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삼천리, 올해 첫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지정돼
입력 2014-05-09 09:31:19
수정 2014-05-09 09:31:19
국내 민간 기업으론 유일
한국 경제에서 ‘대기업집단’, 즉 그룹사는 큰 의미를 가진다. 그렇다면 그 그룹사는 어떻게 규정할까. 이를 규정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들어가 있는지 여부를 따져보는 것이다.
지난 4월 1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자산 5조 원 이상 대기업 그룹 63곳을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작년에 비해 새로 5곳이 추가되고 기존 4곳이 제외된 결과다. 이 리스트에서 아무래도 눈길이 가는 것은 ‘신규 지정된 그룹사’와 ‘제외된 그룹사’다. 이유는 이를 통해 국내 그룹사의 ‘흥망성쇠’를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제외된 4곳은 동양·STX·웅진·한국투자금융 등이다. 한국투자금융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은 경영 악화에 따른 법정 관리 등 내·외부적 어려움 속 사업을 축소하면서 더 이상 지정 요건에 미치지 않게 돼 지정 대상에서 제외됐다. 한국투자금융은 금융 전업 집단으로 전환하면서 대기업 지정에서 제외됐다.
안정적이고 탄탄한 실적이 ‘자랑거리’
새로 기업집단으로 지정된 그룹사는 5곳이다. 주인공은 한국석유공사·코닝정밀소재·서울메트로·삼천리·한국지역난방공사 등이다.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삼천리와 코닝정밀소재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공기업이다. 제외된 5곳이 모두 민간이고 새로 지정된 3곳이 공기업이라는 점을 따져보면 아무래도 경기 둔화의 여파가 민간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이 같은 경제 상황에서도 새로 지정된 코닝정밀소재와 삼천리는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코닝정밀소재는 삼성그룹의 계열사로, 삼성이 미국 코닝에 지분을 매각한 후 계열 분리된 외국계 기업이다. 즉 이번에 완전히 새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지정된 순수 국내 민간 회사는 삼천리 하나 정도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삼천리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지정된 이유를 ‘기존 계열회사의 자산 증가(2012년 4조9000억 원→2013년 5조4000억 원)’라고 꼽았다.
삼천리그룹은 규모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수도권에 살고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 회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이유는 삼천리그룹의 주력 사업이 도시가스 사업이기 때문이다.
삼천리그룹의 핵심 계열사는 삼천리라고 할 수 있다. 그룹 매출의 대부분을 삼천리가 책임지고 있다. 공정위 자료에 따르면 삼천리그룹의 2013년 전체 매출액은 4조6170억 원, 당기순이익은 2550억 원이다. 이 중 삼천리의 매출액은 3조6581억 원, 당기순이익은 403억 원에 달한다.
1955년 설립된 삼천리는 연탄을 만들던 회사다. 하지만 1983년부터 안양을 시작을 인천·화성·수원·용인·안성 등 경기 서부권에 도시가스를 공급하며 크게 성장한다. 현재 도시가스 시장점유율은 15.7%로, 총 277만 호에 연간 39억3000만㎥를 공급하고 있는 국내 1위 도시가스 업체로 거듭났다. 도시가스는 정부에서 권역별로 독점을 인정해 준다. 즉 삼천리는 리스크가 작은 사업을 벌여 안정적으로 현금 창출을 하고 있는 기업이다.
사실 사업에서 리스크가 작고 안정적이라는 말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바꿔 말하면 이 말은 ‘성장성’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실제로 삼천리의 매출액 대비 순이익의 비율은 1.1%에 불과하다. 전형적인 저수익 사업이다.
여기에 도시가스 사업에는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리스크가 하나 있다. 바로 ‘날씨’다. 범수진 삼성증권 애널리스트의 분석에 따르면 2014년 1분기 영업어익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12.5%나 줄어든 455억 원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범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경기와 인천 지역 도시가스 소매 마진이 각각 2.9%, 3.5%씩 인상됐음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기온으로 전년 대비 도시가스 판매량이 약 10%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도시가스 사업은 말 그대로 ‘한철 장사’다. 2013년 기준 삼천리는 3분기와 4분기에 각각 마이너스 95억 원, 마이너스 109억 원의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했다. 즉 날씨가 더운 여름과 가을에는 가스가 팔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발전소·집단에너지 사업 ‘새 성장 동력’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삼천리는 계속해 새 성장 동력을 찾고 있다. 현재 삼천리의 주요 관계사는 도시가스 배관 엔지니어링 사업을 하는 삼천리ENG(삼천리 지분 100%), 에너지 플랜트 및 기자재 사업을 하는 삼천리ES(지분 100%), 집단에너지 사업을 하는 휴세스(지분 51%), LNG복합화력발전 사업을 하는 에스파워(지분 50%) 등이다.
