링의 지분 13.1%를 가지고 있는 최대 주주이기 때문이다. 즉 삼성SDI의 최대 주주가 삼성전자인 만큼 삼성전자를 통해 삼성물산에 대한 지배력을 높일 수 있게 된다. 결국 삼성전자의 경영권 안정을 위해서는 삼성물산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이 부회장이 반드시 지배해야만 하는 회사라는 뜻이다.

계열 분리와 함께 최근 자주 거론되는 시나리오가 삼성에버랜드의 지주회사 전환이다. 정부가 일반 지주회사의 금융회사 지배를 허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이다. 물론 대형 금융회사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일반 지주 아래 중간금융지주회사를 둬야 한다는 단서가 달려 있다. 이미 삼성은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삼성증권·삼성화재·삼성자산운용·삼성카드 등의 금융 계열사를 지배한다. 이 때문에 결국 ‘사실상의 지주회사’인 삼성에버랜드를 ‘실제 지주회사’로 바꾸고 삼성생명을 중간금융지주로 바꿀 것이라는 게 이 같은 시나리오??대체적인 얼개다.

지주회사는 확실히 매력적이다. 복잡한 순환 출자의 구조에서 벗어나 지주회사 체제로 가면 오너에게 실질적·도덕적 이점이 많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주사 전환이 장기 과제라면 모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사실상 실현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7.2%는 삼성전자 지배의 중핵이다. 그런데 에버랜드가 지주사로 전환하고 이에 따라 삼성생명이 중간금융지주로 전환한다면 삼성전자의 지분을 모두 팔아야 한다. 지난 5월 2일 국회가 비은행 금융지주회사의 산업자본(일반회사) 소유 금지를 골자로 하는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설사 경영권 리스크를 감내하고 삼성생명이 지분 매각을 이행한다고 해도 이를 사들일 곳이 마땅치 않다. 삼성전자의 주식 가치가 무려 14조 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주식 처분은 삼성생명으로서도 만만치 않은 리스크다. 총자산(200조 원) 중 7%가 한꺼번에 사라지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눈여겨봐야 할 체크포인트가 있다. 최근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 14명이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이다. 현행 보험업법은 보험사가 자사의 대주주나 계열사의 유가증권을 보유할 때 보유 한도를 총자산의 3%까지로 제한하되 유가증권을 사들일 당시의 ‘취득가액’을 적용 기준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계산 기준을 ‘시장가’로 바꾸고 보유 한도를 초과한 회사는 이를 매각하도록 했다. 만약 원안대로 통과된다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 14조 원어치를 포함해 그룹 계열사 주식 18조 원어치 중 상당액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이 법안의 국회 통과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또한 설사 원안대로 통과돼도 5년이라는 유예 기간이 있고 보유 한도 초과분으로 매각 대상이 한정돼 있다는 점 때문에 당장 삼성의 지배 구조에 급격한 변화를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3. 작년부터 이어지는 사업 재편의 의미는 무엇인가
2013년 9월 삼성에버랜드의 제일모직 패션사업부 양수 발표를 시작으로 5월 삼성SDS의 연내 상장 계획 발표까지 삼성은 두 손으로 꼽아도 모자랄 만큼 많은 굵직한 구조 재편 계획안을 숨 돌릴 틈 없이 쏟아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룹의 지배 구조 자체가 바뀌는 ‘거대한 변화’는 찾아볼 수 없다.

최근의 구조 재편 행보는 ‘포스트 이건희 시대’ 준비 작업의 일환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즉 지배 구조를 완전히 뜯어고치는 차원보다 복잡하게 얽히거나 겹치는 사업 분야를 슬림화해 그룹 전반의 ‘경영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동시에 향후 경영 승계 시 후계자들이 사업을 보다 잘 이해하고 앞으로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지분 구조를 명쾌하게 정리하는 데 초점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일부는 인수·합병(M&A)을 통해 후계자들의 재산 가치를 높이는 동시에 그룹 내 지배력을 키우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각 계획을 몇 가지 테마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먼저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 부문, 즉 삼성생명의 삼성자산운용 지분 인수, 삼성증권의 삼성선물 인수, 각 금융사의 사업 및 인력 조정은 사업의 효율성 확보와 ‘지분 정리’ 차원으로 볼 수 있다.



