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정용진 부회장이 인문학 전도사 된 까닭

연세대 ‘지식향연’ 콘서트 지상 중계…“인문학 없는 스펙은 모래성”


최근 몇 년간 지속되고 있는 ‘강연 콘서트’의 열풍을 타고 기업들도 자체적으로 관련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삼성그룹에 ‘열정락서’가 있다면 신세계는 ‘지식향연’이 있다. 신세계그룹은 청년 인재 양성 프로젝트 ‘지식향연’ 인문학 강연을 서울·부산·제주 등 전국 11개 대학에서 진행한다고 밝혔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지난 4월 8일 화요일 연세대에서 열린 첫째 인문학 강좌에 기조연설자로 나선 것. 신세계그룹 경영을 이끌어 온 지 4년째인 정 부회장이 대학생을 대상으로 강연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회색 정장에 노타이 차림으로 정 부회장이 걸어 나오자 2000여 좌석을 꽉 채운 대학생들은 스마트폰을 꺼내 플래시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정지영 아나운서는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라고 말했고 정 부회장은 “경영자로 임직원들 앞에서 연설한 적은 있지만 회사 밖에서 이렇게 많은 분들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처음이다. 임직원들은 제 얘기가 지루하고 재미없어도 잘 듣는 편인데 오늘은 좀 긴장되는 게 사실”이라고 답했다. 지난해 대학가를 휩쓸었던 ‘안녕하십니까’ 대자보를 염두에 둔 듯 “여러분 반갑습니다. 안녕들 하십니까. 다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인사말로 본격적인 연설을 시작한 정 부회장은 언제 긴장했었느냐는 듯 자연스러운 억양과 몸짓으로 청중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제가 교수님들처럼 공부를 많이 한 사람도 아니고 말을 그렇게 잘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다만 기업 경영과 채용을 하면서 생각했던 점들을 나누고 싶다”며 왜 지금 인문학을 말하는지에 대해 설명했고 “결국 일이든 개인 생활이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고 인간을 이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고은 시인의 ‘그~꽃’을 낭독하며 주변을 살피라고 당부했고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디자인과 구성 하나하나에도 인간에 대한 이해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또한 “신입 사원 면접을 보면 항상 앵무새처럼 똑같은 대답을 하는 것이 안타까웠다”며 신세계그룹 채용 때도 스펙을 뛰어넘어 인문학이 핵심 키워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정 부회장의 강연 주요 내용을 전한다.


기업에서도 인문학은 선택 아닌 필수
인문학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인간의 사상과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 영역’ 또는 ‘인간의 조건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인텔의 제네비브 벨 박사는 “공학적 사고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면 인문학은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지’, ‘어떻게 하면 성공하지’가 아니라 ‘왜 사는가’, ‘무엇이 나의 소명인가’를 살피자는 것입니다. 그간 ‘어떻게(How-to)’에 집중하던 우리는 이제 어려운 질문인 ‘왜(Why)’, ‘무엇(What)’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의 겉만 보는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읽으려는 이해가 바로 인문학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기업들은 다수의 앞선 조직들에서 내놓은 예측들을 잘 활용하는 사람을 인재라고 불렀습니다. 예전에는 이처럼 ‘스펙이 높은 사람=우수한 인재’라는 등식이 성립됐지만 지금은 세상이 너무 급변하고 있습니다. 주어진 상황에 대한 하나의 정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답을 만들어 가야만 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이 급변하는 시대에 우리에게 인문학이 왜 필요할까요. 세상을 다르게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당장의 실적 못지않게 더 중요한 게 있기 때문입니다. 일이든 개인이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통찰력을 키우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사색하지 않고 검색하는 우리가 당면하게 될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기회도 인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왜’가 없는 ‘어떻게’에 집중하며 쏠려가던 우리를 회복시켜 줄 힘이 인문학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젊음이 부럽습니다. 그런데 더 애정을 갖고 좀 더 생각해 보면 그 젊음이 과연 건강한지 되묻게 됩니다. 너무 피곤하고 지쳐 있는 청춘이 안쓰러운데, 그 부분에 대해 사회적 리더로서 책임을 통감합니다. 이제라도, 저부터라도 ‘열심히’에 집중한 청년들에게 ‘제대로’라는 지표를 제시하고 싶습니다.

