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트렌드] 급팽창하는 중국의 양자 암호 네트워크

해킹 불가능한 차세대 기술…국가 차원에서 무제한 예산 투입


아시아가 금융 위기에서 막 회복되고 있던 1999년 경영학계의 큰 별이 하나 졌는데 바로 하버드경영대학원과 하버드케네디행정대학원 교수를 역임한 레이몽 버논(Raymond Vernon, 1913~1999년)이다. 이코노미스트지로부터 ‘다국적기업 전도사(Oracle of globalization)’라는 별명을 얻었던 버논은 다국적기업을 단순한 대기업이 아니라 정치·경제·금융·정책·노동이라는 방면에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하나의 거대 네트워크로 봤다.

신문 기사에 자주 보이는 ‘제품 수명 주기 이론(특정 제품 기술이 선진국에서 만들어져 기업이 이윤을 누리다가 선진국에서 공급자가 많아지면 마진이 떨어져 생산비를 줄이려고 개도국으로 이전하게 된다는 주장)’을 만든 학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버논은 ‘위기의 국가주권 1973년’, ‘다국적기업의 위기, 1977년’, ‘지구화를 넘어서:미국 대외경제정책의 재편, 1989년’, ‘허리케인의 눈 속으로:다국적기업의 험난한 미래, 1998년’ 등 일련의 저서에서 다국적기업이 국가 간의 지리적 경계를 넘어 급속도로 팽창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와 함께 그의 저서 ‘위기의 국가주권’이라는 제목에서 보듯, 그는 다국적기업이 글로벌 생산과 무역을 주도하면서 국가가 자율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주권의 범위가 적어질 것, 즉 국경의 범위가 모호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른바 글로벌 시대가 닥치면서 무역과 투자의 장벽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 국제 표준화를 통해 국가들은 공통된 기술을 사용하며 국가 간 기술적 동질성은 다시 세계를 통합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각국은 자국의 표준을 국제 표준으로 만들기 위해 한창 노력 중이다. 자국의 표준이 국제 표준이 되면 기술의 누적성 때문에 향후 해당 기술이 진보하면서 계속 그 국가가 진보된 기술에서도 기술적 리더로서 국제 표준을 만들 가능성이 높아진다. 오늘날처럼 국가 간 장벽이 낮아지는 상황에서 기술 패러다임을 설계하게 되면 해당 기술과 관련된 본국의 기업이나 제품이 글로벌 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파급될 것이다. 또 상업적 이익 그 자체뿐만 아니라 해당 기술이나 제품을 둘러싼 네트워크에서도 기업은 관계의 핵심에 자리할 수 있고 네트워크의 중심이 된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해 협상력의 우위를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각국은 기술뿐만 아니라 사회적 표준도 자국의 표준을 국제 표준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글로벌화가 가져온 주권 위기의 시대
표준의 핵심은 통합성(integration)과 양립성(compatibility)이다. 이 때문에 자국 기술이 국제 표준이 되면 그 국가의 해당 기술이 전 세계와 싱크로 된다. 자국 기술의 기술적 노하우도 공유해야 한다. 일단 싱크로 되면 그 후에는 해당국이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게 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국제 표준화를 향한 경쟁이 치열한 분야, 즉 글로벌하고 개방적인 분야에서 국가들은 역설적으로 폐쇄적인 국가주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들이 선진국의 하이테크 기업을 인수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저지하거나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국제 표준화를 비롯해 하이테크 통신 장비로 널리 알려진 화웨이가 최근 5년간 미국·유럽·호주를 비롯한 선진국에서 관련 기업을 인수하려다 선진국 정부의 반대에 부딪쳐 연속적으로 좌절하고 있다. 여기에 두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 하나는 이렇게 중국 기업의 자국 기업 인수를 반대하는 선진국 정부들은 중국이 정관을 개정하면서까지 국제표준화기구(ISO)의 상임이사국이 되는 것을 허용했다는 것이다.

2013년 2월 미국 측 정부 기관인 ‘미국·중국 경제 및 안보검토위원회(US-China Economic and Security Review Commission)’에서 중국은 정치적 야망보다 외국에 지불하는 로열티를 낮춰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 위한 보호주의로서의 기술 국제 표준화를 추구하고 있지만 중국산 기술 표준들은 한 번도 기존 선진국 기술에 대해 배타적이었던 적이 없으며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적이 없다고 신랄하게 저평가했다. 이런 판단을 기반으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정부는 중국의 ISO 임원진 입성에 대해 관대하게 허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YONHAP PHOTO-1225> A ZTE flag flutters in front of the Chinese national flag outside its headquarters in Shenzhen, Guangdong province April 17, 2012. Picture taken April 17, 2012. To match Special Report MTN-IRAN/DOCUMENTS REUTERS/Tyrone Siu/Files (CHINA - Tags: POLITICS BUSINESS TELECOMS)/2012-08-30 14:10:51/ <저작권자 ⓒ 1980-201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둘째로 흥미로운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국 정부가 중국 기업의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제지하는 이유는 중국 정부가 자국 정부를 도청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미국 지도부를 도청했는지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오히려 전직 미국 중앙정보국(CIA) 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은 미국이 수년간 중국에 대해 해킹 활동을 벌였다고 폭로함에 따라 중국 정부가 발칵 뒤집어졌고 양국 간 국가 안보 이슈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은 우방국 국가원수의 통화도 감청한다고 보도됐는데, 한국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또 한 번의 반전은 중국 정부가 스노든의 폭로가 있기 전부터 민감하고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에는 ‘특수 기술’을 이용해 왔다는 사실이다. 이 특수 기술은 양자 암호를 이용한 양자정보통신(Quantum Information Communication)이라는 것으로, 양자역학을 이용해 빛의 단위 물질인 광자로 통신하는 차세대 암호 기술이다. 기존 통신기술과 달리 제삼자가 중간에서 통신 정보를 가로채 해킹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알려졌다. 2012년 11월 제18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새 지도부의 사전 정보가 전혀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때에도 중국 정부는 양자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한 통신망을 사용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이름조차 생소한 양자정보통신이라는 기술은 실제로 중국에서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보급된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2012년 중국 신화통신의 금융 정보는 양자 암호를 이용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전송됐다고 한다.


