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SPECIAL] ‘취업 3년’이면 명문대 문 열린다

첫 졸업생 배출한 ‘재직자특별전형’…일과 학업 병행 가능해


2013년 8월 중앙대 경영경제대학 후기 학위 수여식, 이른바 ‘코스모스 졸업식’이 열렸다. 이제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한다는 기쁨에 싸인 학생들 사이에 머리가 살짝 희끗해지기 시작한 ‘만학도’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바로 중앙대 지식경영학부 졸업생인 윤균철 씨다.

조기 졸업 대상자로 3년 6개월 만에 학위를 받은 윤 씨의 나이는 올해 만 47세다. 윤 씨의 졸업 학점은 평균 4.50점 만점에 4.48점이다. 당시 중앙대 경영경제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의 수는 605명이다. 이 가운데 학점 4.48점이라는 만점에 가까운 학점을 받은 학생은 윤 씨가 유일하다. 말 그대로 ‘전체 수석’ 졸업이다.


중앙대 지식경영학부, 차별화된 커리큘럼 도입
윤 씨와 같은 만학도는 대부분이 남다른 사연이 있다. 윤 씨도 마찬가지다. 윤 씨는 1985년 특성화 고등학교인 덕수상고(현 덕수고)를 졸업했다. 명문 특성화 고교 출신답게 대기업과 금융사에 20년간 근무했다. 직장에서는 능력을 인정받아 임원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관리직에 오르자 그전과 상황이 달라졌다. 경영학이나 경제학에 대한 학문적 지식이 필요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때마침 중앙대·건국대·공주대 등 3개 대학이 처음으로 특성화고 졸업자를 대상으로 ‘재직자특별전형’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2010년의 일이다. 윤 씨는 일하며 공부할 수 있는 이 전형을 통해 수능을 보지 않고 그간의 경력을 인정받아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1주년을 맞아 ‘경제 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2017년까지 잠재성장률을 4%대로 끌어올려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로 가는 초석을 다져 놓겠다는 것이 골자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원동력은 ‘일자리 창출’을 통해 찾는다.

정부는 청년 일자리 창출의 구체적 방법 중 하나로 ‘선취업·후진학 문화 확산을 통한 조기 입직’이라는 방법론을 선택했다. 비전 없이 대학에 진학한 뒤 스펙 쌓기에 열중하면서 취업 준비만 길어지는 반면 정작 기업에 진짜로 필요한 인재들을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선취업’과 ‘후진학’이라는 데에 각각 정책의 방점을 찍었다. 먼저 ‘선취업’을 촉진하기 위해 일·학습 병행 제도 참여 기업과 학교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하기로 했다. 특히 ‘후진학 제도 활성화’를 위해 윤 씨와 같은 ‘일하는 학생’을 뽑는 재직자특별전형을 확대하기로 했다.

재직자특별전형은 쉽게 말해 직장인이 수능을 보지 않고 입학사정관제 등을 통해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다. 특성화고·마이스터고 졸업자 중 산업체에서 3년 이상 근무한 경력을 가진 직장인이 대상이 된다.

물론 재직자특별전형은 기존 야간 대학과 일견 겹쳐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재직자특별전형은 수업부터 성적 평가까지 거의 모든 게 일반 학부와 같다. 평일 수업 참석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토요일 수업이 많다는 점 정도가 차이다. 즉 재직자특별전형은 교육의 밀도가 더 높다는 뜻이다.

재직자특별전형을 통해 대학 문에 들어선 학생들의 반응은 대부분이 호평이다. 학생들은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중앙대 관계자는 “무엇보다 본인이 필요하다고 느껴 입학한 학생들이어서인지 수업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다”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수업 분위기 때문에 교수들의 평가도 좋다”고 말했다.

중앙대는 처음으로 재직자특별전형을 도입한 대학 중 한 곳이다. 2010년 재직자특별전형으로 신입생을 모집한 지식경영학부에 258명이 지원해 136명이 합격했다. 이들은 지식경영학부 출신 첫 졸업생으로 기록됐다. 올해(2014학년도)도 289명이 지원해 176명이 합격했다.