지금 신세계는 채용 방식을 많이 바꾸려고 하고 있습니다. 비슷비슷한 스펙만으로 사람을 뽑는 게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을 통해 통찰력을 갖추고 건강한 주관을 가진 차별화된 인재를 선별하려고 합니다. 이제는 기업의 조직, 제품 개발과 디자인, 마케팅 모든 분야에 걸쳐 인문학적 접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만 하더라도 인간의 본질적인 행동 패턴과 직관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를 통해 제품·서비스·디자인이 반영돼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 사회에 대한 관심, 역사와 문화에 대한 호기심, 이 세상에 대한 끝없는 탐구, 개방적?隔?열린 세계관을 중시하겠다는 뜻입니다.

매번 면접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참 많은 지원자들이 자신의 주관적 소신을 말하지 않고 모범 답안을 외우고 와서 한결같이 똑같은 대답만 한다는 것입니다.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자신을 제대로 전하는 인문학적 소양만 더 갖춘다면 좋은 스펙이 더 빛날 텐데’ 하는 아쉬움을 자주 갖게 됩니다.

왜 신세계가 갑자기 인문학을 들고 나왔을까요. 경영 이념의 중심에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회사는 인문·예술·문화를 통해 고객의 행복한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 가는 것을 지향합니다. 그래서 인문학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받고 확산되기를 소망합니다. 특히 젊은 세대와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신세계가 사회와 청년들에게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실천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스펙을 넘어선 인문학을 강조하는 것은 앞으로 어떤 기업에 들어가든, 창업하든 인문과 철학에 바탕을 둔 삶의 태도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경영학·경제학 서적보다 철학 전공자인 고(故) 김태길 전 서울대 교수의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 서적 내용을 인생의 지침으로 삼고 있습니다.

인문학자는 아니지만 조금 더 산 선배로서 오늘 제안 드리는 3가지를 생활 중에 실천해 보면 어떨까요.

첫째, 줄거리만 보지 말고 캐릭터 위주로 고전을 많이 정독하는 겁니다. 예컨대 ‘레 미제라블’을 읽는다면 장발장과 자신을 비교해 보고 성찰하는 거죠. 둘째, 앞만 보고 달려갈 때 꽃 같이 귀하고 아름다운 것을 놓치기 쉬우니 주변을 살펴야 합니다. 셋째, 사안을 깊이 들여다보는 겁니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알’에서 대추 하나를 보더라도 대추의 고뇌와 외로움, 과정을 읽어야 합니다. 생김새나 몇 개가 달렸느냐에 집중할 게 아니라 그 안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인문학은 결코 취업을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인생을 보다 풍요롭고 향기롭게 할 것이고 어떤 환경에 처하든 중심을 잡아주고 인생의 방향을 제시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입니다.

혼란의 시대에 올바른 가치관과 남다른 생각을 갖고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갈 미래의 리더들에게 ‘청년 영웅’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청년 영웅이 튼튼한 뿌리를 갖추며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응원하고자 합니다. 우리 신세계에서 준비한 인문학 청년 양성 프로젝트 ‘지식향연’을 통해 청년 영웅들이 튼튼한 뿌리를 갖추며 성장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자 합니다. 지식향연을 통해 많은 청춘 들이 인문학적 지혜와 성찰을 나누고 진정한 행복과 가치를 되찾기 바랍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인문학에 대한 열정을 지닌 청년 영웅을 발굴해 전 세계 인문학의 중심지를 찾아가는 그랜드 투어와 같은 깊이 있는 인문학 공부의 기회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스티브 잡스가 자주 인용하는 말이 있습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부족하나마 제 생각을 조금 더해 이렇게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미래를 만드는 사람은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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