<2014년02월26일 바르셀로나=사진공동취재단 > 25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 2014에서 화웨이 부스를 찾은 관람객들이 다양한 제품을 체험해 보고 있다.

베이징~상하이 잇는 양자통신 네트워크 구축
한국에서는 이름조차 생소한 이 양자정보통신이라는 기술은 실제로 중국에서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보급된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2012년 중국 신화통신의 금융 정보는 양자 암호를 이용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전송됐다고 한다. 2013년에는 베이징과 상하이 사이에 양자 암호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시작, 정치 중심지와 경제 중심지 간의 연결에 기술적 보안을 서두르고 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대도시가 아닌 안후이성에서도 양자 암호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 정부 기관은 양자 정보기술을 응용해 양자 암호를 제외한 기존 암호를 해독할 수 있는 양자 컴퓨터 개발에 무제한의 예산을 투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적으로는 미국·유럽·일본·호주 등에서 양자정보통신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는데 도쿄에서는 NICT·NEC·미쓰비시·NTT·도시바 등이 참여해 연구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미쓰비시는 양자 암호 전송을 공개적으로 구현하는데 성공했다. 일본은 양자 암호 및 관련 기술에 대한 연구가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일부만 양자 기술로 만들어 보안을 높이려는 것이 아니라 모든 통신 네트워크를 양자 기술로 전환하려고 계획하고 있어 현재 상용화가 늦어지고 있다. 유럽에서 양자정보통신의 주 고객사는 금융 산업이 발달한 스위스이며 이미 2003년에 양자정보통신 기술을 사용해 보스턴대와 하버드대를 연결한 바 있는 미국은 양자정보통신 네트워크 구축이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어느 정도 구축됐는지조차 비밀이어서 극히 일부분에 대해서만 공개돼 있다.


화웨이·ZTE 등 글로벌 통신 장비 업체 두각
중국은 이러한 첨단 국가 보안 산업에서 자국 기업을 육성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학과 연구소 간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 최근 2년간 양자 암호 상용 장비 회사 4곳이 새로 출범되는 등 관련 기술을 시장에서 산업화하고 있다. 이 기술에서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인데, 2년 후인 2016년 중국은 양자통신위성을 발사해 중국 내 양자정보통신을 지원할 계획이다. 한국은 관련 기술에서 선진국과의 격차가 있기 때문에 중국과 같은 전폭적인 국가적 지원이 장기간 필요하다. 현재 국산 위성을 컨트롤하는 암호나 보안 기술도 미국 기술을 사용하는 실정이다.

중국은 양자 암호 및 양자통신 기술 개발에 선진국보다 늦게 참여했지만 양자통신 기술은 이미 국가적 핵심 사업이 됐다. 국가 간 보안 소프트웨어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선진국은 양자통신 기술 중 일정 부분을 표준화하기 위해 연구·개발 중이며 자국의 표준을 국제 표준으로 추진하는 것이 목표다. 이미 ISO 상임이사가 된 중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은 화웨이와 ZTE를 비롯해 이미 통신 장비로 글로벌 기업이 된 다수의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선진국으로부터 낮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한국 외에 개발도상국 출신으로 유일하게 통신 분야에 자국 기술로 국제 표준을 만들어 낸 국가는 중국뿐이다.

그리고 현재 중국은 과학기술 역량이 좋은 베이징과 상하이를 비롯한 몇몇 도시를 선정해 첨단산업을 대상으로 자국 기술을 국제 표준으로 만드는 작업에 전념할 클러스터를 건설했다. 해당 클러스터에 입주한 기업들은 특허 신청이 30% 증가, 수익이 20%씩 늘었다고 한다. 중국 정부는 이 클러스터 건설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했으며 지방정부는 자기 지역의 비교 우위를 바탕으로 자율적으로 발전 모델을 만들었다. 예를 들면 베이징은 정부~연구소~학교가 유기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중관춘(中關村)에 클러스터를 설립해 중국 전체의 자국 첨단기술의 국제 표준화를 진두지휘하게 했고 다국적기업들이 입지한 경제 중심지 상하이는 개발된 기술의 상업화에 집중하고 있다.

투자와 무역은 전 지구적으로 통합돼 가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 국가 안보와 관련된 것들은 투자와 무역의 방향과 거꾸로 가고 있다. 주권이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는 몇십 년 전에 나왔지만 지금처럼 국가주의가 전면에 등장한 적이 없었다. 냉전 시대에는 미소 양대 진영으로 나뉘어 자유주의 진영에 속했던 나라들끼리는 모두 친구이자 동지였지만 글로벌 시대에는 적도 동지도 없다. 오로지 자국의 이익만이 중요할 뿐이다. 몇년 전 알 수 없는 측에서 디도스 공격을 받아 나라 전체가 불안에 떨었는데 요즘도 보안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소비자로서 무엇이 개선됐는지 체감온도에 변화가 별로 없다. 굳이 국가 안보까지 내다보지 않더라도 금융 산업의 보안이 유달리 취약한 한국은 정보 보안을 위한 기술 개발이 시급하다. 중국이 한국보다 자국 기술 국제 표준화의 역사는 짧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 중국은 ‘기는 한국’ 위에서 날고 있다는 것이다.


곽주영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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