중앙대는 재직자특별전형을 국내에서 처음 도입한 학교이다 보니 아무래도 운영의 노하우에서 타 대학에 비해 앞서 있다는 평가다. 중앙대 재직자특별전형은 전국 대학 중 최대 규모로 운영되는 데도 매년 최소 1.2 대 1에서 최대 2.5 대 1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는 이유다.

중앙대는 재직자특별전형 선발자를 위해 경영경제대학 내에 ‘지식경영학부’라는 학부를 신설했다. 중앙대 지식경영학부는 일반 경영경제학부와 비슷한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일반 학부와 다른 점은 학문적 성과와 함께 실무적 효용성을 중시하는 ‘프레(pre) MBA’를 지향하고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중앙대 지식경영학부는 학생 대부분이 기업의 실무자라는 것을 감안해 MBA와 마찬가지로 전공 교육에 기업의 사례 연구를 더 넓고 다양하게 접목했다. 그 결과 학생들은 기업에서 체득한 현장 지식을 바탕으로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학문적 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됐다.


정부·대학·기업, 제도 정착 위해 발 맞춰야
중앙대 지식경영학부는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학부생들의 보다 나은 수업 환경을 만들기 위해 대학 차원에서 별도의 학사 지침까지 마련한 것도 눈여겨볼만하다. 일례로 일반 학생의 경우 첫 학기 휴학은 군입대나 질병 휴학에 한해 인정하지만 지식경영학부생은 근무지 이동 등 직장에서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을 때에도 학부장 승인 아래 휴학이 가능하다.

이와 함께 중앙대는 지식경영학부생을 위해 교수들이 나서 수업 스케줄을 조정하기도 했다. 전공 과목은 야간에, 교양 과목은 토요일에 개설한 것이다. 특히 지난 학기부터 토요일에도 전공 수업을 개설했다. 교양 과목은 일반 학생들이 듣는 수업을 수강할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중앙대 지식경영학부는 이 밖에 여러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온라인 튜터링 시스템, 재학생 해외 연수 프로그램, 전공 강의 연계 특강 등 다양한 특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오규택 중앙대 경영경제대학장은 “지식경영학부의 운영은 대학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포함하고 있는 만큼 학생들에게 좀 더 다양하고 내실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담당 교수들 역시 지식경영학부생을 위한 교육과정 개발위원회를 구성해 특성화된 교육과정을 개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직자특별전형은 분명 정부·대학·학생 모두에게 윈-윈-윈할 수 있는 제도다. 앞서 말했듯이 정부는 이 제도의 활성화를 통해 청년 일자리를 늘릴 계획을 가지고 있다. 대학은 ‘사회적 책임’이라는 대의(大義)와 함께 수익도 확보할 수 있다. 재직자특별전형으로 선발할 수 있는 학생은 기존의 입학 정원 규제에 묶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 정부 예산도 확보할 수 있다. 이미 정부는 2012년부터 이 제도를 도입한 대학에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당연히 학생은 대학 교육을 통해 자기 계발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문제는 재직자특별전형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는 점이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회사의 관심과 배려다. 중앙대가 지식경영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학교를 다니는 중 가장 어려운 점’을 묻자 ‘수업 시간에 맞춰 퇴근이 어려운 것’을 응답자 중 16.6%가 선택했다. 이는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기 위한 시간 부족(54.6% 선택)’에 이어 둘째로 높은 수치다. 또 아직 좀 이르기는 하지만 회사에서 재직자특별전형을 통해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이 일반 대졸자와 ‘공정한 경쟁’을 펼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최인혁 중앙대 지식경영학부장은 “대졸 출신 사원과 특성화고 출신 사원은 관리 직급으로 올라갈수록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만약 기업 차원에서 재직자특별전형 졸업생들에게 이 ‘벽’을 허물어 주지 않는다면 결국 이 제도는 실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회사로서는 “학교의 프로그램이나 학사 관리에 대해 믿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변할 수 있다. 아직 확실히 검증되지 않은 재직자특별전형이 4년제 대학의 커리큘럼에 비해 밀도가 낮게 운영될 수도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최 학부장은 이에 대해 “그렇다면 차라리 기업 내부에 ‘사내 대학’ 프로그램을 마련한 뒤 재직자특별전형을 통해 특성화고 학생들을 공부할 수 있게 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즉 필요하다면 재직자특별전형 학생들이 꼭 대학 캠퍼스가 아니라 사내에서 ‘맞춤형’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대학에 프로그램을 맡기거나 교수들을 초빙하는 방법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같은 움직임은 현재 국내 일부 대학에서 진행 중이며 중앙대 역시 검토 중인 프로그램이다.