이 중 삼천리, 나아가 삼천리그룹의 핵심 사업으로 발돋움할 것으로 예상되는 회사는 에스파워다. 에스파워는 한국남동발전 및 포스코건설과 합작으로 2012년 설립된 민간 발전 회사다. 에스파워는 현재 건설 중인 안산복합화력발전소를 소유하고 있다. 2015년 본격 가동되는 안산복합화력발전소의 발전 용량은 834MW급으로 민간 발전소 중 최대 규모다. 지목현 메리츠종금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 삼천리의 지분율은 50%지만 완공 후 포스코건설의 지분을 추가 매입해 2015년부터 에스파워가 연결 실적으로 반영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러면 삼천리의 영업이익은 급상승한다. 지 애널리스트의 분석에 따르면 2015년 삼천리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12%나 성장한 1198억 원으로 전망된다. 에스파워만 놓고 보면 2015년 연간 매출 8700억 원, 영업이익 600억 원으로 예상된다.
에스파워와 함께 삼천리의 신성장 동력으로 거론되는 곳은 경기그린에너지다. 경기그린에너지는 한국수력원자력(지분 62%)·포스코에너지(19%)·삼천리(19%)가 공동출자한 회사다. 경기그린에너지는 세계 최대의 연료전지 발전소로, 한국수력원자력이 운영하고 포스코에너지가 시공을 각각 맡고 삼천리는 에너지원인 액화천연가스(LNG)를 공급한다. 삼천리는 이 투자를 통해 경기그린에너지에 20년간 LNG를 공급하게 된다. 지 애널리스트는 “연료전지는 수소를 연료로 하는 고효율 청정 발전기”라며 “국내 연료전지 시장은 발전용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성장 중이며 국내 연료전지 발전 급성장에 따라 이 부문에 노하우를 쌓은 삼천리의 LNG 공급량 증가 수혜가 기대된다”고 내다봤다.
보다 장기적으로 삼천리가 기대하고 있는 사업은 집단에너지 사업이다. 이 사업은 쉽게 말해 발전기를 돌리고 남은 폐열을 이용해 온수를 만들고 이를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공급하는 사업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총 8개 지구에 사업 또는 사업 예정에 있으며 사업간 네트워크를 구축해 원가 경쟁력을 강화할 방침”이라며 “이 사업을 통해 2020년까지 총 매출 1조1000억 원을 달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돋보기 | 독특한 삼천리의 지배 구조
2세 경영 ‘탄탄’…지분 관계 이미 정리
삼천리그룹은 독특한 지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쉽게 말해 과거 LG와 GS처럼 ‘한 지붕 두 가족’ 체제다. 삼천리그룹은 창업자 이장균 회장(1997년 타계)과 유성연 회장(1999년 타계)이 공동 설립했다. 창업자 타계 이후 창업 2세대들은 사실상 도시가스 회사인 삼천리와 석탄 개발 회사인 삼탄을 각각 분리 경영하고 있다. 즉 한 지붕 두 가족 체제다. 현재 이장균 회장의 차남 이만득 회장이 삼천리 계열을, 유성연 회장의 아들 유상덕 회장이 삼탄 계열을 맡고 있다. 삼천리와 삼탄 계열사의 지분은 양가가 똑같이 보유하고 있다. 삼천리는 각각 16.18%씩 갖고 있다.
삼천리도 그렇지만 삼탄도 ‘알짜 회사’다. 2013년 기준 매출액 8754억 원, 당기순이익 1772억 원을 기록했다. 2012년에는 당기순이익이 무려 2469억 원에 달하기도 했다. 이 회사의 주 수익원은 인도네시아 파시르 광산이다. 면적이 서울 크기인 5만ha, 매장량만 13억 톤에 달한다. 이곳에서만 연간 평균 2900만 톤씩 석탄이 생산된다. 재계와 에너지 업계 관계자들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지정을 계기로 그간의 ‘한 지붕 두 가족’ 체제가 끝나는 게 아니냐고 관측하고 있다. 한 업계 전문가는 “오너들은 각각 삼천리와 삼탄의 지분을 상호 보유하고 있지만 각각의 회사만을 보면 이 회장의 계열사와 유 회장 계열사의 지분 관계가 이미 깔끔히 정리돼 있다”고 말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