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준의 중국 재테크] WMP, 중국판 서브프라임 사태 부르나

신용 낮은 중소기업 대출 채권 기반…고금리 믿고 개인 투자자 몰려

상하이국제금융센터(SWFC) 100층 높이(474m)에서 바라본 푸둥 금융가와 푸시 지역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10.04

중국 금융 위기의 핵심은 소위 ‘그림자 금융’의 위기가 시스템 위기로 확대될 것인지에 대한 우려다. 그림자 금융은 은행권 밖에서 은행과 유사한 신용 중개 기능을 제공하면서 은행과 같은 엄격한 감독과 규제를 받지 않는 금융(신용공여)을 의미한다. 즉 은행 인수어음이나 위탁 대출, 신탁 상품과 같은 은행의 부외 활동(off balance)을 통한 신용 창출이 이에 해당한다.

중국의 그림자 금융 규모는 추정 기관마다 다르다. 일반적으로 규모가 가장 큰 자산 관리 상품(WMP)과 신탁 상품을 지칭하는데, 약 20조1000억 위안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36.2% 수준이다. 작년 말 국무원이 정의한 대로 전체 사금융 시장을 포함하면 그림자 금융은 총 46조7000억 위안으로 GDP 대비 84.3% 규모다. 하지만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추정한 전 세계 평균 110%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낙후된 금융업이 ‘그림자’ 키워
그림자 금융 증가의 배경은 중국 금융 부문의 낙후성에 있다. 실물 부문의 고성장에 비해 금융 부문은 은행업과 대형 국유 상업은행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어 발전이 더디다. 국유 상업은행들의 자금 운용 방식은 대출에 집중돼 있으며 금융 상품이나 기법도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다. 가계의 자산 구조도 주로 예금 위주(2011년 기준 62%)다.



5대 국유 상업은행(공상·농업·중국·건설·교통)이 은행 산업에서 차지하는 자산 비중은 2012년 말 기준으로 45%에 달한다. 지방정부와 국영기업 등이 공동 출자해 설립한 은행까지 포함하면 약 60~70% 수준이다. 경제 주체들도 전체 자금 조달의 75%를 은행 대출에 의존한다. 당국의 통제 하에 대형 국유 상업은행들은 국유 기업들에 대한 저금리 대출과 외환시장 개입 등 정책 수행을 담당한다. 이들은 반대급부로 지난 10년간 평균 약 320bp(1bp=0.01% 포인트)의 예대마진을 보장받았지만 대출에 한정된 자금 운용으로 은행의 수익성은 저조했다. 대형 국유 상업은행들의 낮은 금융비용은 과잉투자와 과잉설비를 초래했다. 은행들은 신용 위험이 높은 중소기업 대출을 확대할 이유가 없었고 중소기업들은 자연스럽게 은행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 그림자 금융의 의존도가 높아졌다.

시기적으로는 2011년 6월 예대율(예금과 대출의 비율) 규제를 75%로 강화한 이후 그림자 금융이 급증했다. 당국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신규 대출을 간접적으로 규제하면서 예대율 기준도 월말 잔액에서 일일 잔액 기준으로 강화했다. 그 결과 첫째, 은행 간 예금 유치 경쟁이 확대됐다. 금리 상한이 있었던 예금 금리보다 100bp 이상 수익률이 높았던 고금리 WMP는 훌륭한 자금 유인 수단이었다. 둘째, 은행은 규제가 약한 신탁회사로 대출 자산을 유동화해 새로운 대출 한도를 확보했다. 셋째, 극심한 자금난 속에 중소기업들은 그림자 금융에 의한 자금조달 비중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신탁 상품과 WMP는 각각 10조1000억 위안, 9조9000억 위안으로 GDP 대비 36.2%를 차지한다. WMP는 한국의 실적 배당형 상품과 유사한 자산 관리 상품으로, 신탁 회사가 대출, 어음 매입 등 은행의 대출 자산을 WMP로 유동화하는 과정에서 신탁 회사에 이전된 신용공여를 말한다. 통상적으로 은행이 신탁 회사에 대출 채권을 양도하고 WMP를 은행 창구에서 투자자에게 판매하는 형태다. 소액 개인 투자자 비중이 높고 만기는 대부분이 1년 미만(3개월 이하가 64%, 1년 미만이 90% 이상)이다. 운용 자산의 60% 정도를 위험이 낮은 채권이나 단기금융 상품에 투자한다. 반면 신탁 상품은 평균 만기가 WMP보다 2~3년으로 길고 주로 고위험 기업이나 산업 등에 투자된다.