재직자특별전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업뿐만 아니라 대학도 큰 역할을 맡아야만 한다. 대체로 특성화고 출신 학생은 직장 경험이 풍부하지만 인문계 출신에 비해 ‘국·영·수’는 부족한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대학도 이들이 진정 ‘학사’로 대접받게 하기 위해서는 재직자특별전형 학생들만을 위한 기본 소양 교육 프로그램을 더 개발할 필요가 있다.

정부 역시 대학 및 기업에 단순히 ‘지원’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제도 도입부터 간여해 온 박찬희 중앙대 교수는 “학교와 기업에 대한 지원은 물론이고 교육 내용에 대한 면밀한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보다 근본으로 돌아가 ‘중3 때 공부에 손 놓아서’ 생각하고 쓰는 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은 곤란하다. 실업계 교육도 (직업 교육과 더불어) 나중에 공부할 수 있는 충분한 기초를 갖추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돋보기 | 첫 재직자특별전형 졸업생 윤균철 씨
“대학 졸업은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죠”

2010년 시작된 재직자특별전형은 올해 초 첫 ‘공식 졸업생’을 배출했다. 하지만 윤균철 씨는 조기 졸업을 통해 지난해 8월 학사 학위를 받은 ‘진정한 첫 재직자특별전형 졸업생’이다. 그는 “늦은 나이였지만 대학을 무사히 졸업한 게 자랑스럽고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대학은 인생의 큰 터닝포인트가 됐다”고 강조했다.


대학 진학의 계기는.
회사에서 어느 정도 자리 잡고 나니 ‘대학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기 때문이다.


여러 대학 중 중앙대 지식경영학부를 선택한 이유는.
2010년 당시 선택할 수 있는 대학은 세 군데 정도였는데, 중앙대 지식경영학부가 그간의 커리어와 가장 맞는 학부였다. 직장인 여의도와 가깝다는 것도 선택 이유 중 하나였다.


높은 학점의 비결은 무엇인가.
첫 등교 때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수업에 빠지지 말자’는 게 스스로의 다짐이었다. 실제로 단 한 번의 결석도, 지각도 하지 않았다. 또한 다른 학생들에 비해 직장 경력이 길다 보니 공부에 조금 더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것도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긴 회사 경험 역시 ‘경영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가장 도움이 된 커리큘럼은.
하나는 ‘경영 사례 연구’, 다른 하나는 ‘조직행동론’이었다. 둘 모두 실제 회사 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


재직자특별전형에 도전하는 후배들을 위한 조언이 있다면.
중앙대 지식경영학부에서 배우는 것들은 일반 4년제 대학과 거의 같다. 그만큼 일과 공부를 병행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단순히 ‘간판’을 원한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또 학교에 다니면서 회사 상사나 동료들과의 관계를 잘 풀어야 한다. 사실 웬만한 기업은 ‘제도적’으로는 자기 계발에 긍정적이다. 그러나 실제 한 사람이 지나치게 자기 계발에만 몰두하면 구성원 사이에 ‘인간적’ 트러블이 생길 수 있다. 이를 잘 풀어야 한다.


회사나 사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앞서 말했듯이 재직자특별전형을 통한 학사 학위 취득은 학사 관리나 커리큘럼 모두 결코 만만치 않다. 일과 함께 해야 하므로 어떻게 생각하면 개인적으로는 일반 전형에 비해 더 어려운 것 같다. 기존 야간대학과는 명확히 다른 점이다. 이를 이해했으면 한다. 이 제도가 잘 운영되기 시작하면 이에 대한 이해가 늘어날 것이라고 본다.


앞으로의 계획은.
그간의 커리어와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새 사업을 준비 중이다. 1~2년 새 이 사업을 안착시키고 대학원이나 MBA 과정에 진학하는 게 목표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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