화학 부문 중 삼성SDI의 제일모직 화학 부문 인수, 삼성전기의 삼성정밀화학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원재료 생산 설비 양수 등은 삼성전자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이 중 삼성SDI는 제일모직 화학 부문을 인수함으로써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지분까지 안아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었다. 반면 삼성종합화학의 삼성석유화학 확보는 단순 지분 정리로 볼 수 있다.
특히 삼성SNS와 합병한 삼성SDS의 상장 계획은 후계자들이 경영권을 승계하는 데 쓸 수 있는 다양한 옵션을 준 카드가 됐다.


4. 최소 4조 원 달하는 상속세를 어떻게 마련할까
현재 삼성의 경영권 승계에서 가장 관심이 몰리고 있는 대목은 바로 이건희 회장의 막대한 재산 상속에 따른 상속세다. CEO스코어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이 회장의 재산은 주식과 부동산 등 등기 자산만 계산해도 약 13조 원에 달한다. 이 중 핵심은 삼성전자 지분(3.4%, 약 8조 원)과 삼성생명 지분(20.8% 약 4조 원)이다. 이 정도 규모라면 현행 상속세법에 따라 최소 4조 원에서 6조 원 정도를 가족들이 세금으로 내야 한다.

그러나 재벌닷컴의 계산에 따르면 이재용 부회장의 재산은 약 4조 원(상장사 주식 1조2220억 원과 비상장사 주식 2조6900억 원, 기타 재산 520억 원), 홍라희 관장의 재산은 약 1조5000억 원(상장사 주식 1조5460억 원, 부동산 등 기타 재산 310억 원)이며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사장의 재산은 각각 1조1290억 원과 1조640억 원으로 평가됐다. 두 자매의 재산은 대부분(각각 약 1조 원)이 비상장 주식이다. 이는 이 회장의 재산을 물려받기 위해서는 적게는 이 부회장의 재산 전부, 많게는 가족 전원의 전 재산을 상속세로 내야 한다는 의미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그 많은 상속세를 마련할 수 있을까. 상속세로 인해 경영권 승계 자체가 어려워지는 것은 아닐까. 수많은 의문이 이어진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상속세는 국세청이 허락하면 5년간 분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또한 상속받은 주식이나 부동산 등으로 물납도 가능하다. 즉 장남인 이 부회장이 자신의 재산을 최대한 손대지 않고 이 회장의 상속재산을 중심으로 장기간에 걸쳐 물납 형태로 분납해 상속세를 해결할 가능성이 크다. 상속세로 인해 경영권이 흔들릴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이다. 후계자들의 재산으로 직접 상속세를 내지 않는 이유는 향후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최근 주목받는 게 삼성SDS의 상장이다. 삼성SDS는 삼성에서 시스템 관리 업무를 하는 비상장사다. 이 부회장이 최대 주주(11.26%)이며 이부진 사장(3.9%), 이서현 사장(3.9%)이 많은 지분을 갖고 있다. 상장을 발표한 5월 8일 장외주식 정보 제공 전문 사이트 38커뮤니케이션에서 거래된 삼성SDS 장외 주가는 22만5000원이다. 이를 기준으로 이재용 부회장의 보유 주식 수(870만4312주)를 곱하면 지분 가치는 1조9585억 원으로 나온다. 이부진·이서현 사장의 보유 주식(301만8859주)도 같은 방식으로 계산하면 각각 6792억 원에 해당한다. 물론 장외가 기준이므로 상장 과정에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어쨌든 이 부회장은 삼성SDS 상장을 통해 그룹 경영권에 큰 영향이 없는 현금 혹은 현금 등가물을 최소 1조5000억 원에서 2조 원 정도를 손에 쥘 수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 주식을 상속세 재원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하지만 이는 가능성이 낮은 시나리오다. 몇 가지 걸림돌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 주식을 상속세로 내면 이 부회장의 재산이 큰 폭으로 줄어든다. 향후 경영권 강화에 활용해야 할 자금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또한 삼성SDS 주식은 오너가를 대상으로 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 발행 논란으로 한차례 홍역을 치른 전력이 있다. 이 주식을 팔아 상속세로 낼 경우 뜨거운 사회적 논쟁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여러 가능성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방안은 삼성SDS 상장 차익을 삼성물산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는 데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앞서 지적했듯이 삼성물산에 대한 오너 일가의 지배력이 약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삼성물산 시가총액이 10조 원 안팎이니 단순하게 따지면 삼성SDS 상장 차익으로 삼성물산 주식 약 15~20%를 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결국 최소 4조 원의 상속세 중 상당액은 ‘경영권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5년에 걸친 장기간 동안’, ‘이 회장의 주식 및 부동산’으로 비교적 무난하게 해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후계자들이 최대한 ‘정당성’을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오너 일가가 각 계열사에 대한 지분이 많지 않아 순환 출자에 의존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 등이 세금 문제를 비롯해 과거 그 어떤 기업보다 투명하고 깔끔하게 승계 과정을 처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자칫하면 엄청난 후폭풍에 휩싸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공익재단 출연을 통한 절세 등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승계 과정에서 ‘주주 친화적’ 행보도 예상된다. 배당 확대 등 주주 친화적인 정책은 후계자들의 자금 확보에 유리하다. 또한 삼성전자의 지분 50%를 넘게 가지고 있는 외국계 투자자는 물론 삼성 계열사에 폭넓게 투자하는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와 소액주주들의 지지도 끌어낼 수 있다. 이 회장의 입원 이후 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생명 등 지배 구조와 관련된 회사들의 주가가 상승한 것은 바로 이런 기대감이 작용한 것이다.