문제는 중소형 은행들은 WMP와 신탁 상품 판매로 조달한 단기성 자금으로 투자 회수 기간이 긴 고수익 장기 부동산이나 지방정부의 인프라 프로젝트에 투자했다는 점이다. 전체 신탁 상품의 약 3분의 1이 올해 만기가 도래한다. 2011년 이후 크게 증가한 광업 부문의 대출이 석탄 가격 하락 등에 따라 부실화될 가능성이 있다.

최근 문제가 됐던 1월의 중성신탁(공상은행 판매, 30억 위안)이나 2월 길림신탁(건설은행 판매, 9억7000만 위안)은 모두 신탁회사가 설정하고 은행의 고객을 수익자로 하는 신탁 상품들로 주로 석탄 회사들의 구조조정 이슈와 관계가 있다. 석탄 회사에 투자된, 2015년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신탁 상품은 총 27개 195억5000만 위안어치 규모로 추정된다. 설명한 바와 같이 중국의 금융시장은 대형 국유 상업은행 중심이다. WMP와 신탁의 상품 구조상 대출 채권이 부실화되면 투자 손실은 원칙적으로 투자자 부담이다. 그러나 실제 상품 판매는 은행의 암묵적인 지급보증에 대한 믿음에 기반한다. 지금 투자자들이 걱정하는 것은 대출 채권의 부실이 은행의 부실로 연결될 위험이다.

2013년 9월 현재 신탁 상품과 WMP의 규모는 은행의 대출 자산 대비 약 27%에 달하는 수준이다. 은행의 신용공여라는 점에서 은행이 부실을 떠안게 될 위험이 있다. 홍콩상하이은행(HSBC)에 따르면 WMP 신탁 대출 비중이 감소하는 대형 은행(8%)보다 증가하는 중소형 은행(11%)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 2013년 말 현재 중국 은행의 부실채권은 5921억 위안으로 부실 대출 비율(NPL)은 1% 수준이다. 2014년 말에는 1.2% 수준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스템 위기로 전이 가능성은 제한적
중국 은행들로 위기가 전이될 것인지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포인트는 중국 은행들이 자산 성장 또는 신용 사이클상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다. 즉, 중국 경제의 성장률 둔화에 따라 자산·대출의 성장세가 둔화된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성장세가 유지되는 동안은 구조조정 부담을 흡수하면서 성장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중국 은행의 지표를 살펴보면 대출 성장률, 수익성, 부실채권 비율 등 주요 지표상으로 봤을 때 디레버리징 사이클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은 발견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성장 국면에서 나타나는 구조조정 부담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현재 중국 은행의 상황을 감안할 때 그런 단계에 진입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판단이다.

과거 성장 모멘텀이 살아있던 2000년대 이전 한국 은행들의 대출 성장률을 살펴보면 비교가 가능하다. 성장세가 둔화되면 부실채권 비율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중국 상업은행들의 부실채권 대비 대손충당금 설정 비율은 2013년 말 현재 약 3배에 달하며 이 비율이 최근 수년간 증가 추세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일정 부분은 부실채권 증가 사이클에 대비해 온 정황을 확인할 수 있다. 부실채권이 현 수준보다 3배 정도 증가해도 추가 손실 없이 부실채권을 정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의미다.

문제는 중국 금융시장의 잠재적 불안 요인으로 지적된 그림자 금융과 관련된 리스크가 은행 건전성에 추가적으로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인지 여부다. 즉, 중국 은행의 위기로 확산되느냐 하는 것이지만 앞서 검토한 바와 같이 극단적인 상황을 배제하면 은행 위기로 확산될 가능성은 작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 그림자 금융 규모가 커졌다고 하지만 또한 신탁 상품이나 WMP의 경우 개별 신탁 상품이 WMP에 편입돼 있는 등 상호 자산 간 성격이 명확히 구분돼 있다고 보기 어려워 교집합이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보수적으로 이 같은 은행 관련 그림자 상품을 모두 일반 대출로 간주해 봤을 때 중국 은행권의 예대비율은 2013년 9월 말 기준으로 약 103%로 계산된다. 하지만 중첩된 부분을 감안해 봤을 때 실제 예대비율은 100% 미만일 것으로 보인다.

그림자 금융 관련 리스크는 중국 은행권의 자산 건전성이나 수익성에 추가적인 리스크 요인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직은 관련 부담을 흡수할 만한 여력을 보유한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의 변화가 표면화되면서 시장의 변동성은 당분간 커질 수밖에 없으며 투자가들의 불안감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야 할 점은 이 변화가 중국 경제의 체질이 건강해지는 과정이라면 주가 조정은 장기 투자자 입장에서는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이다.


조용준 하나대투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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