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사이트] 원화 값 오르는데 환율 방어 ‘머뭇’

미 ‘테이퍼링’·한 ‘경상수지 흑자’로 원화 강세…내수 비중 올라갈 듯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13일 오전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 본관에서 한국은행 관계자들이 추석자금을 방출하고 있다./2013.09.13/세계일보 김범준기자

4월 들어 원화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고 있다. 4월 11일에는 원·달러 환율이 1035원까지 하락했는데, 이는 미국에서 글로벌 금융 위기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던 2008년 7월 이후 처음이다. 국내외 경제 여건을 고려하면 중·장기적으로 원화 가치가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


달러 가치, 장기적으로 하락 추세
우선 미국의 달러 가치 추세부터 살펴보자. 2005년에는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6%에 이르렀다. 2013년에는 이 비중이 2%대로 낮아졌지만 아직도 불균형 해소 과정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다.

단기적으로 봐도 달러 가치가 오를 가능성은 낮다. 미국은 2008년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양적 완화’라는 비정상적인 통화정책을 통해 금융시장 안정과 함께 경제 회복을 도모했다. 이에 따라 집값과 주가가 오르고 소비도 늘면서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비정상적인 통화정책을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양적 완화를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는 2012년 12월 3차 양적 완화에서 매월 850억 달러에 이르는 국채와 모기지 채권을 사기로 했는데, 그 규모를 2014년 3월까지 세 차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550억 달러로 줄이기로 했다. 올 연말까지는 양적 완화 축소를 마무리할 전망이다. 그리고 2015년 상반기에는 만기가 돌아오는 증권의 재투자를 줄이거나 종료하고 더 나아가 Fed의 포트폴리오에 편입된 국채나 모기지 채권을 매각할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통화정책을 완전히 정상화하는 것이다.



그다음 단계는 금리 인상인데, 그 시기는 내년 하반기 이후일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미국 경제가 회복되고 있지만 아직도 실제 GDP가 잠재 수준을 훨씬 밑돌고 있다. 2015년 상반기에도 물가가 2% 이상으로 오를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Fed가 금리 인상을 서두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최근에 미국의 경제성장이 둔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회원국의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선행지수를 작성해 발표한다. 한국·중국 등을 포함한 아시아 5개국 경기선행지수가 2011년 4월부터 계속 감소했는데도 미국의 선행지수는 증가세를 지속했다. 그러나 미국 선행지수도 2013년 11월부터 감소세로 돌아서고 있다.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인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미국의 경제성장도 2014년 하반기에는 둔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를 반영하면서 미국 집값이 2013년 11월부터 다시 떨어지고 있고 올 들어서는 거품 논쟁이 가열되는 가운데 주가도 조정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2013년 GDP의 6%를 넘었던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원화 가치를 끌어올리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지난해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799억 달러로 규모로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고 경상 GDP에 비해서도 6.1%로 1998년 11.2% 이후 가장 높았다. 2000~2012년의 평균 1.8%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경상수지 흑자가 이처럼 대폭 늘어난 것은 한국의 내수가 크게 위축됐기 때문이다. 높은 부채에 시달리고 있는 가계는 소비를 늘릴 여력이 크지 않고 일부 대기업 중심으로 기업 이익이 늘고 있지만 투자는 별로 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총저축률(2013년 34.4%)이 총투자율(28.8%)을 훨씬 웃돌고 그만큼 경상수지 흑자가 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보고 미국 재무부는 4월에 발표한 ‘국제경제와 외환정책에 대한 반기 보고서’에서 “정확한 수치가 공개된 것은 아니지만 지난해 하반기 한국 외환 당국이 원화 가치가 올라가는 속도를 제어하려고 시장에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해 한국 경상수지 흑자는 GDP 대비 6.1%로 199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세계 금융 위기(2008년) 전보다 더 많은 흑자를 낸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쉽게 말하면 원화 가치가 저평가돼 있기 때문에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늘었다는 것이고 앞으로 원화 가치가 상승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규모의 경상수지 흑자와 함께 한미 실질금리 차이가 확대된 것도 원화 가치 상승 요인이다. 한국의 국채(10년) 수익률이 최근 3.5% 안팎으로 2008년 5%대 후반보다 낮아졌지만 물가 상승률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실질금리는 2.5% 안팎으로 비교적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실질금리는 환율을 결정할 때 매우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한국의 실질금리가 높은 것은 미 달러에 비해 원화 가치 상승 요인이고, 특히 한일 실질금리 차이 확대로 원화는 엔화에 비해 그 가치가 더 오르고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국내외 요인을 볼 때, 원화 가치는 중·장기적으로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얼마나 오를 것인가에 있다. 이를 알기 위해 원·달러 환율의 적정 수준을 추정하게 된다. 그러나 적정 환율은 기준 시점 선정 등 추정 방법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예를 들면 국제결제은행(BIS)은 주요국의 물가뿐만 아니라 무역 가중치를 고려한 실질 실효 환율을 추정해 발표하는데, 이에 따르면 한국의 원화 가치는 2014년 2월 현재 7.6% 과대평가됐다. 2월 말 원·달러 환율이 1067.5원이었는데, 당시 적정 환율은 1149원 정도라는 것이다.


빅맥지수로는 원화 가치 20% 저평가
그러나 빅맥지수로 보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영국의 유명한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매 분기마다 빅맥지수를 이용해 각국의 환율을 평가하고 있다. 미국에서 2014년 3월 현재 빅맥은 개당 4.62달러(애틀랜타·시카코·뉴욕·샌프란시스코의 평균)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빅맥이 개당 4100원에 팔리고 있다. 일물일가의 법칙에 따라 빅맥 가격은 미국과 한국에서 같아야 한다. 따라서 빅맥 한 개를 살 수 있는 미화 4.62달러의 가치는 우리 돈 4100원과 같게 된다. 이를 다시 환산하면 미화 1달러의 가치는 원화 887.5원이다. 2014년 3월 말 원·달러 환율은 1064.7원이었다. 원화 가치가 20%나 저평가된 셈이다.

필자가 한미 실질금리 및 통화 증가율 차이, 경상수지, 엔 및 위안 환율을 설명 변수로 추정해 보면 2014년 3월 현재 원·달러 환율의 균형 수준은 1053원 정도로 나타나고 있다. 적정 환율이 존재하더라도 그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미국 경제의 불균형 해소 과정에서 달러 약세, 한국의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 등을 고려할 때 원화 가치는 지속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높은 환율 때문에 한국 경제는 수출 중심으로 성장했다. 총수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7년 39%에서 2012년에는 56%(2013년 잠정치는 54%)로 높아졌다.

그러나 최근 진행되고 있는 원화 가치 상승으로 앞으로 수출 비중은 낮아지고 내수 비중은 올라갈 것으로 판단된다. 환율은 거시경제뿐만 아니라 미시적으로 각 경제 주체에 영향을 주는 만큼 환율 변화를 예상하고 대응해야 할 시점이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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