5. 삼성전자 분할 시나리오는 왜 나오나
지난 5월 12일 박중선 키움증권 애널리스트가 ‘삼성전자 지주회사 전환 시나리오’라는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 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이 삼성전자의 기업 분할 시나리오다. 삼성전자의 기업 분할은 박 애널리스트뿐만 아니라 여러 애널리스트와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들 그리고 학계에서 꾸준히 제기해 온 시나리오다.

현재 이 부회장 등은 상속세를 전부 내도 그룹 지배권을 유지하는 데는 별문제가 없다. 극단적으로 말해 삼성전자의 지분 중 절반인 4조 원을 상속세로 낸다고 가정하자. 이는 오너 일가가 갖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중 1.7%가 줄어드는 것에 불과하다. 지배 구조의 핵심인 삼성생명과 삼성물산의 삼성전자 지분과 삼성전자 자사주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또 이 회장이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 4조 원어치(20.76%)를 상속세로 납부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지분 19.37%를 가지고 있고 삼성문화재단과 삼성생명 공익재단이 각??4.7%씩 보유해 전체 지분율이 30%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삼성전자의 분할 시나리오는 왜 자꾸 나오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를 통해 주주 가치 제고와 오너의 경영권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애널리스트의 분석은 이렇다. 삼성전자는 자사주 11.12%를 보유하고 있다. 이 밖에 여러 삼성 계열사와 기타 기업들의 주식도 45조3000억 원어치(2013년 말, 장부가 기준)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인적 분할을 하고 시가총액이 분할 전후에 변화가 없다고 가정하면 삼성전자홀딩스(가칭)의 예상 시가총액은 약 60조 원(자사주 가치 21조9000억 원+지분법 평가 유가증권 38조2000억 원)이다. 여기서 분할되는 삼성전자 사업회사의 예상 시가총액은 약 137조 원이 된다.

2013년 삼성전자의 연결 영업이익은 37조 원이다. 이를 감안하면 삼성전자 사업회사의 예상 시가총액은 한국 시장 평균(약 9배)에 비해 크게 저평가된 상태다. 실제로 삼성전자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는 것은 이미 국내와 해외 금융투자 업계의 공동된 분석이다. 저평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삼성전자의 성장성에 대한 의문, 즉 ‘도대체 어디까지 커질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다. 또 다른 하나는 삼성전자의 시총 규모가 코스피 시장의 20%에 달해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에서 주식을 더 사기 힘든 ‘수급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만약 삼성전자가 분리된다면 둘째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가능성이 크다. 즉 삼성전자 사업회사의 시총이 낮아져 기관투자가들이 더 투자할 여력이 생긴다. 실제로 대기업은 기업 분할 시 시총이 크게 증가하기도 한다. 동일한 사례는 아니지만 NHN이 네이버와 NHN엔터테인먼트로 분리한 이후 시가총액이 14조 원대에서 25조 원대로 11조 원 정도나 더 늘어났다. 더 나아가 삼성전자 사업회사가 크게 삼성반도체(반도체 및 부품)와 삼성모바일(스마트폰 및 가전)로 분리된다면 시총 증가는 더 커질 수 있다.

이런 논리에 따라 삼성전자 사업회사의 시가총액이 137조 원에서 150조 원대까지 오른다고 가정하면 이 회장과 특수 관계인이 보유한 삼성전자 사업회사의 지분 가치 약 26조 원을 삼성전자홀딩스로 현물출자할 경우 삼성전자홀딩스에 대한 최대 주주 특수 관계인의 지분율이 42%대까지 급상승한다. 이렇게 되면 사업회사에 대한 특수 관계인의 지분이 빠지면서 삼성전자홀딩스가 보유한 삼성전자 사업회사의 지분율도 28.4%까지 상승하게 된다. 앞서 이야기한 주주 가치 제고와 오너의 경영권 강화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때 삼성전자홀딩스에 대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지분율은 각각 약 17.6%와 3.1%로 크게 뛴다. 금융회사의 비금융회사 보유 지분은 의결권이 5%까지만 허용되기 때문에 최대 주주와 특수 관계인이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전체 의결권은 20% 정도로 제한된다. 여기서 제기되는 게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전자홀딩스의 합병이다. 이렇게 되면 이른바 새로운 ‘삼성홀딩스’는 오너의 지분율이 더 올라가게 된다. 또한 삼성생명은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이나 스와프 등으로 처분하고 자연스럽게 중간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면 된다.

이렇게 되면 삼성홀딩스가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사업자회사 그리고 삼성전기·삼성SDI·삼성디스플레이를 지배할 수 있다. 삼성물산도 인적 분할을 통해 삼성물산홀딩스를 만들고 삼성물산 사업 자회사와 삼성종합화학·제일기획·삼성SDS 등을 지배하면 된다. 키움증권 분석에 따르면 오너 일가는 삼성홀딩스와 삼성물산홀딩스의 지분율을 각각 25%, 22%까지 확보할 수 있다. 삼성홀딩스가 확보할 수 있는 삼성생명 지분율은 40.1%다. 이는 이미 시장에선 설득력 있는 방안으로 간주되고 있다. 한 반도체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가 장기적으로 인적 분할하고 분할 존속법인인 삼성전자홀딩스(가칭)가32 분할 신설 법인인 삼성전자 사업회사(가칭) 지분을 현재 11%에서 추가로 늘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최근 삼성전자 주가가 오르는 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면 지금까지 삼성은 왜 이 방안을 채택하지 않았을까. 그동안 삼성은 삼성전자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 즉 미래전략실을 컨트롤타워로 삼성전자가 선봉대 역할을 하며 그룹 내 주요 자원을 빨아들이며 급성장한 것이다. 쉽게 말해 자본이 없던 한국이 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대기업을 집중적으로 키워 고속 성장해 온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 과정에서 쌓인 부를 신속하게 재투자하는 선봉대는 덩치를 계속 키우며 ‘스피드’를 살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러나 한국 경제와 마찬가지로 삼성 역시 ‘자원의 집중’을 통한 성장은 어느 정도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는 새로운 성장 모델이 필요한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삼성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 솔직히 최근 삼성전자를 뺀 나머지 계열사는 실적이 좋지 않다. 이 부회장은 그동안 삼성전자의 리더로서 나름대로 실적을 쌓아 왔다. 하지만 더 이상 삼성전자가 급성장하기는 쉽지 않다. 앞으로는 ‘그룹’으로서의 삼성을 봐야 한다. 이 부회장이 삼성의 리더로 자리 잡기 위해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삼성전자와 ‘삼성후(後)자’ 간의 시너지다”라고 말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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